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탄 리 Nov 05. 2023

지는 가을에

실비가 내리니

세상이 시드는구나

둥근 사기그릇에 담긴

귤도 썩고

발에 바스락 채이는

낙엽도 썩어가고

흐린 구름 속에서

노을도

날마다 검게

타들어간다


새벽에 창틀로 새어드는

찬바람에 막힌 코

눈과 귀로만 세상을

머금고 오물조물거린다

낙엽이 길을 만드는 것 같아

새소리가 그리로 이끄는 것 같아

길 끝에는 누군가 서 있는데

가을볕에도 졸지 않고

찬바람에도 휘날리지 않고

목소리도 없는

그는

형상의 담벼락에

갇혀 있지 않네


낙엽이 덮인 길

그 길 따라 갈지자로 걸어가면

잎 떨어진 나무들과

새 울음소리

낙엽 쓰는 소리뿐

그는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들리지 않지만

내 마음속 빨간 십자가 나무에는

날마다 새롭게 순이 돋아나네


길 끝의 첨탑 끝의

십자가 위로

구름이 어둔 그늘을 짓고

몇몇 교인들이 그 집으로 들어가네

낙엽 타는 소리

고구마 타는 냄새와,

가을 녘은 저물어 가는데

마음속 빨간 십자가 나무에는

날마다 새롭게 순이 돋아나네

작가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