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네가 사랑한 내가 아니다

by 황 영


9. 나는 더 이상 네가 사랑한 내가 아니다.


그해 겨울이 지나고 방 안 공기는 한 톤 낮아졌다. 알람은 같은 시간에 울렸고 잠은 매번 다르게 얕았다. 시급은 그대로였고 피로는 몸에서 먼저 왔다. 너에 대한 미안함은 마음에서 조금 뒤에 왔다. 문자에 이모티콘은 줄고 마침표가 늘었다.


널 향한 내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발견이었다. 어느 날 문득 너 없는 삶이 무의미함을 알아챘을 때, 나는 사랑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별은 달랐다. 너를 여전히 사랑했지만 더 이상 사랑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헤어질 이유들을 부지런히 발명하기 시작했다. 이별은 발견이 아니라, 그런 발명에 가까웠다.


모든 것은 아버지의 병환에서 시작됐다. 병간호는 계속되었고 집안의 웃음소리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자취방 보증금은 이미 생활비로 빼낸 뒤였다. 너와 추억이 가득한 방을 비우던 날, 너는 섭섭함을 애써 감췄다. '나중에 더 좋은 집에서 같이 살자.' 네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미 몸도 마음도 가난해져 너를 제대로 안아줄 수 없었다. 고시원으로 들어가면서 만남의 횟수는 급격히 줄었다. 창문 없는 방이 더 쌌다. 불을 끄면 대낮에도 한 줄기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이 짙게 내렸다.


영화판은 그 어둠보다 더 비이성적이고 더러웠다. 나는 ‘열심’보다 치열을 택했고, 순수한 열정이 아첨과 줄타기를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처음으로 깨진 것은, 밤새 고민해 제안했던 시나리오의 한 장면 때문이었다. 조감독 선배는 내 아이디어가 적힌 포스트잇을 훑어보더니, '괜찮네' 하고 무심하게 제 주머니에 넣었다. 며칠 뒤, 회의 시간에 그 장면은 정확히 선배의 아이디어로 둔갑해 있었다. 내가 썼던 대사, 커피 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던 그 포스트잇의 문장 그대로였다. 내가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었을 때, 선배는 나를 보며 비웃듯 말했다. '열정만으로는 안 돼. 이게 현장이야.' 주변의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곳에서는 정직한 노력이 가장 먼저 잡아먹히는 먹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길 잃은 강아지일 뿐이었다. 걸어 다니면 욕먹을 것 같아 늘 뛰었다. 시나리오를 한 번이라도 읽어주길 바라며 비굴함까지 무기로 삼았다. ‘영화적이지 않다’는 한 줄 평을 받고도 밤새 그 문장의 허점을 뒤집었다.


그렇게 현장에서 버티던 어느 날,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의 상태가 잠시 위중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촬영을 핑계로 가보지 못했다. 그날 밤 촬영이 끝나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희미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잠들어 있었다. 규칙적으로 울리는 기계음, 소독약 냄새, 핼쑥해진 아버지의 뺨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 나는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든든한 아들이 되어주기는커녕, 내 한 몸 건사하지 못해 병원비 걱정만 더하는 불효자였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버지의 마른 손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내 꿈의 무게가 이토록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가장 쓰라린 것은 ‘열정’을 미끼로 던지는 함정이었다. '기회를 주겠다'는 말의 속은 돈과 향응이었다. 하늘이 내린 ‘기회’라던 술자리에서 나는 무너졌다. 진한 향수, 끈적한 웃음. 그는 '나만 믿어'를 반복했다. 속에서 ‘아니야’가 솟구쳤지만, 선배의 비웃음과 병실의 아버지, 바닥난 통장이 눈앞에 포개졌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고 잔을 부딪쳤다. 그의 손짓을 따라 작은 봉투를 건넸다. 그 봉투에는 아버지 병원비 명목으로 친한 선배에게서 빌린 돈이 들어 있었다.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가는 소리가 났다. 돌아오는 길, 손에서 피 냄새가 났다. 물과 비누로 아무리 문질러도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봉투로 앞자리 번호표를 산 줄 알았다. 봉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다음 날도 내 시나리오는 읽히지 않았다. 기회에도 자격과 순서가 있다는 그의 말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에게 영화는 꿈이 아니라 존재의 전부였다. 어쩌면 너보다도. 그 꿈을 놓는 것은 나를 놓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애써도 통과할 수 없는 자리였다. 2년이 지나, 나는 나와 영화를 함께 망가뜨리는 싸움을 멈췄다. 새벽 다섯 시, 마지막 ‘컷’ 소리를 뒤로하고 현장을 등졌다. 그것이 나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들 내 영화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때부터 나는 ‘자격’이라는 돌을 가슴에 얹고 살았다. 고시원 총무는 내게 꽤 짭짤한 용역을 가끔 제안했다. 고시원 화장실, 복도, 계단 청소가 그런 것들이었다. 그 일을 끝낸 뒤에, 총무는 늘 내 손에 라면과 김치, 소주 몇 병을 쥐어 주었다. 영화판보다 훨씬 더 인간다운 대접이었다. 가난이 살을 갉아먹고, 궁핍이 마음을 좀먹었다. 혹사로 닳아버린 몸, 불 꺼진 방, 집안의 그림자. 사랑은 언제나 손에 닿지 않는, 유리 너머의 물건이었다.


우리는 만났다. 다만 더 늦게, 더 짧게, 더 조용하게 만났다. 고시원 복도 끝 비상구 불빛을 지나 네가 내 문 앞에서 두 번 숨을 골랐다. 노크 소리가 두 번, 세 번째는 더 작았다. 방 안에는 묵은 먼지와 컵라면 국물 냄새가 섞여 있었다.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면 너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 말은 얇은 이불처럼 금세 식었다. 우리는 약속을 덜어냈고 지난 기억만을 더듬었다. 오늘을 위한 말은 점점 줄어들었다. 먼지 묻은 책상 구석에 함께 끊어둔 연극 예매권이 놓여 있었다. 유효기간은 이미 한참 지났다. 우리는 그 사실을 아무 말 없이 확인했다. 이별은 그렇게 작은 만료일들을 모아 발명되었다.


그 시절, 나는 너에게 늘 거짓말을 했다. 이제 내 영화를 만들고 싶어 현장을 그만둔 것이라고, 영화계에서 나름 인정받고 있다고. 아니, 너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 내색 없이 내 말을 믿어주는 척했다. 변함없이 나를 더 이해하고 품으려 했다. 너의 그 깊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나는 너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핑계로 더욱 능숙하게 거짓말했다. 나는 더 이상, 네가 사랑하던 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