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는 아무나 좋아할 수 없는 이유
백서 시를 두고 너무나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백석 시는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요. 백석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왜 그렇게까지 좋다고 하는 걸까요? 싫어하는 사람은 또 왜 그렇게까지 싫다고 하는 걸까요? 그 이유를 밝혀 볼게요.
우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작품에 어떤 장치를 해 두었는지를 먼저 살펴봐야겠지요. 어떤 작품은 읽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반면에 백석의 시는 읽으면 바로 알게 되는 것은 별로 없고 읽으면 궁금증이 폭발해요. 그런데 평소에 이런 질문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백석의 시가 불편하겠지요. 그러나 반대로 이런 질문을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매우 반기게 되고요.
예, 그래요. 원래 시라고 하면 직접 대놓고 말하거나 하지 않아요. 대놓고 그냥 말하는 것을 두고 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짧은 글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많은 사람들이 이 그냥 짧은 글과 시를 구별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짧으면 시라고 생각해요. 시뿐 아니라 소설이나 수필에서도 직접 대놓고 말하지 않아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지요. 작가가 턱,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요. 작가가 의도한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상황과 사물을 드러내어 서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좋은 문학 작품은 읽고 나서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것인데요. 그래서 반드시 다시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인데요. 읽을 땐 몰랐던 것들이 하나씩 천천히 튀어올라오기 때문이지요. 언제 튀어올라오는지가 중요한데요. 그건 독자가 자신의 삶을 사는 과정에서 어떤 사건을 겪을 때, 그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튀어올라와요. 자신의 해석이 맞는지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것이고요. 시샘의 경우에는 중학생 때 읽었던 작품들이 10년 뒤에 20년 뒤에 떠올라요. (딴 말... 어릴 때 독서가 매우 중요해요. 알든 모르든 일단 읽어야 해요. 그 참된 의미는 나중에 알게 되더라도요.)
자, 이제 백석 시를 좋아하는 당신이 천재인 이유를 자세히 밝혀 볼게요.
백석 시의 미학적 장치는 한 마디로 정의하면 모더니즘이에요. 모더니즘이라는 것이 뭘까요? 예, 기존의 전통적이고 정형적인 틀에서 벗어나서 좀 더 인간 중심적인 것을 추구하는 미학 이론이지요. 백석이 시를 창작했던 30년대 당시에는 한국의 문단에 모더니즘이라는 것이 붐을 일으켰던 때에요. 그때 모더니즘 작가들로는 정지용, 김기림, 이상, 김광균과 같은 시인들이었어요. 이 시인들은 기계와 문명을 중심으로 시각적인 감각과 회화성을 중시했지요.
독특하게도 백석은 이때 독보적인 모더니즘 작품을 썼는데요. 이들 모더니즘 작가들이 회화성과 이미지즘과 도시적이고 기계적인 것에 집중할 때, 백석은 엉뚱하게도 몸의 감각에 해당하는 촉각에 좀 더 집중했고, 토속적이고 향토적이며 지역적인 것에 초점을 두었어요. 너무나 독보적이지요.
9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다시 보니 어떤가요? 문명과 기계적인 것에 대해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지쳐 있어요. 내 것, 나다운 것, 향기로운 것, 작은 것, 오래된 것, 바뀌지 않는 인간의 마음, 다정한 것 이런 것들이 그리워졌어요. 물질적인 것 말고 정서적인 것이요. 거대한 것 말고 소박한 것이요. 자꾸 바뀌고 변화하는 무서운 문명과 기계 말고 초가집과 낡은 지붕이요. 백석은 그 당시에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던 것들에 관심을 두었던 것인데요. 수십 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지금의 오늘의 감성을 건드리고 있어요.
게다가, 작가가 툭 튀어나와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하는 그런 일이 아예 없어요. 그냥 다 보여주기만 해요. 마치 영화를 촬영하듯이 멀찍이 떨어져서 풍경을 보여주고, 그 안으로 살살 들어가요. 원경과 근경을 오가면서 장면을 묘사해서 보여주고 있어요. 이렇게 하면 독자는 정신을 못 차려요. 이것이 그냥 영상으로 주어질 때에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되겠지만 문장으로 쓰여 있으면 스스로 생각하면서 읽어야 해요. 장면이 휙휙 바뀌는 것을 독자가 스스로 머릿속에서 그려낼 수 있어야 하는데요. 이게 능동적으로 주체적으로 스스로 안 되는 사람에게는 불편한 것이지요. 뭘 생각하지 않으면 내용이 전달이 안 되니까요. 그뿐인가요. 장면을 머릿속에서 그렸다고 해도 그 다음이 또 문제가 돼요. 그 장면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그걸 해석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왜냐하면 장면이 또 바뀌는데요. 아무런 개연성이 없어요. 일명 몽타주 기법이라고 하는데요 다양한 장면이 하나의 화면에서 동시에 보여지는 것처럼 시에서도 장면이 휙휙 바뀌는데 왜 바뀌는지 논리적 연결이 안 되니까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그렇다면 백석은 왜 이렇게 이해하기 불편하게 작품을 쓴 것일까요? 그렇다면 백석의 시는 정말 어려운 작품일까요?
답변부터 한다면 절대로 아닙니다. 백석 시는 어렵지도 않고 불편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문제는 백석 시인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독자에게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독자들의 의식이 지나치게 수동적이거나 편협하기 때문입니다. 백석 작가는 결코 어렵게 쓰지 않았습니다. 고어나 한자나 낯선 어휘가 많은 건, 그것이 30년대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30년대에 쓰인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다른 작품들은 안 어렵던데 왜 그럼 백석의 시만 그렇게 어렵냐?라고 할 텐데요. 예, 그렇습니다. 백석의 시어들은 현대어로 해석이 안 되는 시어들이 많습니다. 감각어나 토속어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이 있어요. 우리가 백석이 시에서 담아내고 있는 그 감각어와 토속어들을 낯설어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이 그렇게 예쁜 모습은 아니지요. 좀 아쉬운 모습입니다. 그 소중한 우리의 감각어와 토속어는 우린 것인데요. 우리가 우리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자, 보세요. 정리해 볼게요.
백석은 시에서 잔소리 하나 없이 그저 보여주고 있어요. 장면들을 정성스럽게 모으고 감각을 살려서 마치 독자가 그 현장에 가 있는 듯한 생동감을 전해주고 있어요. 마치 독자가 그 현장에서 겪고 있는 듯이 섬세하게 낱낱이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어요. 독자가 자유롭게, 마음껏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귀한 작품을 두고,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독자는 백석의 그 정성을 몰라주고 있는 것이고요. 자유롭게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자유를 준 것을 두고, 자유를 즐길 줄 모르는 독자가 뭘 더 어떻게 답을 내려달라고 투정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백석의 시는 절대 어렵지 않아요. 불편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정반대예요. 쉽게 자유롭게,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섬세한 배려가 담긴 작품이지요. 작가가 자신이 잘났다고 잘난 체를 한 것도 없고, 어려운 말로 어려운 사상으로 잔소리를 하면서 독자의 기를 죽이지도 않았어요. 너무나 정교한 틀 속에 가두지도 않았어요. 자연스럽고도 자유롭고도 유연하게 즐길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배려를 한 것이지요. 누구나 알 수 있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내 것, 우리 것, 작은 것, 소박한 것, 그러면서도 아주 오랜동안 우리와 함께 했던 것들에 집중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독자가 직접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어요. 세상의 어떤 시가 백석의 시보다 어떻게 더 친절하고 쉬울 수 있을까요. 이런 시를 두고 게으른 독자들이 투정을 부리고 있는 거예요.
어떤 굉장하신 교수님은 시샘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백석의 시는 내용도 별로 없고 해석도 안 되고, 어려워."
기가 막혔어요. 시샘은 그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바쁘셔서 백석의 시를 읽을 겨를이 없어서 그러셨을 거라고요. 시샘도 그랬으니까요. 교수님께서 시간을 내어 한번만 제대로 읽으셨어도 절대 그렇게 생각하실 수 없을 거라고요.
다음은 제7회 백석시노래말꽃놀이(26년 4월 19일) 중 2부에서 백석의 시낭송법을 강의한 시샘의 영상 내용을 정리해 둔 것입니다.
https://youtube.com/shorts/O-uHSPyyu2Y?si=nOaqUwEiTP9Wce7X
이미지즘, 비정의 미학, 몽타주 기법을 바탕으로 '능동적 독자'의 역할의 중요성
시의 여백에서 발견한 뜻밖의 지능
우리는 흔히 지능을 숫자로 계량하곤 합니다. 하지만 문학의 세계, 특히 백석이라는 거대한 산맥 앞에 서면 지능의 정의는 새롭게 쓰여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백석의 시를 읽으며 평안도 방언의 투박함 속에서 서늘한 미학을 발견하고, 그 파편화된 장면들 사이에서 묘한 정서적 울림을 느낀다면 당신은 단언컨대 '천재적 감각'을 지닌 사람입니다. 백석의 시는 독자가 멈춰 서서 스스로 사유하며 조각을 맞추지 않으면 결코 그 정수를 보여주지 않는 고도의 심리적 장치들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더니즘 기법이 요구하는 ‘천재적 독법’
백석의 시가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하다'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 기법적 특징 때문입니다. 이 장치들은 독자로 하여금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능동적 주체’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첫째, 이미지즘(Imagism)을 통한 시각적 형상화입니다. 백석은 시 속에서 작가가 직접 등장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감각적인 장면을 독자의 눈앞에 툭 던져줄 뿐입니다. 작가는 장치만 마련할 뿐, 그 이미지를 보고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입니다. 이 암호를 해독해 내는 능동적인 독자만이 시의 속살을 만질 수 있습니다.
둘째, 비정(Unfeeling)의 미학입니다. 백석은 어느 상황에서도 직접 개입해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지 않습니다. 비정할 정도로 냉정하게 상황을 묘사할 뿐이죠. 슬프다고 말하지 않는데 슬픔을 느끼고,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데 고립감을 읽어내는 것, 이것은 고도의 공감적 추론 능력이 필요한 '천재적 유희'입니다.
셋째, 몽타주(Montage) 기법과 파편화된 장면의 재구성입니다. 그의 시는 기존의 정형적인 율격을 따르지 않으며, 영화의 편집 기법처럼 이질적인 장면들을 교차시킵니다. 갑자기 뜬금없는 대상이 등장하거나 시간이 비약하기도 합니다. 능동적 독자는 이 흩어진 파편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는 편집자가 되어야 합니다. 데이터를 유의미한 정보로 융합하는 이 과정이 바로 우리가 천재성이라 부르는 인지 역량의 핵심입니다.
스스로 빛나는 독자가 완성하는 세계
결국 시는 시인이 마침표를 찍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독자가 그 시를 자신의 호흡과 해석으로 채워 넣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습니다. 백석은 처음부터 아무나 자신의 시를 이해하기를 원치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대신, 시어 뒤에 숨은 공기를 상상력으로 복원해 낼 줄 아는 능동적인 주체들만을 자신의 세계로 초대했습니다.
백석의 시가 9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그의 시가 가진 깊이만큼이나 그것을 능동적으로 탐험하려는 당신 같은 ‘천재 독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시를 읽으며 느꼈던 그 전율은 당신 내면의 통찰력이 백석의 언어와 충돌하며 만들어낸 불꽃입니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백석을 사랑하는 당신은 이미 시인과 대등하게 대화하는 이 시대의 능동적인 천재입니다.
제8회 백석시낭송공연
26년 5월 17일 일요일 오후 3시 성북정보도서관 2층 세미나실
(참가 신청서 작성하시면, 초대장 보내드려요. =>https://forms.gle/FKjZs9d41CrFN5Uy6)
백석시낭송대회 26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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