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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May 22. 2021

농약에 관한 뻔한 답

어느새 3개월의 유예기간이 종료되었다. 오른팔에서부터 찌르르 올라오는 섬뜩한 열기가 입안에 도달해 옅은 구역질을 일으킬 때, 실감했다. 아직이구나. 조형제의 자취가 사라지니 검사 결과에 대한 긴장이 자리를 대신한다.


지난번에 깨달은 듯싶은데, 잊고 있었던 게 있었다. 암이 재발하고 안하고의 차이는 한 뼘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3개월 동안 그 한 뼘을 넘어가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 없는 가를 떠올려 보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었고, 사이다에 맥주를 약간 타서 마셨고, 구내식당에서 모른척하고는 돼지고기 몇 점을 집어 먹었고, 닭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노릇노릇 바싹 구워진 프라이드치킨 한 분대는 해치웠다. 은근히 불안했다. 췌장에 혹이 다시 나타는 건 아닐지. 죽은 줄 알았던 암이 기지개를 켜거나.


내 주치의 선생님 방 번호는 13번이다. 첫날이 떠오른다. 명의로 알려진 교수님의 방 번호가 13번이라니 불안하네, 하면서 들어가서 들은 말은 두 달 사이에 암덩어리가 3센티 정도 커졌다는 통보였다. 마음 한구석에 조심스레 쌓아 올렸던 희망이 단박에 무너졌다. 그렇게 시작한 항암. 항암제가 잘 들어 암덩어리가 거의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13번 방에서 들었고, 이번에 별 이상 없다는 말도 같은 방에서 들었다. 마음은 간사한 것이다. 13번이 친근해지고 있다.


3개월 있다가 피검사, 3개월 더 있다가 CT와 X 레이. 그동안 한 뼘이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먹는 것에 대한 조심은 필수다. 이것저것 가려 먹고, 골라먹고, 안 먹고. 그래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식품에 잔류된 농약이다. 암이 재발할 듯 말 듯한 시점에서 한 숟가락을 얹어 암이 튀어나오도록 만들 것만 같은 놈.


아는 게 병이란 말이 딱 맞다. 관련된 분야에서 일하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들리는 게 관련 소식이다. 대충 넘어가자 싶어도 어찌 그런 내용은 콕 집어 눈에 들어오고, 귀에다 스피커를 댄 것처럼 왕왕거리며 들리는 것인지. 그것도 부정적인 것이 특히나.


농약은 음식이나 음료에 들어 있을 수 있다. 전혀 없거나, 허용치 이내로 들어 있거나, 허용치를 훌쩍 넘어 있거나. 이 셋 중 하나가 과일이나 채소, 인스턴트식품, 주스, 와인, 고기에 잔류될 수 있다는 농약의 존재감이다.


내 밥상에 놓인 것들은 농약이 전혀 없는 순수한 식품일 것이다, 라는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지난번에 소개한 EU 식품안전청 자료에서 여실이 보여주듯, 유기농산물에도 농약성분이 검출되는 세상이다. EU로 말할 것 같으면 식품 안전성에 깐깐한 나라가 모인 집합체. 소개는 안 했지만 미국이라고 다를 바는 없다. FDA에서는 미국에서 생산된 농산물과 수입 농산물에 잔류된 농약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코로나 19에 대한 대처에서 보여줬듯 우리나라 식품 안전성은 EU나 미국보다 월등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게 속편 하다. 나는 그렇지 못하기에 불안하다. 깨끗하게 싣거나 껍질을 벗겨내서 먹으면 농약도 사라지는 게 아니냐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때가 좋았다. 껍질을 뚫고서 속 안까지 침투하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었다. 껍질을 두텁게 벗겨내면 상당 부분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생각을 조금 바꾸어 보았다. 그 후로 ‘사과 껍질을 왜 그렇게 두껍게 벗기냐.’는 집사람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살았다. 항암 이후로는 더 두텁게 벗겨낸다. 지금은 사과 씨앗을 먹냐,라고 비꼰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예전에는 별문제 없이 사용했던 농약이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로 밝혀지고 있다. 2010년 이후 대표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농약이 글리포세이트(Glyphosate) 성분의 농약이다. 몬산토라는 다국적 회사에서 생산한 라운드업이란 제초제의 주성분. 이 라운드업은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GMO 콩으로 인해 유명세를 떨쳤다. 이 GMO 콩의 능력은 라운드업이란 제초제를 이겨내는 거였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풀어보자면, GMO 콩을 심은 다음에 제초제인 라운드업(글리포세이트 성분)을 치면 콩 농사를 짓는 내내 잡초 걱정이 없어진다. 잡초만 죽고 GMO 콩은 살아남기 때문이다. 밭농사가 힘든 건 잡초 때문인데 얼마나 편리한 농사인가. 라운드업을 이겨내는 GMO 콩의 개발은 쎈세이션이었다.  


그런데 GMO 콩으로 유명세를 떨친 글리포세이트가 발암물질일 수 있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2018년 미국 법원은 다국적 농약 업체인 몬산토에게, 암에 걸린 소비자들에게 2억 8천9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학교 운동장 관리인 드웨인 존슨 씨는 자신이 글리포세이트 성분이 포함된 ‘라운드 업’, ‘레인저 프로’라는 농약을 사용해서 암에 걸렸다고 주장했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독일 정부도 이에 질세라 2024년부터는 글리포세이트 성분의 농약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오스트리아는 2019년 EU 국가 중 최초로 글리포세이트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제초제로 널리 사용되는 글리포세이트를 대체할 마땅한 농약이 없다는 것이다. 가격 면에서도 효과성 면에서도.


이런 농약이 비단 글리포세이트뿐일까. 설마... 하지만 이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산물을 생산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모든 농산물을 유기농산물로 바꾸지 않는 이상. 그러니 21세기 과학기술로 무엇인가 획기적인 것을 개발해야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농약 하나 개발하기 위해서 엄청난 돈과 시간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를 뛰어넘는 과학기술을 개발하려면 더한 돈과 시간이 들어갈 것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럴 땐 도깨비방망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하룻밤 새 뚝딱 만들어 내게.


현실로 돌아와서 실현 가능한 부분을 생각해 보면, 결국 국가에서 정한 ‘농약잔류허용기준’ 그러니까 농약을 안전하게 사용하라는 지침을 철저히 지키는 게 최선이다. 정부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시장에서 농약 잔류허용치가 넘는 농산물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근본적으로 시장에 그런 농산물의 진입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다.


식품의 표시를 속이거나, 안전하지 않은 식품을 팔거나 생산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자신을 신뢰하여 제품을 사는 고객을 속이는 짓을 한 셈이다. 자신을 먹고살게 해주는 사람을 속이다니. 그 속임의 결과는 고객의 건강을 해치는 것이고. 나 같은 암에 벌벌 떠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일인데.


새로운 3달이 시작되니 안도되면서도 싱숭생숭한가 보다. 한밤 중에 결론이 법을 지키며 살자로 끝나는 글을 쓰고야 말았다.


1) 2016. 7.18. Front Public Health, Polyxeni Nicolopoulou-Stamati 등, Chemical Pesticides and human health:the urgent need for a new concept in agriculture (nibi.nlm.nih.gov/pmc/articles/PMC4947579)


2) BBC 뉴스 코리아. 2018.8.11. 농약 기업 몬산토, 암 걸린 소비자에 2억 8천900만 달러 배상 판결 (bbc.com/korean/international-45127870)


3) 농민신문, 2021. 2. 24, 독일, 암 유발 논란 제초제‘글리포세이트’ 퇴출 속도(nongmin.com/news/NEWS/ECO/WLD/334054/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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