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by 황 영


8.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진다. 우리 사랑도 그 생존 법칙의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무렵 내 삶에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영화학교에 입학했던 그해 여름, 집 안의 공기부터 달라졌다. 매달 용돈을 보내 주시던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하늘이 도와 위기는 넘기셨지만, 엄마의 병간호가 시작됐다. 병간호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가정 파괴범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창문을 닫아도 집 안에 병실 냄새가 남았다. 내 용돈은 그날로 끊겼다. 그 무렵, 영화학교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존경하던 감독님의 현장에서 연출부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영화판의 습성상 다시 오기 어려운 절호의 기회였다. 문제는 수입이었다. 당시 연출부의 수입은 보잘것없었고, 못 받는 일도 허다했다. 지금은 돈을 벌어야 했다. 통장 잔액의 숫자가 위태롭게 떨렸다. 그럼에도 나는 오래 고민했다. 이기적이었다.


내 한숨이 늘었다는 걸 너는 금방 알아챘다. 이유를 묻는 너에게 나는 한동안 입을 닫았다. 너는 다그치지 않고 조용히 옆에 있었다. 말로 꺼내는 동안 내가 더 무너질까 봐, 그 무게를 너도 견딜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결국 우리는 사랑하니까 피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끝까지 말했고, 너는 끝까지 들었다. 그리고 아주 짧게 말했다. 내 편이라고. 그 한 줄이 내 선택에 불씨를 더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따르는 일이 이기심만은 아닐 수 있다고 너를 통해 확신했다. 그날의 너는 누나 같았다. 너의 품에 안겼다. 불안과 두려움이 너의 어깨에서 천천히 녹아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 교수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 번 들르라고. 내 사정은 이미 너에게서 들었다고 하셨다. 연구실 문을 열자, 짧은 커트 머리와 단정한 투피스 정장 차림의 교수님이 안경 너머로 부드럽게 웃어주셨다.


“지금은 일단 돈을 벌어야 해.”


조심스러웠지만 다정한 말투셨다.


“영화 일은… 조금 나중에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고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나름 안정적인 외국계 기업을 하나 소개해 주셨다.


“잘 아시는 분이 대표로 계시는 회사야. 믿을만하고 성실한 제자 한 명 꼭 소개해달랬는데, 딱 네가 떠오르지 뭐야?"


교수님은 앞에 놓인 녹차를 조용히 한 모금 마시며,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너 꿈도 중요하지만… 옆에 있는 사람 마음 지켜주는 것도 중요해. 둘이 참 예쁜데… 그 아이, 너 앞에서는 늘 괜찮다고만 하겠지만… 속으로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왜 없겠어. 넌 잘 모를 수도 있는데, 같은 여자 입장에서 내가 보면 다 느껴져. 특히 여자들은… 현실적인 부분을 더 빨리, 더 깊게 고민하게 돼. 그 마음 지키려면, 지금은 현실적인 기반이 중요할 때야. 결혼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고.”


미래에 대해 말할 때 교수님의 목소리 끝이 살짝 누그러졌다. 교수님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시선은 초점을 잃고 아주 먼 곳을 향하는 듯했다. 교수님은 나에게 하는 말인지, 혹은 먼 곳의 그 아이에게 대신 전하는 말인지 모를 목소리로 나지막이 덧붙였다.


“… 젊을 땐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와. 꿈만 좇다 보면, 정작 발밑의 소중한 걸 못 볼 때가 있거든. 나중에 돌아보면… 그 사람이 전부였는데 말이야. 나처럼 살지는 말라는 얘기야.”


나는 그 말의 깊이를 그때는 미처 다 헤아리지 못했다. '안정'이라는 단어는 내게 매력적이라기보다 낯설었다. 어쩌면 나는 안정적인 삶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 갈망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 길 위에 내가 모르는 행복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훗날 내가 너와 함께 이루지 못했던 그 '안정'이라는 신기루를 뒤늦게라도 붙잡아보려 했던 비겁한 시도들이, 결국 내 삶을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고민은 길었고, 결심은 짧았다. 영화 일을 택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내 존재를 확인하는 길이라 믿었다. 그 믿음을 너를 위한 길이라고까지 포장했다. 아버지에겐 미안했다. 적은 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벌고 싶었다. 모자라면 아르바이트로 메우면 된다고 쉽게 셈했다. 가족도 이해할 것이라고, 그땐 그렇게 믿었다. 지금은 안다. 그 믿음엔 미련과 이기심이 함께 있었다는 것을.


그 결정을 말하자, 너는 미소 지었다. 나는 그 미소에서 걱정과 응원, 그리고 너의 불안과 조용한 의지를 더듬듯이 읽었다. 네 눈빛엔 나와는 다른 무게의 미래가 비쳤다. 원망은 없었다. 다만 우리를 단단히 잇고 있던 끈이 소리 없이 늘어지는 듯한, 아득한 공백이 느껴졌다.


“오빠… 나 사랑해?”


우리가 사랑한 뒤로 네 입에서 나온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안다. 그 말은 내가 취업을 택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을 의심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내가 모르는 내 두려움을, 우리 사랑의 위기를 보았다. 내가 붙든 꿈과 우리가 지켜야 할 오늘 사이의 틈을. 그건 확인이 아니라, 네 사랑을 더 단단히 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날 너는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었다.


"오빠의 꿈을 믿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래가 두려워. 이건 오빠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어쩌면 내가 그만큼 강하지 못한 탓일지도 몰라."


그때 나는 너의 그 솔직한 두려움을 이기심이라 치부하며 애써 외면했다. 너를 사랑한다면 취업을 택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하면서도 영화 일을 택했다.


아버지 병실의 하얀 커튼은 늘 반쯤 열려 있었다. 창밖의 햇살이 병실 바닥에 길게 누웠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 빛을 보며 나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지금의 가난은 언젠가의 영화로 보상받을 것이라고. 그 언젠가가 도대체 언제인지 나는 끝까지 말하지 못한 채였다.


지금 내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윤 교수님의 조언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과거의 내 멱살을 잡고 말했을 것이다.


“지금은 취업해. 그리고 그녀를 더 사랑해.”


꿈을 미루는 게 끝은 아니라고, 사랑을 지키는 선택이 결국 꿈을 지키는 길일 수도 있다고. 불타는 심장은 길을 만들지만, 집은 따뜻한 손으로 지어진다. 나는 그때 그 따뜻함의 공사 일정을 너무 쉽게 미루고 말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 사실은 늘 차갑게 들리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 곁에 있는 손을 더 절실히 잡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해 겨울, 나는 손을 뻗었다. 너는 잠깐 망설이다 아주 천천히 내 손을 잡았다. 그 느린 속도가 단순히 망설임이 아니라, 나와의 미래에 대한 너의 깊은 고뇌와 책임감이었음을 나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그 느린 온도가, 지금도 내 손바닥에 흉터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