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박2일로 지리산 천왕봉 오르기.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40화 지리산 3

by 그리고

지리산!!!

지리산은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산이다.

높이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산의 깊이로는 단연 다른 산의 추종을 불허하는 산이다.

그러다보니 지리산자락을 지나치지 않고 지나가는 해는 거의 없는것 같다.

작년엔 바래봉에 올랐었고 올해에도 산동 산수유 구경을 갔었다.



L1009257-2.jpg
L1009258-2.jpg

백무동 한신계곡 입구.

8년만에 다시 2박3일로 종주계획을 세웠다.

이번엔 천왕봉에 오르고 다시 노고단으로 하산하는 역종주계획이다.



L1009264-2.jpg
L1009269-2.jpg

남원역에서 택시를 타고 백무동에 도착해서 간단하게 아침을 사먹고 산행을 시작했다.

백무동에서는 장터목으로 바로 오르는 길과 한신계곡을 경유해서 세석대피소로 오르는 두갈래 길이 있다.

그중에 미답인 한신계곡 길을 택했다.



이번 산행은 2박3일의 넉넉한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한신계곡을 지나 세석대피소를 경유해서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름모를 폭포가 즐비한 한신계곡을 끼고 오르는 초반 등로는 콧노래가 절로 나올만큼 편하고 좋았다.



지리산 특유의 울창한 숲을 가르며 흐르는 풍부한 수량의 한신계곡.

숲속에서 울려퍼지는 물소리가 정겹다.



한신계곡은 흐르는 구간보다 떨어지는 구간이 훨씬 많다.

그래서 마치 계곡 전체가 하나의 긴 다단계 폭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내소 폭포.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

수행한지 12년이 되던날 도인은 이 폭포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채 건너는 마지막 수행을 했다.

그런데 중간에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고 도인은 그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도인은 "에이~ 나의 도는 끝났다. 나는 이만 '가네'"하며 떠나갔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이 이 소를 가네소라고 부르고 폭포를 가네소폭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L1009347.jpg

산행시작 3시간쯤이 지났다.

계곡이 끝나고 물소리가 잦아들 무렵 산길은 급격하게 가파라지고 있었다.



직벽에 가까운 구간이 2km쯤 이어졌다.

200m이상 쉬지 않고 오르기가 힘든 상황.



17kg의 배낭이 원망스러운 더딘 등정이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는 동안 가쁜 숨만큼이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렇게 말 그대로 악전고투 끝에 세석 갈림길에 섰다.

드디어 세석대피소가 보인다.

배낭 무게에 속절없이 짓눌리는 시간이 얼마였을까?

직벽에 가까운 경사의 오르막길 6.5km.

정말 힘들었다.

'苦盡甘來'라는 말이 어울리는 순간이다.

8년만에 다시보는 세석.



L1009390.jpg

세석의 길.

세석은 지리산의 교통 요지다.

벽소령에서 오는 종주능선길, 그리고 청학동쪽에서 올라오는 길과 백무동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서 천왕봉으로 가는 산상 사거리이다.

또한 야생화 군락지이기도 한 그 세석을 통하는 길들은 정겨운 꽃길이다.



세석은 왠지 깊고 깊은 산상에서 느끼는 평온함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일까?

따지고보면 산에서의 풍경으로는 그리 대단한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감탄하고 사진에 담고 어쩔줄을 몰라한다.




흔히 세석평전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세석평전의 '세석'을 순수 우리말로 표현하면 '작은 돌'이다.

그래서 잔돌베기라고도 부른다.

세석평전은 그러니까 잔돌이 많은 밭인 셈이다.



촛대봉가는 길에 다시 내려다 보는 세석대피소다.

세석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장터목대피소를 향해서 출발 했다.

아들과 함께 했던 지난번 처럼 오늘도 그리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서둘러 출발한 것이다.



촛대봉을 오르면서부터는 지리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지리산에서 가장 멋진 구간인지도 모른다.


지리산 하면 역시 깊은 산 맛이다.

아스라히 끝없이 반복되는 산그리메.

마치 산이 파도치는 듯한 저 풍경에 사람들은 매료된다.

이 구간은 그야말로 그 깊은 산 맛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L1009401.jpg
L1009403.jpg

드디어 천왕봉을 눈에 두고 걷는다.

오른쪽 마지막 봉우리가 천왕봉이다.

울긋불긋 이제 막 색동 새옷을 입은 지리산 길.

저 너울거리는 산그리메 너머로는 황혼빛이 물들기 시작했다.

아침 9시부터 걷기 시작한 발걸음은 이제 지치고 지쳐서 마음 따로 발 따로가 되어버렸지만 저 멋진 풍광에 다시 기운이 났다.



그러나 아직도 숙소가 예약되어 있는 장터목까지는 1.5km가 남은 상황인데 결국 일몰을 맞는다.

그래도 지리산 산상에서 맞는 일몰풍경 또한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기에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다.



아무튼 갈길은 바쁘지만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스럽기까지 한 지리산의 노을에 잠시 넋을 놓는다.



_M1A7717.jpg
_M1A7739.jpg

여기에서 환상적인 지리산 노을을 감상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건 아마도 지리산을 좋아해준데 대한 보상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길.

그 길은 정말 그림같은 길이다.

일명 연하선경이다.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연하선경'은 기암괴석과 고사목 그리고 운무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 속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듯한 기분이 든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제 막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그림같은 길 위로 으스름 해거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나는 가는 길을 멈추고 카메라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아직도 1km쯤은 더 가야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해가 지고 나자 어둠은 빠른 속도로 내려 앉았다.

8년 전 아들과 종주 할때에도 이길을 갔었지만 그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에 걸었기때문에 이리 멋진 풍광을 보지 못했었다.



오늘도 약간 늦은감은 있었지만 덕분에 그 유명한 지리산 낙조를 즐겼다.



_M1A7805.jpg
_M1A7808.jpg

드디어 오늘의 숙소 장터목 도착.

저녁7시까지 입실을 해야한다고 하는데 정확히 맞춘것 같다.

백무동에서 세석까지 6.5km를 많이 쉬며 6시간.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3.4km를 3시간.

많이 쉬고 사진놀이를 많이 했다고는 하지만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많이 걸리기만 한것이 아니라 몸이 녹초가 된것이 더 문제다.

내일 새벽 천왕봉에 오르려면 적당한 체력이 있어야 될터인데...


_M1A7800 (2).jpg
_M1A7804.jpg

장터목은 옛날에 장이 섯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석봉 남쪽 고개에 있는 작은 터로 옛날 천왕봉 남쪽 시천마을 사람들과 북쪽의 마천마을 사람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서 장을 세우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 했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은 대피소가 되어서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 물물교환이 아닌 마음을 교환 하는 장소가 되었다.

대피소에 예약확인을 하고 방을 배정 받고 담요 한장을 2000원에 대여하여 고단한 짐을 풀었다.

평일이라서 대피소는 약간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급히 저녁을 때우고 씻지도 못하고 들어오니 9시 소등이란다.

무거운 배낭에 짓눌린 온몸이 아파왔다.

그러나 그 아픔은 이내 피로에 묻히고 지칠대로지친 피곤한 몸은 눕자마자 세상 모르는 잠에 취해버렸다.



L1009426.jpg

둘쨋날 새벽.

헤드랜턴 하나로 어둠을 뚫고 천왕봉을 오른다.

앞에도 뒤에도 아무도 없는 깊고 높은 산길.

홀로 오르는 그 산길에 운무가 밀려왔다 밀려간다.

확실치도 않은 일출을 보겠다고 나서긴 나섰지만 혼자서 가는 산길은 역시 오싹했다.

그래서 걸음을 늦춘다.

뒷사람이 따라올수 있도록.



이윽고 제석봉을 넘어설 무렵.

두명의 산객이 나를 앞질러 간다.

그리고 뒷쪽에서도 인기척이 나기 시작했다.

통천문을 지날때쯤 다시 몇 팀에게 추월을 당하고 정상이 가까워질 무렵 어슴프레 어둠이 걷히자 천왕봉 정상이 무성영화의 흑백 화면처럼 크로즈업 되었다.



이윽고 천왕봉 정상.

모두들 혹여나 하고 귀하고 귀한 천왕봉 일출을 보겠노라고 새벽 걸음을 한 사람들이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듯 해가 뜨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해가 나올리 만무한 날씨는 오히려 빗방울까지 뿌리기 시작했다.



_M1A7768 (2).jpg
L1009429.jpg

가슴 벅차고 환희에 찰 천왕봉 정상이 실망감과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아쉽고 아쉽지만 인증샷은 하나 담고 내려가야지.



L1009434.jpg
L1009436.jpg

통천문.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로 통하는 문이란 뜻이다.

부정한 자는 통행을 못한다는 전설이 있는 통천문을 올라갈땐 어두워서 보지 못하고 내려올때에서야 제대로 본다.



L1009443.jpg
L1009448.jpg

역시 올라갈때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짙은 운무 속에서나마 눈으로도 보고 사진으로도 담아본다.



L1009457.jpg

제석봉 고사목 지대를 지난다.

지리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풍경중에 한 곳이다.

이러한 풍경이 만들어지게 된 건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이곳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구상나무숲이 울창했다.

그 숲을 1950년대 도벌꾼들이 도벌을 하면서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일부러 산불을 지르는데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_M1A7790.jpg
_M1A7792.jpg
_M1A7813.jpg

다시 장터목대피소.

비가 제법 내린다.

나머지 일정을 어찌 해야할지 생각이 깊어졌다.

정상을 다녀와서 목표가 없어지기도 했지만 비까지 오는 날씨에 원래 계획했던대로 역코스 종주를 하기도 그런 상황이다.

결국은 아침겸 점심을 먹고 하산하기로 한다.



_M1A7817.jpg
_M1A7827.jpg

하산은 최단코스인 중산리로 한다.

8년전 아들과 함께 왔을때 지루하게 내려왔던 길이다.

그래서 다시 오고싶지 않은 길인데 빠른 하산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하는 길이다.



_M1A7835.jpg
_M1A7837.jpg

유암폭포.



_M1A7884.jpg
_M1A7900.jpg
_M1A7929.jpg
_M1A7931.jpg

칼바위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이다.

여기서 부터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장터목에서 중산리로 내려오는 길은 5.3km로 아주 가파른 내리막길이지만 그리 거칠지는 않다.

그러나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 지루한 등산로다.

그래도 장터목 산장에 오르는 최단코스이기 때문에 당일코스로 많이 이용한다.

4시간여만에 중산리에 도착할 무렵 다시 비가 내린다.

중산리입구에서 다시 버스정류장까지 아스팔트길 1.9km 를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걷고나서야 하산이 끝났다.

지도상으로는 5.3km이지만 실제로는 7.2km인 셈이다.


산행코스:백무동 ㅡ한신계곡 ㅡ세석대피소(6.5km) ㅡ촛대봉 ㅡ장터목대피소(3.4km)1박ㅡ제석봉 ㅡ천왕봉(1.7km)ㅡ장터목대피소 ㅡ유암폭포 ㅡ칼바위 ㅡ중산리(5.3km)ㅡ버스정류장(1.9km)=총 18.7km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