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순간에 나의 목숨을 살린 시 한 편

생명의 서, 유치환

by 시샘 김양경

결국 나는 나를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는 집으로 가지 않고, 한강다리를 향해 걸었다.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살아왔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결코 나의 뜻을 받아주시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로서도 방법이 없다. 나는 이대로 나의 삶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는 미련 없이 한강 다리로 향했고, 한강 다리 위에 섰다. 출렁출렁 일렁이는 강물이 물살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순간 눈물이 한강물처럼 흘러내렸다. 이제 곧 끝이 날 나의 짧은 생애를 생각하니 눈물은 계속해서 쏟아졌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때 불현듯 떠오른 시 하나가 있었다. 국어 선생님께서 암송하라고 숙제로 내주셨던 시였다. 나의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암송했던 시 한 편이 떠올랐고, 나는 그대로 서서 시를 암송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국어 시간에 달달 외워두었던 시였는데, 내가 생을 마감하려는 순간에 이 시가 떠오를 줄은 몰랐다. 미리 외워두었던 시 한 편은 죽음을 앞에 둔 나에게 생의 다른 이면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나의 지식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삶의 방법이 나를 의심하게 할 때, 내가 나 스스로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될 때, 그래서 내 마음이 흔들리고 병든 나무처럼 내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시는 이미 나의 이런 고통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내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내가 늘 외웠던 시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줄줄 외웠던 시였는데 그 시의 구절이 절체절명의 절망의 순간에 떠올라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붙잡아 줄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강물처럼 흘러넘치는 눈물을 흘리며 울고 또 울었다. 그렇지만 뛰어내리지는 않았다. 나는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을 향해 걸어가 보기로 했다.



이 이야기는 명문대 교수님께서 고등학생 때의 일이라며 나에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내가 화자가 되어 상상해서 쓴 글이다. 교수님은 이 시 한 편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감명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나 또한 교수님과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내 삶의 고비 때마다 이 시를 통해 나의 마음을 붙잡아 왔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처럼 목숨까지 구한 것은 아니었으나, 고비 때마다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잡아 주었던,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시였던 것이다.




나도 교수님처럼 이 시를 국어 시간에 알게 됐고, 이 시는 삶의 고비 때마다 나에게 좋은 질문을 해 주었다. 나의 지식이, 내가 믿고 따르던 것들이 정말 믿고 따를만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했다. 내가 믿고 따르던 것들에 대한 배신감에 사로 잡혀 고통스러워 해야 했던 순간에 나는 상대방이나 상황을 탓하기보다는 내 지식의 짧음과 얕음에 대한 반성을 했다. 내가 겪게 되는 이런 상황이 나만 겪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시인도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시인에 비해서 덜 진지하고 덜 고통스럽게 사는구나 하는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부끄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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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시 한 편으로 고통스럽고 배신감을 느껴야 하는 순간에, 나를 이해했고, 반성할 수 있었다. 이 시를 가슴에 새긴 이후로는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생각했고 상황이 아무리 나빠졌어도, 상대방이나 상황을 탓하기에 앞서 나를 반성하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반성의 순간은 외롭고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나를 위로했다. 시인도 그랬고, 어떤 훌륭한 사람도 그랬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으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동시에 나는 또 어디에서 어떤 지식을 통해 삶을 다시 세워야 하는지, 내가 향해야 하는 방향은 어디인지를 찾기 위해 방황을 하기도 했다. 그런 방황의 진짜 본심은 불행이고 불쾌감이거나 그런 것들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에게 뚜렷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증오가 아니라 애증이었다고, 애증이라는 것은 증오가 먼저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서운한 감정이었으니까. 마음이 병들고 미워하는 과정 자체가 뚜렷한 존재가 되기 위한 훌륭해지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런 성장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라면 나 스스로 머나 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라비아의 사막에서는 그 모든 것의 처음 시작인 상태이고 절대 고독 상태에서, 그 모든 것을 다 빼앗긴 상태에서 다시 정리하고 다시 선택하고 다시 재배치하는 과정을 거치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내 삶이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내 인생이 헛된 것으로 낭비되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바람을 따라 날아다니는 낙엽이 아니라 날개를 가진 나비처럼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스스로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를 반복해서 암송하는 동안에 나의 의식은 점점 더 깊어졌고, 뚜렷해졌다. 나의 지식이 올바른 지식인가에 대한 회의를 품고,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서 스스로를 점검해 볼 수 있었다. 시를 암송하는 일만으로도, 나는 내 삶을 의식할 수 있었고, 내 삶이 내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주체적 자아와 소통할 수 있었다.


이렇게 이 시 한 편은 내게 질문을 해 주었고, 내가 내 삶에 불평을 하는 순간에는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다 버리고 떠난다면 어떨 것 같은지를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런 의식의 과정을 통해 내 생애와 삶이 생존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지 않도록 도와 주었다.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나는 다소 낭만적이고 과격한 이 표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나는 시를 읽는다. 차라리 어느 사구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내 생명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 시를 떠올렸던 건, 암송 덕분이었다. 암송해 둔 시 한 편이 교수님의 귀한 목숨을 살려냈다. 암송을 해 두면 어느 때고 내 의식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어 좋다. 고등학생이었던 교수님이 이 시를 암송을 해 둔 덕분에 위기의 순간에 시와 소통할 수 있었고, 어린 교수님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시 한 편이 한 사람의 목숨을 구했고, 내 인생의 방향을 잡아 주었다. 또한 이러한 일은 교수님이나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겪었던 일일 것이다. 나는 이 소중한 경험을 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시를 암송한다면, 위기의 순간에 자기 스스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삶의 힘든 고비를 넘어야 하는 사람에게, 시낭송을 권하고 싶다. 시를 자신의 음성으로 낭송하고, 그 소리를 자신이 듣고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할 뿐 아니라 시에 담긴 의미를 통해서, 나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나를 반영해서 비춰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나는 매월 4째주 일요일 3시에 성북정보도서관에서 시낭송 모임을 하고 있다. 언제든 오시라. 함께 시를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시는 나에게 힘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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