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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Nov 12. 2020

난 이곳으로 도피한 걸까

독일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여러 유형이 있다.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여성인데, 그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는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점이다. 희한하게도 그들은 한국을 그리워하면서도 한국에 돌아가서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그런 것 같다. 




스무 살이 되면서 난 드디어 혼자 해외생활을 시작했다. 여행을 하고, 단기 체류도 해보고 교환학생도 하면서 외국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한국에서는 안 되는 것 투성이었고, 날 보호한다는 사람들이 내 옆을 싸고돌았지만 해외에서는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성인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반쪽 성인이었다. 금전적인 부분은 여전히 부모님께 기댔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내게 당연히 부여되었던 규범 (norm)을 잠깐 동안 잊고 살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여성으로서 내게 기대되는 행동양식, 젊은 청년으로서 취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태도 등은 해외에서는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추상적으로나마 해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20대를 그 준비기간으로 삼고 지내왔던 것 같다. 해외 거주가 목표는 아니었지만 원하는 삶의 양태였다. 나에게서 얼기설기 엉켜있던 가족과의 관계와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난 그 방법으로 떠나는 것을 선택했던 거다. 우리 가족이 오히려 건강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가족은 자꾸 서로의 거리를 침범하고 삶을(특히 나의) 간섭하고 싶어 한다. 


한국은 여성 학자가 설 자리도 비좁다. 내가 공부했던 대학원의 경우에도 열명이 넘는 교수님 중 여성 교수는 한 명뿐이었고 그나마 이제 겨우 임용이 되신 분이셨다. 내가 학위를 따고 한국으로 돌아가도 내게 돌아오는 자리가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별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해외에서 거주하는 게 꿈이라는 사람들에게 가끔 '꿈 깨'라는 말을 해주고 싶을 때도 있다. 평생을 한국에서만 살던 사람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도 그렇지만, 준비와 노력이 많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외 거주는 '꿈'이 될 수 없고, 삶을 살아가는 양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독일에서 만나는 친구들이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할 때 정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친구들만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인도, 싱가포르에서 온 몇몇 친구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우린 '나의 나라만 아니면 어디든 괜찮을 것 같아'라는 마음으로 졸업 후 직업을 찾겠다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이따금 회상할 때면 나의 친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그 이유를 왠지 알 것만 같아서 서글퍼진다. 우린 비슷한 부모를 가지고 있고, 비슷한 사회의 벽에 부딪힌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걸까?


외국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많은 순간 어려움도 있지만 가끔의 실수가 허용된다는 점, 일반적인 규범에서 가끔 실수해도 괜찮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평생을 외국인으로 살 수는 없다. 결국 그 외국에서도 난 그들의 국민 역할을 해야 할 날이 올 테니까. 그러니 더더욱 난 내가 해외에서 살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그 결정에 후회하지 않을 테인지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런 모든 변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에서 도망치듯 떠나온 것 같다. 내 주변의 많은 것들이 나를 옥죄어왔고, 난 그걸 이길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더 있으면 모든 걸 포기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독일에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찾고 평온해졌다. 참 우스운 일이지.


이런 경험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이젠 정말 한국에 가는 일이 두려워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곳의 문화와 역사를 좋아하지만 모든 것을 사랑하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너무 상처 받는 것 같다. 친구들과 미래를 이야기할 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때에도 그 현실이 두려워지는 것은 내가 한국에 있게 되면 정말로 맞이해야 할 현실일 것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 얼마나 외국에서 생활을 할 수 있을지 알지 모르지만 그동안 내 안의 힘을 기르고 싶다. 옆에서 쳐도, 위에서 눌러도 끄떡없는. 상처 받지 않는 힘을 기르고 싶다. 그때가 되면 용기를 내어 다시 한국에서 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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