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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Dec 22. 2021

아름다운 설악산의 여름 ㅡ서북능선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78화 설악산 6

4년전 여름.

그것도 6월 29일.

여름도 한여름이었다.

뜬금없이 설악산에 간다고하니까 마눌님 하는말.

"갔다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설악산이야?"

사실은 1년이나 되었는데.

어쨌거나 얼르고 달래고 10시 반에 출발.

밤 2시에 오색에 도착해서 입산 시간인 3시까지 눈을 붙여본다.



설악산 대청봉산행은 8번째다.

그무렵엔 1년에 한번쯤은 설악에 안겨야 개운한 기분이 들었었다.



3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해서 후레쉬 불빛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한지 40여분만에 여명이 밝아왔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밤이 가장 짧다는 하지가 지난지 얼마되지 않아서 날이 일찍 밝아진 덕분에 그동안 밤에만 오르던 오색의 등산로를 모처럼 눈으로 보면서 오른다.



이 코스는 주로 가을철 야간에 올랐기 때문에 주변경관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몇번을 오르내렸는데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



비록 한 여름이지만 새벽 산길은 제법 선선했다.

그래도 주로 어둠 속이었지만 몇 번을 다녔기때문에  등산로는 낯설지 않았다.



여름 산행은 생각보다 시원하다.

특히 고산인 설악산은 더 그렇다.

땀이 비오듯 흐르다가도 잠깐 멈춰서면 금방 서늘해졌다.

산을 아는 사람들은 이 맛에 여름 산행을 한다.



설악산의 오색코스는 대부분이 급경사구간이지만 다양한 수종이 서식하는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숲길이다.

그래서 여름에도 햇빛 걱정을 하지 않고 오를수 있다.



모처럼 그동안 야간산행에서는 보지 못하고 지나쳤을 다양한 풍경들을 본다.

숨이 턱에 차서 잠시 쉬는 동안 사람들에 익숙해진 다람쥐가 멋진 포즈를 취해준다.

다람쥐 한마리 봤을 뿐인데 훨씬 더 깊은 산 맛을 느꼈다.



오색에서 대청봉 오르는 코스는 대청봉에 오를 수 있는 최단코스다.

그래서 다른 등산로에 비해서 경사가 극심하다. 



거리로는 5km남짓이다.

그렇지만 꼬박 4시간을 오르고 또 오르고 고행이라도 하듯 오르기만 해야한다.

하긴 건각들은 2시간 반쯤이면 오르기도 한다고 한다.



어김없이 중간에 일출을 본다.

그러나 오늘은 다만 여름이라서 가을이나 겨울에 비해서 훨씬 일찍 볼 뿐이다.

한여름의 푸르름을 뚫고 솟아오르는 햇살이 의외로 상쾌하다.

이건 여름 햇빛의 느낌이 아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힘들때 가끔 주문처럼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시조 귀절이다.



그러나 이 코스에서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철계단이 끝나면 목계단이 나오고 목계단이 끝나면 돌계단이 나오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목표가 있다는 것,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힘을 샘솟게 한다.

가다가 한 박자만 쉬면 금방 다시 힘이 충전되곤 한다.



밤새 비가 내렸나보다.

고도가 높아지자 길이 걷기 딱 좋을 만큼 촉촉했다.



길만 촉촉해서 좋은게 아니었다.

길가의 풀잎, 나뭇잎에 방울방울 맺힌 이슬도 더위를 씻어주는데 한 몫 하고 있었다.



7시 10분.

하여튼 오르고, 또 오르고, 올라서, 오르다보니 드디어 하늘이 열렸다. 



이제 정상으로 가는 마지막 계단이다. 

하늘이 열리고도 20여분을 더 올라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그래도 고생 끝 행복 시작인 지점이다.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오솔길이기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다양한 나무들 사이로 펼쳐지는 조망을 즐기며 오를수 있는 구간이기도 하다.



아무튼 여기서부터 20여분이 오색 코스중 가장 행복한 코스다.

잠시 그 행복감에 젖어본다.



드디어 정상이 보인다.

그와 동시에 울창하던 숲 그늘도 끝이 났다.

그러나 온 몸으로 맞는 한여름 햇볕이 뜨겁지 않고 봄 햇살처럼 따스했다.



고생 끝에 서는 정상.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몸소 땀흘리고 고생 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환희다.

적당히 파란 하늘.

적당한 뭉게구름.

함께 감격하기에 딱 좋은 많지 않은 산객.

땀을 씻어줄 적당한 바람.

엹은 운무속의 몽환적인 산그리메.

사람 사는 곳과 신선이 사는 곳의 경계쯤에서 나는 가쁜 숨을 고른다.

벅찬 감정을 억누른다.



대청봉.

대청봉에서 줄서지 않고 인증샷을 찍을 줄이야....

의외로 산객이 붐비지 않았다.

요즘 설악산이 아니더라도 산 정상에서 이리 한적한 기분 만끽하기가 쉽지않은데.

빠른 때문인지, 늦은 때문인지, 운이 좋은 것인지, 여름이어서 인지...

아무튼 몽환적인 풍경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다.



파아란 하늘.

그 파란 하늘에 적당한 구름이 실시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정상을 한바퀴 돌면서 몇 컷 찍고 나서 가져간 막걸리로 정상주 한잔을 한다.



그리고 다시 또 한바퀴를 돈다.



원래는 아득한 산그리메가 있어야 할 점봉산 방향인데 그 대신 운무가 춤을 추고 있다.



천불동과 공룡능선 방향이다.

운무속 범봉이 신비스럽다.



그런데 사고가 났는지 헬기가 떴다.



오늘 대청봉은 더도 덜도 아닌 딱 여름 풍경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을 보내고 이번에는 광각렌즈로 갈아 끼우고 또 한 바퀴 담아볼까 하는데 불과 몇분 사이에 운무가 덮쳐서 더이상 하늘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왕에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해서 한참을 기다려도 조금 전 그 하늘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은 아쉬움을 남기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미련이 남았지만 그 순간에도 삼삼오오 올라오고 있는 산객들을 보면서 위안해 본다.

저사람들은 그마져도 못 볼지 모르는데....



중청대피소와 중청봉이다.

중간에 아까 그 헬기가 앉아있다.



이제 저기 중청을 넘어서 서북능선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정상에서의 시간은 왜 항상 그리 빨리 가는지.

대청봉에서 한계령 휴게소까지는 8.3km다.

아직 가보지 않은 미답의 길이지만 그리 험하지는 않다는 정보만 가지고 있기때문에 일단은 서둘러서 하산한다.



그 곱던 하늘을 순식간에 삼켜버린 구름이다.



그 구름을 뚫고 이제 중청을 향해서 간다.



대청과 중청 사이는 고산지대라서 키 큰 나무가 없고 키 작은 관목들과 이름모를 꽃들,그리고 잡초들이 초원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하산중에 뒤돌아 본 정상이다.

정상은 이제 완전히 구름속에 있다.



중청에 오르면서 뒤돌아 본 대청이다.

연애시절 아내와 함께 처음 설악에 올랐을때 그때도 한 여름이었다.

그때는 백담사에서 올랐기 때문에 이 뷰를 보면서 올랐었다.

그때 소청에서 중청, 대청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푸른초원 같은 이 풍경에 반했었다.

그래서 지금도 대청봉하면 떠오르는 이 풍경이 내마음 속 대청봉의 대표 풍경이다.



끝청 삼거리다.

한계령과 소청 그리고 대청으로 갈 수 있는 삼거리다.

나는 서북능선인 한계령 방향으로 진행한다.



대청봉에서 중청을 거쳐 끝청까지는 키작은 관목사이를 걷는 산책로 수준의 저난이도의 길이다.



서북능선에 들어서면서 만나는 장엄한 풍경이다. 

여기서부터는 용의 이빨을 닮았다고해서 이름 붙여진 용아장성과 공룡의 등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공룡능선을 보면서 걷는다.



그 풍경이 짙은 운무에 가렸다가 보였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마등처럼 스처지나가는 모습은 용의 이빨 같기도 했고, 힘차게 용솟음치는 용의 등줄기 같기도 했다.




그렇게 금방이라도 용이 솟아 오를것 같은 풍경에 조금 등골이 오싹해져 왔다.



서북능선 좋주의 묘미는 저 풍경을 싫컷 보면서 걷는것인데 오늘은 운무가 제한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마치 환등기처럼 가끔씩 비춰주고 사라지기를 반복해서 몽환적인 사진이나마 담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서북능선에서 만난 야생화들이다.



서북능선은 대청봉에서 귀때기청봉, 대승령, 안산까지의 13km를 말한다.

그래서 설악산에서 가장 긴 능선으로 알려져 있다.



서북주능이라고도 하는 서북능선은 13km이지만 대청봉까지 올라야하는 거리와 안산에서 남교리로 내려가는 거리가 있기때문에 실제 산행 거리는 28.5km나 된다.



그래서 사실은 공룡능선보다도 더 힘든 코스다.



그중에서 나는 오늘 대청에서 한계령구간을 걷는 것이다.



끝청에서부터는 원시림을 방불케하는 능선길이 2km쯤 더 이어졌다.

그래서 여름 산행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는 쾌적한 산행을 했다.



구름때문에 조망이 없어서 조금 지루해질만하면 나타나는 야생화들이다.



그리고 만나는 너덜길.

한계령 삼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길은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귀때기청봉의 너덜길에 비하면 그리 심하지는 않은 편이다.



설악산에서 만나는 살아서 천년을 살고 죽어서 또 천년을 산다는 주목이다.

한계령 삼거리를 지나간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완만한 능선길이어서 그리 힘들거나 험하지 않는 길이다.

더군다나 날씨만 좋다면 설악의 속살을 보면서 걷기때문에 힘든줄 모르고 오르내릴 수 있는 길이다.



문제는 한계령 삼거리에서 한계령까지 2.3km다.

몸은 지쳐있는 상태인데 다시 꽤 가파른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비교적 이른 시간인 오후 4시에 하산을 완료했다.

대청봉에서 점심시간 포함 4시간 반쯤 걸린 셈이다.



귀때기청봉 털진달래 보러 다녀온지 1년여만에 다시 든 설악.

나중에 흐리고 이슬비가 와서 좀 아쉬웠지만 설악의 속살을 살포시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린 산행이었다.

여덟번째의 설악산 대청봉과 서북능선 산행.

여름 산행으로는 아내와 연애시절 이후 두번째다.

아무튼 다시한번 설악의 큰 품을 확인 한 서북능선 탐방이었다.

원래 서북능선은 대청봉에서 안산까지의 능선이지만 오늘은 한계령까지만 걸은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서북능선은 다 걸었다.

귀때기청봉을 다녀오고 대승령에서 안산을 거쳐 십이선녀탕으로 내려온적도 있기때문이다.



*산행코스:오색분소 ㅡ대청봉 ㅡ중청봉 ㅡ끝청 ㅡ서북능선 ㅡ한계령삼거리 ㅡ한계령휴계소(13.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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