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나는. 숲의 나뭇잎과 잔가지 사이로 빛이 스며들었다. 오르는 동안 바람결은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무거웠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지르르 흘러내렸다. 항상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기쁨도 슬픔도 아닌 어떤 감정을 물고서.
언덕 위에 서면, 온 세상이 내려다보였다. 첩첩 산들과 굽이진 맑은 강줄기, 강 속을 헤엄치는 구름무리. 숲 속의 단풍나무들, 은행나무들. 하늘 거인의 다리처럼 우뚝 선 아파트 단지와, 아파트 단지와, 아파트 단지와. 공장들과, 거대한 교량과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도로들. 또 푸른 바람의 노래.
해질녘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가슴이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갑갑했다. 잔털 달린 풀떼기로 휘젓는 듯 간지러웠다.
멀리 산봉우리 위에는 교회당 십자가가 빛을 잃은 듯이 서 있었다. 마음이 이상하게 아려왔다. 산 위에서 찬송가 소리는 들려왔지만,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구름 속에도, 햇무리 속에도 예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드는 생각이, 정말 예수는 있나 하는 것이었다. 바람에 물어도, 구름에 물어도 대답은 없었다. 낭떠러지 끝에 돌부리 하나가 보였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 낙엽을 바스락 구겼다. 그래도 예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바람도 구름도 여전히 차분했다. 풀떼기 속의 노란 꽃들도 말이 없었다. 해질녘이 다가오고 있었다. 붉은 볕이 나무에, 바위에, 꽃에 올라탔다. 이윽고 해가 산머리 아래로 떨어지자, 아파트와 공장에 하나, 둘 불이 켜졌다.
무슨 연극의 서막처럼 어스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난 예수가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멀리 빛이 보이는 것 같아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예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교회의 십자가에 핏빛이 들어왔을 뿐이었다. 불빛은 고장 난 듯이 계속 깜빡깜빡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