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빨갱이라고?

by 황 영


삼촌의 전화를 받은 다음 날, 돌고개 사거리에는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전날 밤공기를 찢어발기던 탱크의 궤도 소리도, 날카로운 총성도 잦아들었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조심스레 셔터를 올렸다.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나와 미용실 앞을 정성껏 쓸어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게마다 상인들이 하나둘씩 거리로 쏟아져 나오더니, 마치 사거리에 서린 불길한 기운을 닦아내기라도 하듯 온 동네를 번쩍번쩍 광내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뉴스 소식이 새어 나왔다. 광주가 북한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에 의해 점령당했고, 대다수의 시민들도 빨갱이이며, 김대중이 사주하여 총을 들고 군인에게 저항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빗질을 하던 상가 아저씨와 아줌마들은 잠시 동작을 멈추더니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들었을 때 터져 나오는, 날 선 실소였다.


“빨갱이? 우리가 그람 빨갱이여? 하긴 커튼집 은숙이 엄마 얼굴이 평소에도 좀 빨갛긴 혀?”


유미반점 아저씨의 농담에 은숙이 엄마가 허리를 펴며 맞받아쳤다.


“아이고, 뭔 소리여. 내가 빨갱이면 여기 있는 사람 죄다 빨갱이재! 저기 월산상회 아저씨도 약주만 드시면 코끝까지 빨개져 불고, 그러고 본께 진미용실 언니도 막걸리 한 잔 들어가면 살짝 볼때기가 빨개지던디?”


사람들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지만, 빗질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어두운 낯빛을 한 월산상회 아저씨가 평상에 쓰러지듯 앉으며 사력을 다해 소리쳤을 때, 그 평화로운 농담은 단숨에 얼어붙었다.


“다들 지금 제정신이여?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구마잉! 어제부터 오늘까지 금남로에서 광주 사람들이 공수부대 놈들한테 떼죽음을 당해 부렀다고!”


사람들이 자석에 이끌리듯 평상 주위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엄마가 아저씨의 소매를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뭔 소리다요? 공수부대가 뭐고, 사람이 죽다니요?”


아저씨는 오늘 아침 일을 보러 금남로에 나갔다가 목격한 지옥을 애써 덤덤한 척 풀어놓았다. 시청 앞에서 시위하던 사람들을 공수부대원들이 끝까지 쫓아가 곤봉과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내려쳤다는 이야기.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의 머리에서는 이미 굵은 피가 검게 굳어 있었다는 참혹한 증언이었다. 아저씨는 그 시체들의 눈을 피해 돌아오느라 무려 세 시간을 돌고 돌아왔다고 했다.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숨을 죽였고, 은숙이 엄마는 “오매 어쩐다냐” 하며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눈물을 쏟았다. 엄마는 단호한 표정으로 아저씨를 응시하며 다시 물었다. 그곳에 대학생들도 많았느냐고. 아저씨가 젊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답하는 순간, 엄마는 버팀목이 부러진 것처럼 땅바닥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다.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내 등을 토닥이며 속삭였다.


“괜찮을 거여... 우리 운용이는 괜찮을 거여...”


그것은 나에게 하는 말이자, 스스로를 향한 간절한 주문이었다. 월산상회 아저씨는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대로 있으면 다 개죽음이여. 어떻게 우리나라 군인이 국민을 죽인단 말이여. 내일은 나도 금남로로 나갈라요. 벌써 너무 많이 죽었어. 싸워야제!”


곁에 있던 상인들이 일제히 “그럽시다!”를 외쳤다. 특히 유미반점 김 씨 아저씨가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맞소! 사람이 아닌 것들하고는 마땅히 싸워야제!”


그날 저녁, 돌고개 상인들은 유미반점에 모여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만찬을 가졌다. 탁자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짜장면과 탕수육이 차려졌다. 평소라면 자지러지게 좋아했을 짜장면이었지만, 나는 어른들의 얼굴을 살피느라 선뜻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엄마는 자기 몫의 짜장면 그릇을 내 앞으로 밀어주며 많이 먹으라고 다독였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먹는 일에만 무섭게 집중했다. 후루룩거리는 면발 소리 사이로 침묵이 무겁게 깔렸다. 그때, 식당 구석의 TV 뉴스에서 ‘평화로운 광주’와 ‘일부 폭도들의 폭동’이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순간, 짜장면을 씹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안의 식사도 잊은 채 침을 튀기며 욕설을 터뜨렸다.


“저것들이 사람이여? 우리를 죽여놓고 폭도라고?”


사람들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그것은 공포를 넘어선 분노의 빛이었다.


“우리도 같이 싸워야제. 사람 죽이는 놈들은 군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닝께... 광주를 지켜야제.

나는 입가에 검은 춘장을 묻힌 채 어른들의 성난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머니 속, 삼촌이 만들어준 새총이 내 허벅지를 묵직하게 누르고 있었다. 밖에서는 다시 멀리서 낮은 천둥 소리 같은 총성이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