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돌아왔다.
원래는 한 달이어야 했던 시간이 코로나를 만나며 다섯 달이 되었다. 한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곳 생활이 시나브로 나를 익숙해지게 만들었는가 보다. 돌아갈 시간이 될수록 초조했고 다가올 외로움이 그려졌다.
유학생활을 하다 보면 느끼는 그 차가운 공허함은 잘 잊히지 않는다. 가족과 친구의 품에 돌아온대도 그 마음은 흉터처럼 다시 기억난달까. 아무튼 또 그 마음을 견뎌야 할 것도 알았지만 독일에 가야 했다. 너무 오래 비워두었다. 코로나를 핑계로 한국에서 다섯 달이나 지내면서 당연히 논문은 뒷전이었고 반성 거리만 많이 생겨버렸다. 항상 사람이 북적이는 한국에 있고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용한 나만의 세계로 돌아가 내 본분에 최선을 다하고도 싶었다.
한국에 있을 때 부모님은 '독일에 돌아가도 코로나 때문에 수업도 못 듣고 온라인으로 할 텐데 한국에 있어 그냥'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내가 한국에 있으면 공부하지 않을걸 잘 알았지만 그래도 막상 독일에 도착하니 '방콕'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냥 한국에 있을걸 그랬나..?'
감사하게도 장학금을 받게 되어서 돈을 버는 문제에 대해서는 자유로워졌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모님은 내가 재단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난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걸까? 물론 그게 가장 어렵다. 그리고 논문만 써놓으면 그다음 박사 후 과정은 누가 받아줄까.. 역시 염려는 끝이 없다. 한국에서 자라 그 교육과정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독일 대학 시스템 (박사과정)은 혼란의 연속이기 쉽다. 나 또한 처음보다는 덜 헤매지만 아직도 제대로 알고 있다 자신하지 못한다.
박사과정 2년 차이지만 따지고 보면 1년 차다. 반년은 아프고, 반년은 코로나 때문에 정신 못 차렸으니. 코로나가 덮치지만 않았다면 올해 부다페스트부터 시작해 파리, 베를린 컨퍼런스와 워크샵을 바쁘게 다녔을 텐데 지금은 방에서 기를 모으는 중이다. 이때쯤이면 유창할 줄 알았던 독일어는 한국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던 이유로 아직도 먼 길을 가야 하고 언어의 미숙함은 곧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시킨다.
항상 다시, 다시를 외친다. 이번에도 혼자 걸어가야 하는 긴 터널을 보면서 다시, 긴 호흡으로 다시, 를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