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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un 27. 2021

유기 농산물, One Health

아삭아삭한 식감에 옅은 초록 향이 감도는 케일을 좋아한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자마자 앞마당에 고추와 같이 심었다. 건강을 생각해, 농약을 주지 않고 길러보기로 했다. 잡초만 잘 뽑아주면 어느 정도 수확은 될 것이고, 벌레 하고는 좀 나누어 먹으면 되지, 하고 생각했다.

      

그해, 케일 갈비를 수확했다. 아삭아삭하고 즙이 많은 부분은 벌레가 모조리 갉아먹고 잎맥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그 모양이 사뭇 갈비와 똑 닮았다. 케일 갈비를 보며, 사람 입맛에 잘 맞는 농산물은 벌레도 좋아하는 법이라는 사실을 통감했다. 그래도 농약을 치지 않고 재배할 수 있는 게 무언지 계속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고집 때문이었다. 손바닥만 한 텃밭 농사를 어머니는 애지중지 하셨다. 그렇게 대략 20년 간 농약을 덜 치고 채소를 기르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환경친화적이고, 건강을 생각하는 농법. 두 평 남짓한, 손바닥만 한 땅에서 배운 교훈은 과학기술을 외면하면 생고생을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의 농사를 열 평 넘게 한다고 했다면 두 손을 번쩍 들었을 게다.

      

그런데, 농약을 전혀 하지 않고 하는 농사가 있다. 유기농업이다. 고집스러운 소신과 깊이 있는 기술적 노하우가 있어야 가능한 농업이다. 그 어려움과 대단함을 오래전에 학습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가 아닌 독일에서다.      


20년 전에 만난, 독일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농약을 하지 않는 유기농업을 하기 위해선 크게 두 가지가 전제가 있다고 한다. 첫째 잡초나 병해충이 적은 품목 선택하기, 둘째 병이나 해충의 해를 덜 받기 위한 땅 힘 기르기다. 땅 힘을 기르기 위해선 통상적으로 한 가지 작물을 한 곳에 계속 심으면 안 된다. 땅에 그 작물이 필요한 영양성분이 적어지고, 관련된 병해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자리에서 한 가지 작물을 계속 심게 되면, 유기농업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유기물 퇴비를 쓰기에, 부족해진 영양성분을 일시에 채워 놓기 어렵다. 영양이 적은 토양에서 농산물이 건강하길 바랄 순 없다. 게다가 특정 작물에 기생하는 병해충이 늘어남에 따라, 농약 없이 농사를 짓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리되면 유기농업은 포기하기 십상이다.     


독일 유기농장에서 놀란 점은, 깨끗함이었다. 잡초도 모조리 베어내고, 청소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 병해충이 꼬이지 않기 위한 조치다. 그리고 매사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었다. 유기농업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기록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농부를 빤히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농사를 짓지? 그냥 농약을 치면서 하는 게 더 낳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20년 전, 우리나라 어느 시골에 가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독일의 전문가는 한국은 유기농업이 어려운 나라라고 했었다. 산지가 많고 장마철에 일시에 비가 내리는 환경 때문이다. 땅이 좁으니 작물을 이곳저곳으로 돌려가며 심기가 어렵다. 비가 일시에 내리면 땅에 쌓아 놓을 유기물이 쓸려나가, 땅 힘을 기르기 불리하다.      


20년 전 우리나라에 국제 유기농 전문가가 한 명도 없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유기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나라 유기농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독일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독일 전문가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던 탓이기도 하다.



      

한 동안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면서, 유기농산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늘었다. 아직도 전 세계 인구의 9% 정도가 기아에 시달리고 있고 이상기후로 전 세계 식량 가격이 올라가고 있는데, 수확량이 적고 비싼 유기농산물은 잘 사는 나라가 누리는 사치였다 가난한 나라에선 한 줌의 식량도 아쉬운데.  


아프리카에서 귀국하자마자, 암 수술, 항암치료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농산물 안전성에 대해 관심을 더해 갈 무렵, One Health 를 알게 되었다. 사람의 건강, 동물의 건강, 자연의 건강은 서로 연계되어 있으니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동물도 자연도 건강해야 된다는 개념. 유기농업과는 다르게 식량 생산량도 늘리고, 지구환경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을 One Health가 제시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유기농업보다 더 과학적으로 건강을 챙길 수도 있을 듯하고.     


자료를 찾다 보니, 아이러니하게 One Health의 개념과 가장 가까운 농업이 유기농업이었다. 그러니 유기농업을 제대로 하는 나라에선 One Health 구현에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을 듯하다. 미국에서 One Health 인증을 시작한 건 크게 무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에선? 20년 전 생각에 가로 막힌 나로서는 우리나라에서 One Health 구현은 한동안 어려울 듯 보였다. 내 아이가 내 나이 때쯤 되면 가능하려나, 싶었다. 이런 참에 유기축산 농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방문. 그런데 농장은 나에게 깜짝 선물을 주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20년 전 들렸던 독일, 유기농장이 소환되었다. 이런 깨끗함이라니. 유기농업으로 재배된 볏짚을 가져와서 유기농 사료를 만들고, 이 사료로 소를 길러 먹이는 농장. 환경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거세우 (고기 맛을 좋게 하기 위해 수송아지의 성기를 잘라냄)가 아닌 펄펄한 수소를 기르는 곳. 우리나라 축산업 실태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모든 게 새로웠고 어리둥절했다.     



관계자와 이야기하던 중, 우리나라에도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많은 유기농업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년 전과 비교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상황. 이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One Health 구현에 그리 많은 시일이 소요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는 일. 20년 간 불신의 눈초리로 보아온 유기농업. 얼마만큼 발전했는지 깊숙이 알아보기로 했다. 어디선가 눈 가리고 아옹하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제로는 아닐지도 모르고. 아니면 내가 꼰대 마냥, 과거에 휘둘려 사는 인생이거나.      


기회가 되면 농약을 치지 않고는 재배하기 어렵다는 과일이나 채소 쪽부터 들춰 볼 생각이다. 진실로 과일이나 채소에서 제대로 된 유기농업을 하고 있다면. 더 알아볼 것도 없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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