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도 비밀 금고가 있다면. 금고의 문을 자물쇠로 열 수 있다면. 자물쇠로 문을 열면 비가 내린다면. 그것도 보통 정도의 강우량으로 내리는 비가 아니라 스콜성 비가 내린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가, 일기예보도 없이 길을 걷는 것은. 그렇게 젖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우리는 빗속을 걷는다. ‘빗소리는 사실 비 자체에서 나는 소리가 아닌 게 아닐까?’, ‘물체에 부딪혀서 소리가 나면 우리는 그걸 빗소리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어쩌면 진지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A형이 있다. 나는 그의 말에 수긍한다. 양철지붕에 맞으면 양철 울리는 소리가. 풀밭에 떨어지면, 풀 소리가.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지면 아스팔트 소리가 나는 것이라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그날 거리에는 많았는데, 또 하나의 자동차인 우산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서로 모를 일이었다. 빗물이 목청과 혓바닥에 닿지 않으면. 여하튼, 빗속을 걷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스콜이 쏟아져 내리든, 장맛비가 내리든, 부슬비가 내리든. 특히나 사람들과 걷는 걸음은.
외로움은 어린 시절 친구처럼 내 곁으로 온다. 그는 비 오는 날, 레인코트를 입고 뚜벅 걸음으로 –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 내게 자주 온다. 그런 날 기분은 전혀 유쾌하지 않다. 누가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해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같이 고기를 먹자고 말해줄 누군가마저 없다면. 집안에는 물론 집 밖에도 사람이 없어 종일 혼자여야 한다면. 기분은 손으로 주무른다고 펴질 일이 아니다. 하루 내내 다림질을 해야 한다. 그럴 때면 차라리 누군가 자물쇠로 여름의 비밀을 열지 않았으면 싶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오는 날이면, 난 혼자였던 것 같다. 서재에 책들이 쌓여 있었어도, 그들과 친해질 엄두를 못 냈다. 그저 회백색의 흐린 하늘에 압도당해, 침대에 누워 있었다. - 이런 어두운 얘기가 유쾌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 그때는 그랬고, 나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산의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비를, 물비늘들의 기나긴 행렬을 지켜보았다. 글을 한 편 길게 썼는데, 요약하자면, ‘아, 외로워, 여러분, 내 친구가 되어줘.’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잔에 대한 내용.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말을 하지만, 그때는 자못 심각했다. 친구들은 다 타지에 있었고, 나가는 모임은 소설 모임뿐이었으며 – 그마저도 2주에 한 번꼴이었다. - 새로 편입하게 된 학교에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몇 안 되는 친구들과도 스콜처럼 연락을 했다. 장마처럼 길고 – 스콜에 비해 - 미적지근하지는 않았다. 그들과의 연락으로는 마음의 잔을 다 채울 수 없었다. 아니, 어딘가에서 물이 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 무렵 나는 도서관에서만 살았다. 과거에 영광이 있었다면, 그건 과거의 영광이었을 뿐. 내 머리에는 비가 간간이, 아니, 많이 떨어졌고. 비는 쓸쓸한 소리를 냈다. 비는 양철지붕에 떨어질 때처럼 낭랑하고 운치 있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무표정한, 푸르스름한 곰팡이 같은, - 그런 피부색의 - 입술이 아래로 처진, 눈동자가 누렇고 동공에 힘이 없는, 팔다리가 앙상한, 그런 음을 냈다. 나는 크게 노래를 불렀다.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세상에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그러나 신은 공평하다는 것을 신 스스로가 드러내는 듯이, 지금 내 상황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책과 글 꾸러미를 가지고 집과 카페를 전전하던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제 내 곁에는 가까운 사람들이 있다. 다시 자퇴했던 대학으로 돌아왔다. - 타지에서 기숙사에 혼자 살게 되었다. - 재입학한 대학에서야, 날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대학 주변에 살고 있던 지인들과 관계를 다시 돈독하게 하면서, 내 상황은 역전되어 갔다. 단순히, ‘환경을 바꿔서 그런 거 아니야?’라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다만 환경을 바꾼 것만으로 그렇게 되었다기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나는 비를 혼자 맞지 않는다. 내가 혼자이건, 여럿이 걸을 때건, 내 곁에는 누군가가 있다. 난 그들의 존재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다. 스콜이 쏟아져 내리는 날에도,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사람들이 그 순간 내 곁에 없었다면 난 혼자 있겠지. 하필 비 오는 날, 우리가 만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만났고, 우리 정수리에 부딪힌 비는 이제 웃음소리를 낸다. 어느 봄날의, 숲의 새처럼 지저귀는 것 같기도 하다. 더욱이 비 냄새는 정신을 맑게 해 준다.
관계는 일시적이다. 내가 또 언제 꼬꾸라져서 혼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내게 슬픔과 어둠의 시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관계는 불완전하다. 관계는, 일시적인 공허를 해소하는 데에는 도움을 주지만, 본질적인 공허를 제거해 주진 못한다. 그 일은 오로지 신만이 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지혜와 이해를 뛰어넘는 신만이. 내가 만약 신이라면, 난 이렇게 할 것 같다. 먼저 각 사람이 가진 공허의 원인을 밝혀낸다. 그들의 마음에 빛을 들이붓는다. 곰팡이가 묻은 컵에, 뜨거운 물과 세제를 들이부으면 얼룩이 사라지고 반짝반짝한 면이 나오듯. 사람들의 상처와 어둠은 빛에 의해 드러난다. 빛으로 드러난 상처를 새로운 물로 말끔히 닦는다. 마음의 컵, 그러니까 텅 빈 마음속에 자신이 들어가 산다. 스스로 새로운 내용물이 되는 것이다. 그 내용물은 없어지지도, 썩지도 않는다. 사람의 내면은 날로 새로워지고, 사람은 그렇게 한 사람으로 완성되어 간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컵이 있다. 우리는 외로움과 고독 두 개의 컵 중에 고독을 선택한다. 외로움은 깨지기 쉬운 유리컵인 데 반해, 고독은 부서지지 않는 스테인리스 잔이다. 고독의 잔에, 향 좋은 커피를 부어 그걸 숲으로 들고 간다. 숲에는 사선의 햇살이 쏟아진다. 햇살 또한 비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만으로는 색을 내지 못하지만, 어떤 사물에 닿느냐에 따라 그 빛깔이 달라진다. 햇빛과 인간이 얼마나 서로 조응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마음이 변화를 겪는 것이다.
여름에, 때때로 스콜이 쏟아져 내리는 이 여름에. 나는 여름의 마음을 자물쇠로 열어, 그의 비밀을 알고 싶다. 빗소리, 비 냄새, 비가 내리는 세기, 굵기, 시간. 그것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오르락내리락하는지. 어떤 이는 사람을 찾고, 어떤 이는 사람을 찾지 못하고 하는 그런 것들을 알고 싶다. 이 여름의 비밀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