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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Jul 08. 2021

돈, 몸, 삶을 버리게 하는 술.

10년 만인가. 어머니의 이종사촌, 내게는 당숙뻘 되는 분을 만났다. 특별한 날 이외는 만나지 않았기에, 데면데면하다. 그 특별한 날은 결혼식이거나 장례식. 이번은 장례식날. 주인공은 셋째 외삼촌이다. 간에서 시작한 암이, 위, 폐까지 번져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던 외삼촌이 5년 넘게 생존하시다가 돌아가셨다


6개월 시한부 인생인데 10 곱절은 버티셨으니, 장하다고 축하드려야 할 것 같지만 슬펐다. 요즘 60대 중반이란 나이면 저 세상으로 가기엔 이르지 아니한가. 나와는 비슷한 면이 많으신 분이셨는데. 암에 걸릴 것까지 비슷하고.  


외삼촌의 사망원인은 암이 아니었다. 폐에 물이 차고, 심장에 이상이 생겼는데 허약한 몸이 이를 넘기지 못하신 것이다. 그 원인은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외삼촌의 천성을, 암으로 허약해진 몸이 버티지 탓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는 부분은 암으로 참기 어려운 통증을 겪으시다가 돌아가신 게 아니란 점이다. 입원하시고 한순간에 돌아가셨다.  


외삼촌은 암이 깊어지자, 사업을 접으시고 평소 생각해 두셨던 일을 하셨다. 혼자서 집짓기와 가구 만들기. 멀쩡한 사람도 어려운 일인데. 5년이란 세월과 외삼촌의 바지런함, 손재주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 목표로 하신 집을 다 지으시고 가구도 얼추 다 만드시고 난 후, 마지막으로 만들어 낸 작품은 어머니에게 선물한 싱크대였다. 나는 어제부터 그 싱크대를 사용하고 있다. 본인의 운명을 예측하신 듯, 서둘러 마무리 하신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당숙뻘 되시는 분은, 외가 쪽 어른들을 하나하나 집어가시면서 두 부류로 나누셨다.  60대 중반을 못 넘기고 돌아가신 분. 80세를 넘어 정정하신 분. 그러면서 화를 버럭 내셨다. ‘술을 권하는 짓은 독약을 먹이는 짓이야.’ 하시면서 ‘우리 집안은 가훈으로 술을 먹지 말게 해야 돼.’라셨다. 그 옆에 있던 애주가 외사촌 동생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분 역시, 술로 인해 간에 문제가 있어 한 때는 천당 문턱에 한 발을 내디딘 적이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신 건 외삼촌의 영정을 보시면서 뜨끔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아마도.  


술을 좋아하는 외삼촌들. 술을 좋아하는 만큼 수명이 짧았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병들을 훈장처럼 달고 일찍들 귀천하셨다. 가장 술을 좋아하셨던 첫째 외삼촌은 60세 나이에 요절하셨다. 둘째 삼촌은 젊었을 때부터 간에 문제가 있었는 데, 끝내 술을 멀리 하지 않아 60대 초반에 돌아가셨다. 이번에 돌아가신 셋째 삼촌은 60대에 들어서자마자 암에 걸려, 강제로 술을 끊게 되었고 덕분에 60대 중반까지 명을 이으셨지만 암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고통이셨다. 막내 삼촌은 아직도 술을 드신다. 다만 형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드문드문 드신다.


 운이 좋은 것일까. 일찌감치 암에 걸려 술을 끊게 되었으니, 60대 중반 넘게는 살 가능성이 생긴지도.


사실 난 암에 걸리기 전까진 외삼촌들과는 체질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고 살았었다. 전국체전에 출전할 정도의 운동실력을 겸비한 외삼촌들과는 달리, 난 반 대표로 뽑힌 적도 없는 허술한 운동신경을 가졌기에. 다만 먹으면 바로 살로 가는 체질은 비슷하고, 술만 보면 입맛을 다시는 것도 비슷은 했지만.


이번에 깨달은 것은, 셋째 외삼촌 다음이 내 차례일지 모른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기 시작한 후, 일 년 중에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빨간색으로 칠해진 날보다 적었으니. 뭐라고 변명할 거리도 없다. 더하여 암도 있으니.


그런데 이는 나만의 문제일까.


우리나라에 나와 비슷한 체질의 사람들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먹으면 바로 살이 찌고, 술만 보면 입맛이 도는. 술을 즐기신 분들이 일찍 가시는 집안의 사람들.


아이들에게 전할 말이 생겼다. '우리 집안에서 술은 돈버리고, 몸버리고, 삶을 버리게 하는 독극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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