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다. 여름휴가철에 사람들은 피서지를 찾는다. 계곡이든 바다든. 나는 휴가철에 바다에 가본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찾기 때문에, 해운대라든지 광안리라든지 하는 바다에 가본 적이 거의 없다. 바다는 사람들을 왜 부르는 걸까. 바다에는 어린 시절을 향한 그리움이 부르는 것일까. 끝없이 반짝이는 푸른 자유가 부르는 것일까. 그런 것이라면 내게도 있다. 하지만 주로 내게는 겨울에 있는 기억이다.
이상하게도 내게는 겨울 바다에 얽힌 기억들이 많다. 그 기억들의 목소리들은 지금도 나를 유혹하고, 내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려 한다. 그 울진 바다에는 사람이 없다. 나와 선생님 단둘뿐이 없다. 우리는 검은 외투를 봉투처럼 뒤집어쓰고 백사장을 걷는다. 모래는 반짝이지 않는다. 약한 겨울 햇살은 파도 위에 원을 그리지도 않는다. 모래 사이로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갈매기 몇 마리가 그 주위를 통통 걸어 다닌다. 바다는 정말이지 푸르다. 일직선 아닌 수평선은 완만한 곡선으로 흐른다. 바다 깊은 곳에 푸른 접시를 박아 놓은 것 같다. 우리는 갈매기가 나는 것을 보기도 하고, 또 쌀쌀한 바람을 맞는다.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채 백사장을 걷는다.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미 많은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입시 미술학원 사제의 관계로 만났다. 그는 내가 속해 있던 입사반 담임이었다. 그랬던 그가 나의 키팅 선생이 될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짧았던 만남의 기간. 몇 번의 대화. 우리는 수업이 끝나고 문학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읽고 있는 글에 관해, 내가 쓰는 글에 관해 그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일반적인 선생님이라면 내게 해 줄 수 없는 이야기를. 특별히 내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는 해줄 수 없는 이야기를.
그는 내가 쓴 - 100여 편의 시들이 들어있는 - 엉터리 시집과 250여 쪽짜리 엉터리 장편 소설을 싫은 티 하나 없이 읽었다. 잘못된 점과 잘된 점을 피드백해 주었다. - 스물한 살이 되고 나서는 그 선생님이 생각나지 않았는데. 요즘에야 그토록 생각이 나는 건 왜일까. 연락처가 있다면 연락을 드리고 싶다. - 우리가 바다에 간 것은, 입시를 모두 마친 2월이었다. 스물한 살이 된 나는 그의 집이 있는 울진에 초대를 받고 갔다. 나는 거기서 하룻밤을 묵으며 대화를 나눴다. 주로 문학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의 집은 ‘책투성이’였다. 내가 아는 책부터, 내가 모르는 수천 권의 책이 그의 서가에 있었다. ‘선생님의 많은 지식들이 다 거기서 왔구나’ 나는 생각했다. 술잔을 기울이며 – 나는 마시지 않았다. - 그는 내게 많은 경험을 해 보라고 했다. 혼자 여행을 가서 많은 이야기를 만들라고 했다. (사실 이 말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날, 우리는 바닷가 근처에 있는 해물칼국수를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날 터미널에 내려다 주며 그는 내게, “너는 될 것 같아. 어떻게든 글을 계속 쓸 거니까”라고 말했다. 그 말을 곱씹으며 나는 마산으로 내려왔고, 그 뒤 세상에 내던져져서 대학 생활을 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스물한 살에서 스물네 살 사이에 바다를 거의 못 보고 살다가. 아픔을 한 무더기 안고 혼자 떠난 기차여행에서 바다를 보게 되었다. 겨울의 군산 밤바다와 정동진 밤바다. 내가 바랐던 푸른 바다를 볼 수는 없었지만 좋았다. 정동진에서, 난 펜션에 숨어 있었는데, 바닷바람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뛰쳐나가보니, 바람은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파도는 포탄이 터지는 소리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그때 슬픔 많은 인생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마음속에서는 늘 자살을 품고 있었는데, 정동진의 바람과 파도 소리는 내게 약간의 영향을 준 것 같다. 기장에 내려와서 병을 치료하며, 나는 글을 적기 시작했다. 4년 만에, 선생님의 기대와 달리 서랍 속에 감춰뒀던 글쓰기를. 5년의 투병 생활 동안 글은 내 친구, 낙이 되어 주었고, 이제는 글 없는 삶을 상상할 수가 없다. 내가 품었던 생각들, 내가 했던 노력들이 모여 그나마 지금의 나라도 있는 것 같다는 홀가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휴가철인 지금도 나는 바다에 가지 않는다. 겨울에, 혼자 가든 여럿이 가든 꼭 바다를 갔기 때문인 것 같기도. 창원에서 부산까지. 혹은 창원에서 진해까지. 창원에서 마산까지.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보러 갈 수 있는데도. 어딘지 사람이 붐비는 바다는 가고 싶지 않다. 사람이 싫어서는 아닐 것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그렇다면 내가 휴가철의 여름 바다에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곳에 푸른 자유가 있고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 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