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용운 작품 세계
만해 한용운은 한국을 대표하는 매우 위대한 시인이다. 이번 시간에는 한용운의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문답 형식으로 짧고 간결하게 내용을 요약해 보았다. 자료의 출처는 아래에 밝혀 두었다.
1. 한용운의 시어들은 결코 생경하지도 관념적이지도 않다.
푸른 산빛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한용운 '님의 침묵' 중
단순 명료한 어휘들, 낯설지 않은 친밀한 일상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에도 시어들이 이루어내는 경이로움의 세계. 시의 의미에 다가서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은 미로에 빠져들게 된다. 님의 침묵에 나오는 작품 모두가 하나같이 감동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난해하다.
2. 그런데 해석을 하려고 할수록 난해하다. 왜 난해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일상 세계와 경험과 논리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님의 침묵>의 어휘들은 창조적인 시어이자 깨달음의 언어이다. 시인 만해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언어이자, 만해의 깨달음의 세계의 논리가 반영된 언어이다.
사실은 시인의 의미 부여에 의해 굴절된 언어, 깨달음의 논리에 의해 재구성된 언어, 우리들의 일상의 경험과 상식의 논리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함축적 언어이다.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논리 너머의 깨달음의 세계에 가 닿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언어이다.
3.<님의 침묵>에 담긴 시의 주제는 다 똑같다?
<님의 침묵>의 모든 시들은 통일된 주제, 동일한 시적 논리의 전개 방식, 유사한 리듬과 수사법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일관된 철학적 사유에 바탕을 하고 있다.바로 이러한 사실이 기존 해석자들이 도식적 틀을 무리하게 적용하게 된 계기가 된 요인이 되었다.
그 결과 해석자들은 <님의 침묵>의 토대를 이루는 다양한 철학적 갈래를 한 줄기 흐름 속에 두루 담아내지 못하고, 그 가운데 하나의 갈래만을 드러내는 데 그치고 말아 시어 속에 녹아 있는 중의적인 의미를 사상(捨象)한 채 하나의 반복적인 주제만 드러내고 있다.
4. <님의 침묵>은 불교적 사상을 담고 있다?
<님의 침묵>은 만해의 ‘선(禪)적인 깨달음’의 노래라고 한다. 철학적 토대는 분명 불교적 사유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5. 그렇다면 <님의 침묵>은 선승들의 선시와 무엇이 다른가?
만해의 시에는 자신의 참 나와 세계에 대한 깨달음을 반영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선승들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다. 전통적인 선시들은 초탈의 관점에서의 인생을 관조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일례로 이백, 두보, 왕유의 작품에서의 선시의 특징은 이러하다. 왕유의 작품을 살펴보자.
왕유(王維, 699~761. 당나라 시인)
鳥鳴澗(조명간)
人閒桂花落(인한계화락하고)
夜靜春山空(야정춘산공이라)
月出驚山鳥(월출경산조하야)
時鳴春間中(시명춘간중이라)
새 소리 들리는 산속의 시냇물
사람이 한가롭게 있는 곳에 계수나무 꽃이 떨어지고
밤은 고요하고 봄 산은 비어있고
달이 떠오르니 산새들이 놀라서
봄 시내에 간간이 울음 소리 나네.
- 왕유의 선시 "조명간"
왕유의 시는 초탈을 지향하고 있다.
6. 선시와 다른 점을 다시 한번 정리한다면,
반면에 한용운의 시는 관조적이지 않고,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세상의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다. 직설적인 어투를 사용하여 가슴속 열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7. 그렇다면 한용운 시의 특징은?
불교적이기는 하나, 사회와 역사, 에로티시즘, 현대성 이런 부분이 만해만의 특성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중의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통적인 선시들과 달리 현대인들의 감성에 직접 와 닿는 감동을 준다.
8. 불교에서 경계하는 에로티시즘적인 시가 많다. 어떻게 이해하면 되는가?
에로티시즘은 불교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은 욕망을 통제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성적인 욕망을 경계하는 것이 불교 계율의 핵심적 항목들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님의 침묵은 다름 아닌 사랑 노래다. 그 사랑은 진리에 대한 종교적 사랑이기도 하고, 민족과 역사에 대한 영웅적 사랑이기도 하지만, 원천적으로는 불교에서는 금기시하는 이성에 대한 사랑, 즉 에로티시즘이다.
9. 뭐라고요? 에로티시즘을 담고 있다고요?
많은 사람들이 <님의 침묵>을 만해의 민족애의 표현과 불교적 진리 구도로 해석하고 있는데, 이는 말하자면 종교적 사랑과 영웅적 사랑이 에로티시즘의 언어로 표현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을 한다면, <님의 침묵>은 교훈시집이 되어 버린다.
그와 반대다. 즉, 에로티시즘이 영웅적 사랑과 종교적 사랑으로 승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0.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만해에 대한 의식이 고정 관념이었다고요?
이런 식의 고정 관념에 따르면 만해는 민족의 지도자요, 선승이며 따라서 사랑타령을 하기 위해 <님의 침묵>을 지었다고 해석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만해에 대한 모독이다.
11. 그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시 자체로 접근해야 한다. 불교 어휘를 사용하지도 않았고, 선시들과도 분위기가 다른데도 불교적인 의미의 ‘선적 깨달음’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다. 분명히 깔려 있는 에로티시즘이 명백한데도 이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12. 현대인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만해를 민족의 지도자나 선승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현대인으로 봐야 한다. 그를 이념적 틀에 맞는 이상적 인간으로 보지 말고, 우리와 같은 시대의 인간으로 봐야 한다.
식민지 애국지사의 이념의 표현이나 종교적 계에 가두지 않고 본질적인 인간적 감수성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
13. 그렇게 해석하게 된 근거는 무엇인가요?
그의 의식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는 선승이었지만 급진적인 불교 개혁론자였다. 그가 실천하려고 했던 불교는 전통사회로부터 전해 온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었다. 철학적 불교였다. 서구 계몽주의와 과학적 발견들을 통해 발전한 현대인들의 사유 방식과 융합한 철학적 불교였다. 그래서 그에게 불교는 완성된 절대적 가르침이 아니라, 인류의 여러 탁월한 정신적 발견 가운데 하나이다.
14. 만해가 그런 말을 했나요?
만해의 말이다.
다만 문명의 강도가 날로 향상되면 종교와 철학이 점차 높은 차원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며, 그때에야 그릇된 철학적 견해나 그릇된 신앙 같은 것이야 어찌 다시 눈에 뜰 줄이 있겠는가? 종교요 철학인 불교는 미래의 도덕. 문명의 원료품 구실을 착실하게 할 것이다.
- 만해 한용운'조선불교유신론' 중
15. 무슨 말인가요?
불교의 종교적 진리로서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16. 그렇다면 만해는 성적인 것을 어떻게 여겼나요?
그는 승려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성적 욕망을 금하는 것을 부정한다. 그는 성적인 문제는 철칙으로써의 계율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자유의 문제라고 여긴다.
17. 이제 만해의 시를 정리한다면,
만해의 시는 현대적 기법으로 쓴 현대시이다. 만해는 선승이며 민족의 지도자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현대인이었다. 만해의 시에는 현대인으로서의 만해의 깨달음이 담겨 있다.
자료 인용과 출처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김종인, 나남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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