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시'는 낭송을 위해 태어난다.

- 시는 뱃속의 태아였다가, 그것을 목소리에 담아낼 때 생명으로 태어난다

by 시샘 김양경

시샘은 시를 눈으로 읽는 것에 익숙했다. 문자가 없던 시대 기억에 의존해야 했던 시대에 시는 운율과 리듬에 의존을 기억력을 높였다지만, 이제 문자가 있으니, 굳이 리듬에 얽매일 일이 없다고 배웠다.


1. 문자의 시대, 잊혀졌던 시의 리듬

문자가 있고 기록을 보존할 종이가 있으니 짧게 쓸 일도 없고,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리듬에 얽매일 일도 없어졌다고. 그래서 시가 산문처럼 풀어지는 것이며 운율이 일정할 이유도 없다고. 눈으로 그냥 읽으면 되니까.

시샘은 시낭송을 하기 전까지 리듬이라는 것에 대해서 운율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지 않았다. 그저 민요조 가락이라든가 시조의 4음보 가락이 너무 단조롭고 촌스럽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자유시라고, 그야말로 자유로운 운율이 있으면 된다고 여기고, 시에서 어떤 운율이 있든지 별로 신경 쓸 일 없이 시가 전하는 이미지와 내용에 집중했다. 그러나 시낭송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이후로, 항상 이 시의 리듬 때문에 벽에 부딪치게 되었다.


시에는 아나운서 스피치와는 차원이 다른 예술적 장치가 있다. 시샘

2. 아나운서의 스피치를 넘어선 '예술적 장치'

자유시라고 하는데, 산문시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왜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어디에서 연결을 해야 하는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시낭송을 위한 리듬을 따로 연구한 자료가 많지 않았고, 대체로 아나운서들을 위한 자료들이 많았는데, 그 자료에는 시가 아니라 일반적인 스피치에 관한 끊어 읽기 자료가 대부분이었다. 이 자료도 꽤 쓸모가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아나운서들의 스피치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들처럼 또박또박 정확히 내용을 전달하되, 감정의 과잉 없이 읽어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낭송 공부를 계속하다보니, 시낭송은 아나운서의 스피치로는 담아 낼 수 없는 예술적 장치가 많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3. 뱃속의 태아와 같은 '활자의 시'

세상의 모든 글을 나눌 때 우리는 두 가지로 나눈다. 문학이냐? 아니냐?로.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눈다. 세상의 그 어떤 글보다 문학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또 다시 문학을 다시 둘로 나눌 때, 운문이냐 아니냐로 나눈다. 그만큼 문학 안에서도 운문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 시라는 장르는 세상의 모든 글들 중에서 으뜸이다. 시는 인간의 본능을 담아내는 근원적인 것이면서, 인간의 숨결을 담아내는, 심장의 박동을 담아내는, 혼자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을 담아내는 원초적이고도 성스러운 예술이다. 이 시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숨결을 담고 태어난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매체가 발달해서 기억할 일이 없어서 자유롭게 산문형으로 펼쳐졌다 하더라도 시로 태어난 모든 시에는 인간의 숨결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를 낭송하는 낭송가는 시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와 같다. 시샘

4. 낭송가는 시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

그러니 시는 읽기 위한 문학이 아니라, 낭송을 위한 문학인 것이다. 시는 그것을 눈으로 읽을 때에는 그저 숨을 죽이고 멈춰 있는 뱃속의 태아와 같은 상태인 것이다. 누군가가 그것을 입술에 올려서 자음을 발음하는 혀와 모음을 열어주는 목구멍이 합일하여 허파 안에 갖혀 있던 숨을 뽑아 올릴 때, 시는 펄떡이는 생명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시를 낭송하는 이가, 시를 낭송할 때, 호흡을 어떻게 주느냐, 어디에서 휴지를 주고, 어디에서 강세를 넣고 어디에서 높이고 어떤 부분을 약하게 하느냐에 따라 시의 생김새가 달라지고, 의미가 달라지고 시의 질감이 달라진다. 시낭송을 하는 이가 누구에게 들려주느냐에 따라서 시의 의미가 달라지고 색채가 달라지고, 시를 어떤 공간에서 낭송하느냐에 따라 시의 형식이 달라지고, 또 의미의 깊이와 모양이 달라진다.

활자에 불과했던 뱃속의 태아였던 시는 이렇게 낭송하는 이의 몸을 통과한 호흡으로 비로소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낭송하는 이는 시를 낳는 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어머니의 생김새와 어머니의 처지에 따라 아기가 다르게 자라나듯이, 어머니의 영향을 받고 시도 다르게 성장하고 발달하고 생육되는 것이다.

시낭송을 통해 우리는 소통하고 연대한다. 시샘

5. 목소리로 완성되는 연대와 소통

이 시라는 아기는 낭송가라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나고 자라서 듣는 이를 향해 달려간다. 시라는 아기는 수 많은 사람들을 향해 달려간다. 혼자 아기를 낳았던 어머니는 수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고 연대한다. 시라는 아기가 낭송자라는 어머니를 통해 태어나서 세상의 많은 이들과 만나고 소통하게 하는 것이다.


듣는 이들은 낭송가의 몸을 통과한 호흡과 음성을 통해, 낭송가가 담아낸 감정과 이미지를 전달 받고, 다시 마음 속에 자기만의 경험을 떠올리고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낸다. 이렇게 낭송은 살아 있는 음성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면서 이들을 같이 묶어주기도 하고 자기만의 독특성으로 살려내기도 하면서 같음 속의 다름과 다름 속의 같음의 상태를 조화롭게 완성해 낸다.


시는 뱃속의 태아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을 목소리에 담아낼 때
시는 태어나서 성장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다.
- by 시샘 김양경
시낭송 시샘-전체 사진-75816009745.jpg 시는 시낭송을 통해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다. by 시샘 김양경


작가의 이전글시낭송을 위한 좋은 목소리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