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심사하다
전국 장애인시낭송 대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심사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연락이 온 것은 지난 달 시샘에서 개최한 백석시낭송대회가 끝나고 나서였다. 백석시낭송대회에 관한 소식을 접한 0000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시샘은 이번 백석 시낭송대회에서 심사에 매우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현장에서 바로 채점을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 대해서. 현장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휙 지나가고 마는 순간을 놓치고 마는 것에 대해. 1번 참가자와 마지막 참가자를 대상으로 심사를 할 때, 심사위원이 일정한 기준으로 심사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등에 대해 오랜 고민을 해 왔던 터였다.
0000 대표가 시샘을 심사위원장으로 모시겠다는 조건에는, 심사 평을 직접 해 달라는 조건이 있었다. 특히 대표는 이번 대회는 장애인들이 출전하는 대회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사에 대해 매우 고심을 하고 있었다.
시샘 또한 고민이 되었으나, 때 마침 백석시낭송대회 이후에 올바른 심사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각종 논문이며 서적을 뒤적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심사평가를 직접 써 보면서 심사 평가의 샘플을 제작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우선, 수락을 했다.
심사평을 쓰는 연습을 하고 공부를 했다. 그러나 아무리 공부를 했더라도 내가 모르는 시를 낭송하거나 시샘이 낭송자의 시를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심사평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시샘은 대표에게 참가자들의 시 원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사무국에서 일처리가 늦어진다며 최대한 빨리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시 원문을 받아든 건 고작 낭송대회 이틀 전이었다. 나는 최대한 빨리 시를 분석해 두었다.
참가자는 무려 25명이나 되었다.
뇌병변 장애, 발달 장애, 시각 장애인들이었다.
역시 예상보다 이 분들의 시낭송은 너무나 엉망진창이었다. 시를 보고 읽기도 했고, 간단한 무대 예절도 몰랐다. 목소리는 개미 목소리였고, 발음도 엉망이고, 어떤 이는 보고 읽는 것도 틀리게 읽었다.
2회차로 등장한 이들은 다소 나았다. 시각 장애인들이었는데, 시를 암송했다. 그게 다였다. 시를 암송했다는 것 이외에 시낭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암송대회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샘의 심사 기준에 맞는 심사를 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다.
그랬다. 시샘이 미리 준비해 갔던 심사기준으로는 절대 심사할 수 없었다. 시샘은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깨달았고,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심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을 했다.
나는 참가자들의 시낭송에 집중을 했고, 참가자의 인상적인 특징이나 몸짓 등 보이는 것을 우선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내 채점 대상을 바꿨다. 심사 대상을 참가자가 아닌 나로 정했다. 나는 내가 참가자들이 담아내고자 하는 진심을 얼마나 제대로 알아챌 수 있을지를 심사하기로 했다.
내가 심사를 하기 위해서 참가자의 정면에 앉아서 참가자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살펴보니 내 앞에 서 있는 참가자는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로 인해 더욱 긴장해 있었다. 그래도 꾹 참고 끝까지 낭송을 완성해 내고 있었다. 그거였다. 드디어 나는 심사 기준을 찾을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남들보다 더 오래 연습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무대에 서기 전까지도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워 포기하려는 참가자도 많았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심사의 기준을 첫째, 참가했다는 것에 두었다. 참가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엄청난 노력이라는 것에 두었다. 둘째, 무대 위에 서서 시를 한 편 외우기 위해서 시 한 편을 아주 많이 읽고 또 읽었을 것이라는 점 등에 기준을 두었다. 그리고 다시 집중해서 들었고, 심사평을 쓰기 시작했다.
기존의 심사 기준대로 평가를 했지만, 크게 오류가 있지 않다면, 점수 차를 15점 이내에서 결정해서 점수를 주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서 심사평을 작성해 나갔다.
참가자들의 시낭송이 끝났다. 네 명의 심사위원들의 심사결과를 합산하기 시작했고, 나는 심사평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25명의 심사평을 작성하는 일은 매우 다급한 일이었다.
그중 대상을 수상한 이분진 낭송가의 시낭송에 대한 나의 심사평은 이랬다.
"000 참가자는 문병란 시인의 '인연서설'을 낭송하였는데, 차분하게 낭송하였다. 이 시는 죽음을 초월한 인연과 그를 지키는 사랑에 대한 서정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시인데, 이런 서정적인 사랑 시를 젊고 아름다운 시낭송가의 목소리로 들으니 마치 지금 현재에서 이러한 사랑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며, 그러한 사랑의 주체자가 이 시를 낭송하고 있는 것 같은 현실감이 들었던 시낭송이었다."
000 시낭송가는 대상을 수상했고, 남편도 시각 장애인이었는데 두 사람은 매우 기뻐했다. 남편은 기차놀이를 하는 것처럼 부인을 앞에 세우고 자신은 그 부인의 양 손을 뒤에서 잡아주면서 무대로 나갔다. 이들은 매우 행복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