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굳이 지리산을 찾아오지 말아 달라고
3월이다. 매화꽃이 피어오를 때다. 이맘 때쯤해서, 지리산에 사는 이원규 시인은 매화꽃에 뒤덮인 자신의 집을 페이스북에 올릴 게다. 해마다, 매화꽃이 구름처럼 피어나는 곳에 낡고 작은 집이 한 채 들어 앉아 있다. 그곳에서 이원규 시인이 산다.
필자가 아는 한도 내에서 현존하는 가장 실천적인 시인이다. 이원규 시인의 진실하고 뚜렷한 삶의 행적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설명을 도와 줄 테고, 나는 그의 시 한 편을 제대로 들여다 보려고 한다. 나는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시인의 시를 통해서 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먼저 시 전체를 제대로 읽어 본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원규 시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들어가기 전에
프랑스아 플러스의 작품 "마지막 거인"에서 인간들은 거인들이 사는 깊은 원시림까지 가서 거인들을 찾아서 죽이고 목을 잘라서 가지고 간다. 이때 거인 안텔라는 목이 잘려 실려가면서 주인공 볼트모어에게 한 마디 한다.
"침묵을 지킬 수는 없었니?"라고.
인간들은 호기심에 굳이 원시림까지 찾아들어가서 잠자는 거인들을 깨우고, 거인들을 학살하고, 거인들의 머리를 자르는 등의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주인공 아치볼드가 처음 거인들을 찾아간 건 학문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렸고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거인들이 사는 곳까지 찾아가서 거인들을 학살하고 수집했다.
인간들의 단순한 호기심과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서슴치 않는 이들이 벌인 끔찍한 행위였다. 거인 안텔라가 원망했던 말처럼 볼트모어가 침묵을 지켜주었다면 여전히 지구에도 아름다운 거인들이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거인'에서 거인들의 모습은 인간이 지켜야 하는 순수성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다 골고루 갖춘 인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원규 시인의 작품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을 읽어보면서 감상을 해 보려고 한다.
- 서문
1. 행여
다들 오라고 아우성인데 이 시에서는 '행여'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그럴 일이 있다면 하는 전제부터가 낯설다. 미리 상대가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예측하고 있는 것인데, 상대가 굳이 지리산을 찾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상대가 굳이 지리산을 찾을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쁘고 늘 목적이 뚜렷한 사람이라면 지리산에 간다고 해도 이곳에서 별 감동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헛수고만 하고 투덜 거리게 될 것을 염두에 두고 미리 방어하듯이 말을 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을 경건하게 갖게 된다. 자본주의에 돈에 찌든 마음 자세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내가 지리산에 가려고 하는 마음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나'의 물질적이고 속물적 근성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고,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지리산에 가기 전에 이 시를 읽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맙고, 또한, 지리산에 갈 때 마음을 잘 먹는다면 어쩌면 내 인생이 죄 많은 속세의 삶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2.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을 본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럴 것이다. 천왕봉 일출은 보기가 매우 어렵다. 높은 곳에 있어서 오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올랐다고 해도 날이 맑아아 하고, 시간에 맞춰야 한다. 그 높은 천왕봉 꼭대기는 1915미터다. 아무리 짧은 등산 코스라 하더라도 12킬리미터가 넘는 거리라 최소 6시간 이상을 걸어야 오를 수 있다. 3월 기준으로 동 트는 시간은 아침 6시 40분 경이라는데, 아침 해를 보려면 전날 밤길을 올라야 할 것이다. 그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일출을 보려고 올랐다고 해도, 날씨가 흐리면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의 평생을 다한다 해도 보기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 아무나 경치 멋지다고 보려고 하지 말라는 얘기다. 그럴까? 그러니 정말 오지 말라고 한 것일까? 3대에 걸쳐 덕을 쌓듯이 평생을 두고 천천히 꾸준히 도전을 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만 못 보는 건 아니고 나만 제외된 것은 아니고, 누구나 똑같이 어려움에 처해 있으니 억울해 하거나 제외되었다는 소외감을 느끼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러나 내가 그 모든 조건을 이겨내려고 한다면, 꾸준히 노력을 한다면 천왕봉의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천왕봉의 일출을 본다는 건, 내 인생의 도전과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인데 그 목표가 물질적이고 속세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구원에 해당하는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속세적인 목표라 하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정성을 들인다면 못해낼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일 테니까.
3. 노고단 구름 바다에 빠지려거든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원추리꽃을 보고 탐심을 품지 말고, 아름다움을 그저 맑게 바라볼 수 있는 이슬같은 눈으로 오라고 한다. 마음에 욕심을 품고 욕망을 품고 있을 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맑음 상태로 와야 노고단의 운해에 빠져 들 수 있다고 말한다. 웅장하고 장엄하게 펼쳐진 구름바다를 굽어보며 한 인간 마음에 무엇이 깃들까 생각해 본다. 그 광활하고 장엄한 구름바다를 앞에 두고 마음도 바다처럼 넓어지고 구름처럼 가벼워질 것이며, 경이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향해 기쁨을 느낄 것이다. 무엇에도 욕심을 내거나 가지려고하는 마음만 아니라면, 그런 것을 덜어낸다면 이슬처럼 맑은 눈으로 경이롭고 아름다운 순간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지리산 10경 중 제 2경, 노고단 운해를 노래했다.
4. 행여 반야봉 저녁 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지리산 10경 중 제 3경 반야낙조를 노래했다. 천왕봉 마고 할미와 반야봉의 반야 도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반야 도사가 도 닦던 봉우리라고 하는데, 반야는 불교에서 외형과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 사물의 참된 진리를 꿰뚫는 지혜에 이른 단계를 뜻하고 반야를 통해 성불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 반야봉에서 낙조는 세상의 모든 진리를 통달하고 최선의 아름다움에 이른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반야낙조는 깨달음을 얻은 반야 도사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누구든 반야낙조를 보려면 여유와 편안함을 누릴 준비를 하고 오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5. 피아골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피아골의 단풍은 반야봉에서 연곡사로 이어지는 계곡이라고 한다. 이 계곡의 단풍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온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라고 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 주로 붉게 물드는 단풍이 많아서 달아오른 절정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자료를 찾아보니 피를 길렀던 것이라고 하여 피밭골이라고 불리다가 피아골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도올 김용옥선생은 피아골이 원래 피내골이었다고 하고, 피내골이라고 했던 이유는 피가 내를 이뤄 흘렀던 곳이라고 한다. 병자호란과 정유재란, 병자 호란 때 또는 일제를 막기 위해 구례의 의병들이 싸우다 죽어 흘린 피가 내를 이뤄 흘러내린 곳이라고 한다. 피아골의 단풍은 그저 붉은 것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곧 내 가족과 순수하게 살아가는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강한 사랑의 기운이 서린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곳의 단풍을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려 했던, 온 몸이 달아오르는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고 오라는 말일 것이다. 목숨을 걸고 지키기 위한 헌신적 사랑이 깃든 곳이라는 것을 알고 오라는 말일 것이다.
6.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불일폭포는 지리산 화개천 계곡 상류에 있는 폭포인데, 지리산 유일의 대형 폭포라고 한다. 높이가 60미터가 넘는 대형 폭포이다. 불일이라는 의미는 고려시대 국사였던 지눌이 지은 이름인데 불일은 부처님을 해에 비유한 표현이라고 한다. 거대한 폭포 앞에 서서 물방망이를 맞고 서 있으려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라고 한다. 벌 받는 존재가 아이라는 것에 주목해 본다. 내가 아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잘못 산 인생을 불일 폭포 아래에서 물방망이로 등짝이 시퍼렇게 될 때까지 벌을 받고 나서, 다시 깨끗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일폭포 아래에서 마음의 잘못을 내려 놓고, 깨끗하게 씻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7. 벽소령 눈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서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벽소령에서 뜨는 달이 희고 아름다워 지리산 10경 중 하나로 불린다. 벽소령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서 하동군 화개면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 빛으로 보이는데, 달빛이 해처럼 환하다고 해서 눈이 시릴 정도란다. 어두울 때 달빛이 비춰주는 것이므로 달빛은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빛이다. 회한으로 가득했다면 지리산으로 오시라고 한다. 지리산에는 행복하고 밝게 산 사람보다는 회한으로 억눌린 삶을 살았던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곳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8. 그래도 지리산으로 오시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 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세석평전은 지리산의 주능선인 촛대봉과 영신봉 사이에 있는 30만 평 규모의 넓고 광활한 평원지대라고 한다. 이 넓은 곳에 5월이면 아름다운 철쭉꽃이 피어나서 천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인데, 이 아름다운 곳에 도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고 한다. 정치와 이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내 가족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무명으로 저항하고 싸우던 민중들의 피맺힌 한이 서린 곳이라고 한다.
세석평전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고 이해하려면 온 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라고 한다. 혁명은 무서운 변화를 가져온다. 그만큼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새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미온적 자세로는 혁명을 이룰 수 없다. 세석평전에서 피 흘렸던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온 몸을 다 바치지 않고는 혁명을 이루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났고 수난의 역사가 끝났지만, 개인의 삶에서도 혁명은 필요하다. 한 개인이 툭하면 죽고 싶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디려 하지 않고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혁명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은 공평하게 목숨이 하나다. 한번뿐인 인생을 산다. 대충 살아도 되는 인생은 없다. 그렇다면 한번쯤은 혁명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온몸을 바쳐서 자신을 구원해 주어야 할 것이다.
9.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일곱 선녀들이 목욕을 했다던 계곡이라고 한다. 선녀들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목욕을 했다는 건, 숨겨진 비경이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디지털함양문화대전의 기록에도 나와 있는데 이곳은 지금도 산세가 매우 험난해서 사람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전한다. 출입을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으로 제한적으로 출입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칠선계곡 이름의 유래담에도 곰이 나오는데 지금도 이곳은 지리산 반달곰의 서식처라고 한다. 멸종 위기종인 곰이 서식하는 곳이란, 이 글 처음에 운을 뗐던 "마지막 거인"이 다시 생각나는 대목이다. 마지막 거인이나 선녀나 곰이나 모두 인간이 닿지 못하는 곳에 존재하는 신령스럽고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보존된 곳이 칠선계곡이다.
그런 지리산의 숨겨진 비경을 보려거든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라는 것이다. 나무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생각해봐야 할 일이지만, 선녀의 아름다움에 탄복하는, 그래서 사랑을 느끼는 그런 존재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대목에서는 화자는 지리산의 빼어난 비경과 그것을 대하는 마음이 선량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10.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11.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12.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러나 실은 지리산에는 언제든 오라고 한다. 아무렇게나 오라고 한다. 지리산에 대해 알아도 좋고 모르고 그냥 가도 좋다는 의미이다. 지리산에 대해 알고 겸허한 마음을 준비하고 가도 좋지만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꼭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다른 일을 다 포기하고라도 꼭 가야겠다는 마음이 굳이 든다면, 아무렇게나 오라고 한다. 지리산에는 아무렇게나 가도 마음의 준비 없이 가더라도, 사연이 없이 가더라도 지리산에 꼭 오고 싶다면 오라고 한다.
13.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그러나 지리산에 굳이 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대 자신의 생각이 변할 수도 있는 일이고, 굳이 와야한다는 생각이 또 변해서 굳이 안 가도 된다는 마음이 든다면, 제발 지리산에 오지 말라고 한다. 부탁한다. 제발 오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화자는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일까?
화자는 그대에게 말하고 있다. 견딜만하다면 오지 말라고 한다.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은 화자가 지리산에 있다는 의미이다. 화자는 왜 지리산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대에게 굳이 오지 말라고 한 이유도 화자 자신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화자는 지리산의 10경을 포함하여 지리산을 통해서 생명을 다시 얻었을 것이다. 자신이 지리산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처럼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누군가도 지리산을 통해서 새 삶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렇게 자신을 구원해 준 곳이 지리산이고 그렇게 좋은 곳인데 화자는 왜 상대에게 오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자신만 있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건 아니다. 오지 말라고 하는 이유를 몇 가지 정도의 이유를 추측해 본다.
첫째는 상대를 진짜 사랑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병원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화자도 사람들이 건강한 상태이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아프거나 힘들지 않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갈 일이 없는 것처럼 지리산까지 찾아와서 위로를 받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둘째, 지리산의 영험성을 지키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지리산을 유명 관광지로, 경치가 아름다운 놀기 좋은 유흥지로 생각하고 아무나 와서 흥청대고 노는 공간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이들의 빼어난 자연 경치를 대상으로 유흥과 관광을 즐기기 위해서 지리산을 찾고 있다. 병든 마음을 치유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힘을 주는 영험한 곳까지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오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셋째, 반어적 의미일 것이다. 실은 많이 와서 지리산의 경치도 즐기고 지리산의 역사를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많이 오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일부러 반대로 말을 해서, 상대가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오라고 해서 오고 오지 말라고 해서 오지 말고 할 것이 아니라 청자가 왜 오지 말라고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가야한다면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스스로 깨닫고 나서 오라는 의미일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을 다시 정리해 본다.
행여 오시려거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 올 곳도 아니고 올 생각도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런 와중에 혹시나 어쩌다 지리산에 오려는 마음이 생겼다면, 지리산의 경치에 얽힌 사연과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오라는 의미로 이해가 된다.
주제 - 지리산을 관광이나 유흥의 목적으로 오지 말고 지리산의 역사와 의미를 알고 오라. 그러면 병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영험한 공간이 될 것이다.
글을 마치며
이글을 쓰게 된 이유는 필자가 이원규 시인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몇 해 전에도 이원규 시인을 몇 번 만난 적은 있었으나, 나는 그런 귀한 분을 보고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는 것이 없으니 질문이 생기지 않았고, 질문이 생기지 않으니 배운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분의 대표작 한 편만이라도 좀 들여다 보고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시 한 편을 읽게 되었다. 역시 매번 많이 듣고 알고 있었던 시였다고 생각하고 쉽게 시작을 했다. 그러나 정작 글로 정리해 보려고 하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이 귀한 시를 마치 새 소리나 아름다운 시냇물 소리 정도로 들었던 것이지 인지적으로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시가 화려하고 장중하고 아름답고 멋있고 꽤 길다고 생각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거대한 역사를 담아내기에는 매우 짧은 시였고, 꾸미거나 화려하게 치장한 시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를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시인의 성품과 시를 연결해서 생각하게 되는데 필자는 이 시에서시인 특유의 알맹이 중심인 것과 말 없음과, 말 한 마디에 무게를 실은 것과,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을 계기로 필자는 이번에 시인을 만나고 다만 얼마만한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영상 설명 : 2019년 10월 영동에서 개최한 천태산 문학제 중 이원규 시인의 대담 모습이다. 대담을 하기 전에 "달빛을 깨물다", 이원규 시를 시샘 김양경이 낭송하는 모습이다. 시샘이 미리 암송해해 간 시는 다른 시였으나, 현장에서 시를 바꿔 달라는 요구로 인해 이 시를 낭송하게 되었는데, 미처 암송하지 못하고 보고 읽게 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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