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어 ‘드야나(dhyāna)'는 ‘자신이 선택한 하나에 온 마음을 집중하는 마음챙김’이다.
요가수련자는 육체의 운동처럼 마음의 운동을 통해, 군더더기 없는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마음을 한데로 모으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 훈련이 바로 ‘드야나’다.
만일 내가 한 물건, 한 사람, 한 개념에 정성을 모으면, 나는 그 대상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불경이 기록된 팔리어에서 드야나는 ‘자나(jhana)'가 돼 ‘생각하다, 명상하다’라는 뜻이 됐다.
중국으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드야나’는 ‘선(禪)'으로도 번역됐다.
드야나는 ‘우주의 질서에 맞게 정렬하다’란 의미의 인도-유럽어 'dheh-'에서 유래했다.
‘명상’이란 자신을 무한한 우주 안에서 유한한 한 점으로, 무한한 우주를 머금은 거대하면서도 지극히 작은 한 점으로 보는 수련이다.
- 배철현 <요가수트라>
요가수트라에서 말하는 요가 수련자는 아쉬탕가, 빈야사, 하타요가를 배우는 현재 우리가 아닙니다.
또, 명상(눈을 감고 생각함)이란 단어의 유래가 영어인 Meditation을 일본이 번역한 것으로 명상으로 대표되는 위빠사나를 설명하기엔 부적절 합니다.
위빠사나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일반인들은 혼란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1. 현대요가는 마음의 단련보다 아사나(동작) 중심의 신체 단련입니다
2.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는 종교색을 배제한 위빠사나 수련법에 가깝습니다.
3. 위빠사나는 인더스 문명과 함께 시작된 고대 인도의 수련법으로 2,500년전 싯다르타가 재정립한 해탈에 이르는 실행법입니다.
4. 요가수트라는 싯다르타 이후 400~450년 힌두교 사상가인 파탄잘리가 고대 요가 사상을 재정립한 것입니다.
아쉬탕가, 위빠사나, 마인드풀니스, 요가수트라 이 모든건 '현대 명상'이다라고 얘기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뿌리는 문명이 추구한 궁극적 목적 '영원한 행복'이지만 각각 다른 수련법으로 이해하시는 것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