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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Oct 22. 2023

나는 호구다


“미국은 유럽하고 달리 아프리카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원조를 하고 있습니다. 성과도 좋고요. 아프리카에서 유럽을 앞지를 날이 올 겁니다.”  

   

‘그렇구나, 아프리카에서 유럽하고 미국 하고 서로 땅따먹기를 하고 있구나.’ 2009년 미국 모 대학교에서 수업 중에 느꼈던 감상입니다.

     

아프리카에 발을 내딛고 6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이 되자, 당시 교수님의 예측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모양새지만, 그 자리에는 중국이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일본도 뭐라도 챙기고자 노력 중이었습니다. 반면에 미국은 기대한 것만큼 뚜렷하게 보이는 게 없었습니다.        


이런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나라가 가장 순수한 듯 보였습니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현지 전문가와 자리를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하였고, 식탁에는 맥주병들도 늘어서기 시작했지요.      


술이 몇 순배 돌아간지라 맞은 편 않은 현지 안내인의 눈은 벌게져 있었고, 귀에는 묘한 웃음이 걸렸습니다.     

“한국은 진정으로 아프리카가 발전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한국도 시장을 넓히려고 온 거잖아요. 스마트폰에 에어컨에, 자동차도 진출하고. 또 뭐를 더 진출하려는지. 이런 상황에서 아프리카에 산업이 발전할 수나 있겠어요.”      


한국도 속셈이 있어 도움을 주는 것이겠지만 우리한테 필요한 것이니 잘 받겠다는 어조가 이어졌습니다. 고마움은 없어보였습니다. 투수가 던진 빈볼에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당시 나는 종종 곤혹스럽고 황당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감정과 가장 어울릴만한 단어는 ‘호구’였죠. 범의 아가리라는 뜻이 아닌, 어수룩하여 이용해 먹기 좋은 놈이란 뜻의 바로 그 호구입니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요. 한참을 고민한 끝에 아마추어와 프로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는 완전 초짜였습니다. 해외원조라는 건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고. 아프리카 땅도 생전 처음 밟아 봤습니다. 상대편은 어떨까요. 아프리카는 유럽에서 공무원 시스템을 들여온지라, 전문가 시스템 그러니까 한자리에서 오래오래 일을 하는 체계입니다. 적어도 10년은 넘게 이일을 했을, 원조에 관해서는 해박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인 셈이죠.

       

그러니,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 그들 말에 홀렸습니다. 정말 홀라당 넘어간적도 있습니다. 


빠르면 1년, 통상 2년이면 자리를 휙휙 바꾸는 우리나라 공무원 시스템에서, 깊은 지식과 경험을 쌓을 여력은 부족했습니다. 덕분에 초반에는 진정 왕초보로 일을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일을 몇 년간 반복하다 보면 빠른 시간 내, 지식을 쑥 끌어올리는 노하우가 생기긴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아프리카 원조에 얽힌 속내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보는 시각이 무엇인지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날 호구처럼 보는 거야? 이게 현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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