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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기도

삶을 사는 이유

by 커피탄 리

두 눈을 감았습니다. 내 숨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어둠 속을 해쳐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두 눈을 감으려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습니다. 두 손을 모으려고 두 눈을 감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속삭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새싹의 목소리입니다. 강물 속에서 들려오는 물고기의 숨소리입니다. 이곳에선 아무리 애를 써도 들려오지 않는 슬픈 구름의 외침입니다. 오늘은 하늘이 파아-랬습니다. 금붕어처럼 빛을 머금은 구름 떼는 유려한 필치로 그러져 있었습니다. 수목은 울창했고, 산은 우뚝하고 어느 때보다도 짙푸르렀습니다.


서점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있지 않은 책을 고르는 일입니다. 나는 어느 때 할 것 없이 서점에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려고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서점의 진열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최선의 책을 찾게 해 달라고. 그때는 왜, 내가 책에게로 가는 것이 아닌 책이 내게로 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을까요? 그 소리는 내 귀에 꽂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계속 속삭였음에도. 나는 자꾸만 나 자신을 메꾸려 했습니다. 퍼즐 조각을 내 살에 끼워 넣는 것처럼. 아름다운 남의 퍼즐 조각이 보이면, 그것을 삼키려 했습니다. 배가 불러 다 토하고 난 다음에야 난 그것이 최선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추가 하나 있습니다. 그 추는 양쪽 모두에게 사랑을 듬뿍 줍니다. 하나의 이름은 열등, 다른 하나의 이름은 우월. 나는 그 추를 타고 양쪽 모두에게 달려갑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질라치면, 반대쪽으로 재빨리 몸을 기울입니다. 추는 멈출 줄 모릅니다. 서점에서 진열대를 노려보던 나는 이제 아이가 되어 고객용 대기 의자에 앉아 책을 읽습니다. 책에는 많은 보물들이 숨어 있습니다. 나는 그 보물을 자루에 담기 시작합니다. 과거의 일. 내가 자존감이 낮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책이 그랬습니다. 그러니 그토록 간절하게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이라고. 마치 오래 굶주린 하얀 털의 맹수처럼. 온순해 보이지만 날카로운 이빨을 터부룩한 털 속에 감추고 있는 것이라고요. 상처 입은 맹수. 상처를 입었기에 맹수가 된 아이. 그는 많은 상처를 역시 털 속에 숨기고 있습니다. 상처는 상처로 남아있지 않고 그 아이의 뇌에 검은 뿌리를 내렸습니다. 뇌가 위에 있는 데 어떻게 뿌리를 내리냐고요? 그렇다면 줄기와 가지를 틔워냈다는 표현이 맞겠군요. 상처는 깨진 유리잔처럼 아이의 손을 다치게 했습니다. 아이의 손은 피로 물들었고, 그는 다른 사람들을 만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아이의 곁을 지나갔습니다. 그중에는 부자도 있었고, 가난한 자도 있었고, 능력이 많은 사람도 있었고, 평범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깨진 유리잔을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바삐 자기 갈 길을 갈 뿐이었습니다. 실은 사람들도 다 깨진 유리잔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자신의 것을 돌보느라 아이의 것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것조차도 돌보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죠. 아이는 추를 타고 놀았습니다. 하나는 회피, 하나는 반항. 그 추는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단 하나의 기준, 다림줄이 내려지기 전에. 그 줄이 내려지자 아이의 요동치던 심장은 진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줄은 어느 고원의 양 떼를 돌보던 한 목자가 들고 있던 줄이었습니다. 그 목자는 아파하던 양들에게 그 줄을 자주 들이댔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파하던 양의 체온이 원래대로 돌아오고, 상처 입은 부위도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목자는 그 줄을 들고 온 세상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미치광이라며 손가락질했습니다. 걔 중에는 목자의 말을 믿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 사람들은 마음과 육체의 병을 고쳤습니다.

아이는 바닥에서 일어났습니다. 아이는 그제야 아이다워졌습니다. 풀밭에서 꽃을 매만지며 놀고 꽃에 입 맞추고, 곤충들과 벌레들을 만졌습니다. 나무 그늘, 나무 둥치에 꼭 엄마 무릎에 눕는 거처럼 누워서 지나가는 구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과일나무에서 과일을 따먹기도 하고, 냇물에서 물장구를 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언덕 위에서 젖은 몸을 말리며 쉴 곳을 찾아 산 아래로 달아나는 석양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아이의 마음은 뜨거웠고, 그건 사람들이 따뜻함이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이제 그 마음을 다른 사람을 향해서도 쏟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다시 도시로 갔습니다. 아이의 눈에, 도시에는 잘못된 추를 타고 노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들에게 천천히,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이제 감았던 눈을 다시 떠봅니다. 밤은 고요하고, 구름에 가려진 별들은 조용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달은 시골 한적한 농가에 빛을 주러 가고, 새들은 전봇대 위에서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내 두 손에는 가득 땀이 묻어 있습니다. 아이와 그의 목자는 분명 내게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내게 왜 왔던 것이며 또 그들은 누구일까요? 의문들이 가득했지만,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평온하고 따뜻했습니다. 나도 이제 일어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온정을 전하려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많이 있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한 사람에게라도 먼저 다가가려 합니다. 세상엔 남몰래 아파하지 않는 사람이 없기에. 그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일만큼 바람직한 일이 또 있을까요? 오래전 네흘류도프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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