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토하듯 내뱉는 내 울음이 워낙 커서, 커튼집 이모도 부리나케 달려와 나와 엄마를 겹쳐 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미용실 안은 금세 여자들의 비명 같은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아이고, 다행이네. 영준아! 이모가 너무 놀랐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엄마는 떨리는 손으로 이모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를 건넸다. 어른들의 눈물을 보자 오히려 내 울음이 잦아들었다. 엄마는 내 어깨를 붙잡고 덕림산엔 왜 갔는지, 왜 이렇게 늦었는지 물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구덩이 위로 솟구쳤던 그 꼿꼿한 손가락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입술을 짓이겨 물고 대답 대신 바지를 걷어 올렸다. 퉁퉁 부어오른 왼쪽 발목이 드러났다. 뒤에서 지켜보던 삼촌이 달려와 내 발목을 감싸 쥐었다. 내 발목을 쥔 삼촌의 손톱 밑에도 덕림산의 흙처럼 시커먼 때가 끼어 있었다. 그 손가락들이 마치 산에서 본 그 손가락들과 형제처럼 닮아 보였다. 삼촌은 뼈가 부러지지는 않은 것 같다며 내 발을 이리저리 살폈다. 나는 ‘아야’ 하고 일부러 작은 엄살을 피웠다. 삼촌은 예전처럼 맑지는 않지만, 어딘가 깊게 가라앉은 쇳소리 섞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버텼네. 이 발로 여기까지 걸어온 거여?”
“아니, 이 씨 아저씨가 안아서 데려다줬어.”
엄마가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이 씨 아저씨가? 아이고, 참말로 고맙네.”
삼촌은 뜨거운 물을 덥힌 후, 거기에 적신 수건을 꽉 짜서 내 발 위에 올리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따뜻한 온기가 발목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자 긴장이 풀리며 거짓말처럼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이 또렷해지기 시작하면서 머리맡에서 엄마와 삼촌이 나누는 낮은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네가 시민군을 왜 들어가? 누가 시키대?”
“아니여, 누나. 누가 이걸 시킨다고 하겄소? 해야 되는 일이니까 하는 거지.”
“안 돼야, 운용아. 제발 누나 말 좀 들어. 대학생들만 보면 죽여 불기까지 한다던디...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라냐?”
“벌써 많이 죽었어, 누나.”
삼촌의 말이 끝나자 날카로운 침묵이 찾아왔다. 셔터 문틈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가두방송 소리만이 유령처럼 스며들었다. 삼촌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나는 배가 고파 속이 쓰렸지만, 자는 척하며 숨죽여 대화를 엿들었다.
“누나. 이건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우리는 폭도가 아니잖아. 근데 계엄군은 애국가를 틀어놓고 우릴 향해 총을 쐈어.”
삼촌은 타는 목마름을 견디려는 듯 주전자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총에 맞아서 쓰러진 사람들... 그 사람들 구하겠다고 다가간 사람들까지 모두 총에 맞아 죽었어.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머리를 곤봉으로 치고 발로 밟고... 나는 그걸 보면서도 나 살아보겠다고 뒷걸음치며 도망쳤어.”
삼촌이 오열을 터뜨렸다. 엄마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 바닥을 적셨다.
“이게 말이 돼?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이랑 눈이 마주쳤어.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이대로 가면 우리 광주 사람들 다 죽어. 누나,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여?”
엄마는 눈물을 매정하게 닦아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알았다. 니 말 뭔지 알았어. 근데... 너는 공부 잘하는 학생인깨 이번엔 꾹 참았다가 나중에 더 큰 일을 해야 안 쓰겄냐? 그니까 시민군인지 뭔지 그거 하지 마. 그 완장도 빨리 풀어불고.”
그때 눈치 없이 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크게 났다. 엄마는 서둘러 부엌으로 가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삼촌 옆에 앉았다. 삼촌은 눈물 자국을 지운 뒤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삼촌은 구석에 놓여있던 찌그러진 내 새총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고무줄을 팽팽하게 당겨 묶었다. 마치 곧 닥쳐올 무언가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삼촌의 손끝에는 예전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서늘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삼촌은 끝내 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묻지 않았다.
나 또한 엄마에게 덕림산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커튼집 이모 몰래 산에 간 것으로 야단맞기 싫어서였을까. 아니면 그 구덩이의 기억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영영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이름 모를 두려움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