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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Feb 18. 2021

난 암에 걸리게 수순이었을지도..

내가 암에 대해 접근하는 기준점은 돌연변이다. 암에 대해 공부한 게 돌연변이와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배웠던 바로는 DNA는 단단하고 안정적인 것 같지만, 물리적·화학적으로 충격과 공격을 받게 되면 곧잘 변이를 일으키게 되는 생각보단 허약한 구조다. 그런데 생명체는 오묘한 것이라, 이런 변이를 바로 잡아주는 기작이 있다. 이를 테면, 아주 작고 미세한 DNA 치료사가 지속적으로 DNA를 관리해 주는 것이다. 이 치료사는 세포내의 독성물질을 배출하거나, 변이된 DNA를 치료하거나, 변이된 부분을 없애는 일을 한다. 


돌연변이는 이 DNA 치료사가 제 역할을 못할 때 발생한다. DNA 치료사가 원래부터 허약하거나 파업이나 태업하기 쉬운 상태라면 유전적 원인에 의한 암이 생길 가능성이 높을 터이고, DNA 치료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외부의 충격이 계속 중첩되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비유전적 원인의 암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글에서 유전적 원인에 의한 암은 논외다. 그건 내가 고민할 수 있는 범위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DNA를 더욱 굳건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돌연변이를 없게 만드는 특수한 치료법이 개발되기를 바랄 뿐.


나는 대학원 시절 EMS(Ethyl methanesulfonate : 무작위 돌연변이를 생성하는 발암성 유기화합물) 라는 물질을 사용해서, 콩을 돌연변이시켰다. EMS는 햇볕에 약한 화학제라서 껌껌한 밤에 돌연변이체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했다. 나는 선배와 같이 완전 무장한 채로 실험실 불을 모두 끄고 희끄무레한 달빛에 의지하여 EMS 약제가 들어 있는 병뚜껑을 열었다. 잔뜩 긴장한 나를 훅 치고 들어오는 향기가 있었다. 감미로운 향이였다. 사과향기와도 비슷한. DNA를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독극성 물질에서 이런 향이 나다니. 친근했고 어찌 보면 친환경적이라 할 만한 향기였다. 몰랐다면 음료수인 줄 알고 마실 만큼.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물질이 몸에 좋게도 느껴질 수 있겠구나' 란 사실을 깨달게 된 계기였다. 


돌연변이 약제는 햇볕뿐 아니라 온도, 수분, 그리고 처리 시간에 민감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조절하여 실험에 임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어서, 세계에서 4번째로 초다근류생성 돌연변이 콩을 만들었다.


암 환자 중 EMS와 같인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독성물질을 부러 들이킨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몸속에서 작용하여 DNA를 때리고 건드리고 못살게 굴고 해서 변이 시켰다. 그 무엇인가가 바로 암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물질들, 음식들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흡입하는. 그런 것들이 독한 화학물질처럼 되어 DNA를 변화시킬 만큼 중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이다. 


도대체 나에게 암을 일으키게 한 건 무엇일까? 나와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 암에 걸린 사람은 외삼촌이었다. 둘 다 비만이고,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육고기와 가공식품을 즐기고, 외식도 즐겼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DNA가 못 참을 정도로 때리고 밟아 결국 반란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담배는 워낙 유명하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나머지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이런저런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먹거리 등과 관련하여 암 정보를 알기 쉽게 제공하는 국제기구를 찾았다.  World Cancer Research Fund.(WCRF : wcrf.org)다. 미국 암 연구협회(American Institute for Cancer Research)와 연계된 기관으로 암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해 놨다. WHO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깊이가 있으나, 어느 정도 기반 지식이 필요한, 그러니까 복잡한 자료인데, 이 사이트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했다. 유전학 지식이 충만했던 대학원 시절은 추억속에 담겨있는 지라, 이 사이트는 암과 관련된 여러 정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WCRF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멈췄다. 잠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암에 걸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구나.”


비만하고 + 술을 즐기고 + 담배와 친하고 + 달달한 음료를 좋아하고 + 육고기는 없어 못 먹고+ 술안주로 소시지 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화가 났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알코올에 쩔기 전, 니코틴을 사랑하기 전, 정상체중이었던 시절. 어차피 돈이 없어 육고기와 소시지는 잘 못 먹던 시절 이 자료를 보았다면 달라졌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자료가 없었을 터. 이와 같은 식품이나 기호품들은 EMS와 같은 독성물질은 아니나, 계속해서 많은 양을 먹다 보면 DNA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다.


나를 잠시 충격 속에 빠뜨린 WCRF의 내용을 캡처 하여 소개한다. 아래 붉은 동그라미는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쪽, 위 초록 동그라미는 암 발생을 예방할 가능성이 높은 쪽이다. 그러니까 붉은 동그라미에 들어있는 것이 내 생활 속에 많이 들어 있다면 암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초록 동그라미 쪽은 그 반대이고.


출처 : Interactive Cancer Risk Matrix | World Cancer Research Fund (wcrf.org)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하나의 동그라미에는 큰 글씨와 작은 글씨가 있는데, 큰 글씨는 암에 관련된 내용, 작은 글씨는 이와 관련된 암이다. 예를 들어, 큰 글씨 Adult body fatness(성인 체지방)은 작은 글씨인  췌장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폐경 후), 자궁 내막암, 신장암 등의 가능성을 높인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살찌면 작은 글씨로 열거된 다양한 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해석하면 된다.





사실, 이 내용도 충격이었다. 살찌면 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라니...


더하여 혼란에 빠트린 내용도 있었다. 나는 탄 음식, 그러니까 그릴 또는 바베큐한 고기나 생선이 암을 유발하는 데 더 위험한 식품인 줄 알았다. 그런데. Processed meat(소시지 같은 가공육)이 더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암에 광범위하게 연관이 되어 있고. 여기에 더하여 빨간 고기, 그러니까 소고기, 돼지고기 같은 것도 위험하다고 했다. 전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안든 것은 알콜의 위험성이다. 설마, 술이 암과 관련될 줄이야. 그것도 새빨간색의 동그라미라니. 술병에도  '암을 유발할 수 있으니 작작드세요.'라고 표시를 해주던지. 그랬다면 소주 두병 마실 걸, 한병으로 줄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고 체내 혈당량도 암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은 거였다. 단음식도 좋아하는데.


WCRF에서 제시한 표는, 자신이 걸린 암과 관련된 암 유발요인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피하는 식단을 짜거나 운동 등으로 재발이나 전이를 예방하는 데 기준이 될 수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누가 이랬더니 좋더라.’가 아닌, 제대로 된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나는 이 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술을 살짝 마셔볼까 생각했었다. 항암제 부작용이 사라지면 먹고 싶은 것을 양껏 먹어볼까도 싶었고. 그러나 이 표를 보고 난 후 많은 것을 포기했다. 지금은 패스트푸드나 육고기조차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암을 유발하는 요인은 결국 암을 재발시키는 요인이고, 전이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이니.


이 참에 WHO의 국제 암 연구기관(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의 발암 유발 정도에 따른 분류법을 간단히 알아보겠다.


가장 위험한 그러니까 확실한 발암물질로 분류된 것들은 Group 1, 즉 1 군이다. 그다음 발암 가능성이 높은 것들은 Group 2A, 발암 가능성이 있는 것 같은 것들은 Group 2B,  발암 가능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은 Group 3이다.


프로토늄, 비소, 알코올음료, 포름알데히드, 석면류, 디젤엔진 연소물, 석탄 연소물과 분진, UV, 담배, 가공육 등이 1 군이다. DNA에 충격을 제대로 주어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물질이며 이의 결과는 암이다. 일명 발암물질.


석유정제업, 적색육(소고기, 돼지고기), 65도 이상의 뜨거운 음료, 야간근무, Acrylamide, DDT(농약의 일종) 같은 게 2A군이다. DNA에 충격을 주어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 또는 직업 등이다. 그런데 야간근무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니. 야근을 밥 먹듯 한 적이 있는데, 끝나면 술 마시고 고기 먹고.


알로에 베라, 역청(아스팔트에 쓰이는 원유를 정제한 검은색의 점성을 가진 물질), 세탁업, 가솔린 엔진 연소물 등이 2B군이다. 2A 보다는 덜하지만 DNA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으며, 암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물질 또는 직업군이다. 그런데 알로에 베라가 포함되어 있어?. 몸에 좋다고 해서 억지로 먹었는데...


마지막으로 세라믹 임플란트, 염소 소독 음용수, 커피, 염색약, 그스울, 녹차, 실리콘 가슴보형물 등이 3 군이다. 암을 일으키는지 알 수 없는 물질들이다. 현재의 기술로 증명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실제 암과 무관할 수도 있다.


좀 더 궁금한 분을 위해, 해당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링크를 제공한다.  

Agents Classified by the IARC Monographs, Volumes 1–128 – IARC Monographs on the Identification of Carcinogenic Hazards to Humans (who.int)

출처 : WHO, IARC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이렇게 한눈에 알 수 있는 자료를 한글로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랬다면, 암 예방에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암이 재발되거나 전이되는 환자를 줄이는 데에도 도움 될 것같은데.


암에 걸려서 1년 넘게 사업을 못한 가구점 사장님, 남편이 암에 걸리고 간병을 하던 자신도 암에 걸려 집이고 재산이고 다 공중분해시킨 아주머니. 매일 아침 빚쟁이들이 감시 차 병실을 들락거리게 했던 어느 사업가분이 떠오른다. 그분들이 그렇게 살아야 한 건, 오로지 암 때문이었다.


나는 이런 자료를 모아 아이들에게 보여줄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암에 걸려 내가 겪은 암울한 고통을 받지 않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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