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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애로사항

by 커피탄 리

난 완성된 사람이 아니다. 팔십 살이 된다고 해도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난 어떤 부분에서는 성장하고 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퇴보되어 가고 – 과정이거나 – 있다. 매일 글을 쓰는 건 즐겁다. 글은 쓰면 쓸수록 나날이 성장한다. 그러나 F1 레이싱카가 15000 RPM을 넘어가면 폭파할 수 있듯, 글쓰기도 엔진이 과열될 때까지 기어를 밟으면 고장 나 버릴 것이다. 그 점만 유의하면서 운전을 한다면, 어떤 코너가 나와도 두렵지 않다. 코너는 직선도로로 질주하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과정이니까. 드리프트를 하며 수도 없이 가드레일에 부딪혔기에 이제는 요령이 조금은 붙었달까. 나는 완벽한 글을 위해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과속하는 지름길이다. 적당히, 적당한 글을 쓸 것인데, 여기에 따르는 문제가 있다. 일단 나를 붙들고 있던 목적이 사라지니, 글을 쓸 동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일등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 완벽한 글을 써야 한다는 목표. 일찍 스타덤에 올라야 한다는 목표. 그 목표들이 사라지니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홀가분하다. 그렇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는 동시에 연필을 쥔 내 손도 헐거워졌다는 데에 있다. 예전이라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고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했을 시간에. 이제는 게임을 하거나, SNS를 괜히 들락거리거나, 쇼츠를 보거나, 영화를 본다. ‘왜 이렇게 됐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만, 생각에 별로 진전은 없다. 진정성도 없고. 전에 안 하던 짓들을 하니, 기분이 조금 이상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늘이나 숲을 마음 놓고 본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밖에 나가면 핸드폰을 쳐다보기 일쑤이다. 물론 여기에는 최근 내가 겪은 한 사건에 의한 심리적 요소도 관련이 있다. 여기서 그 사건을 말할 수는 없지만. 여하튼, 나는 꽤나 슬럼프를 겪고 있다. 마음이 추를 매달고 심해로 가라앉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고, 실제로 글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있다. 이 또한 과정이려니, 하는 마음과 여기서 치고 나가야 한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일 따위는 없다. 그냥 물고기가 깊은 바닷속을 헤엄쳐 나가듯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중이다.
글에 대한 이야기는 차치하고, 나의 완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건강적인 부분에 있어서, 나는 몹시 회복세를 타는 중이다. 매주 풋살을 하고, 좋은 분과 상담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몸과 정신이 회복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산에 오래 있다가, 다시 창원으로 내려온 것. 자퇴했던 대학에 재입학해 학교생활을 하며 몸을 움직인 것. 이러한 요소들이 내 치유에 발판을 깔아 주었다. 방이나 카페에만 틀어박혀 글을 쓰거나, 사람을 만나는 일 없이 책을 읽던 옛 시절과는 다르게. 지금의 생활은 다이나믹한 데가 있다. 이대로만 잘 간다면, 내가 약간의 운동을 생활에 양념처럼 추가한다면, 나는 더 건강해질 것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약을 끓게 될 것이다. 그동안 날 걱정해 주셨던 부모님께도 효도하는 일일 것이다. 내가 어떤 부분은 성장하고, 어떤 부분은 퇴보한다고 – 과정이거나 – 말했는데.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부분에 있어서는 난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퇴보했다. 아프기 전에야, 나는 착한 아들, 무슨 말을 하든 충실히 수행하던 착한 아들이었다면,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천덕꾸러기 아들이다. 아픈 내 건강을 위해, 부모님이 염려하며 권해주시는 것들 – 담배 끊어라, 운동해라, 영양제 챙겨 먹어라, 일찍 자라, 하시는 모든 것들, 심지어 강아지 산책하는 것이며 청소하는 것까지 – 을 내 일이 아니라는 듯이 거부했다. 내 죄를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머리로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몸은 도저히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은 인지하고 고치려고 하고 있다. 이렇게 나는 어떤 부분에는 성장하고 어떤 부분에는 퇴보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과정을 겪고 있다. 내가 오십 살, 팔십 살이 된다고 해도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극도의 의지를 들이지 않는다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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