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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Mar 20. 2019

내가 잘하는 건, 적당한 속도로 걷기.


아직은 내게 버겁기만 한 '박사'과정 타이틀을 가슴팍에 얹은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석사과정을 밟던 그때와 지금 뭔가 달라진 게 있을까 자문해 보아도 석사 논문을 한번 써 보았다는 사실과 일 년이 채 되지 않는 연구소에서의 경력만 조금 남아있을 뿐 서툴고 애매한 느낌은 그대로이다. 


내가 진행하고 있는 박사 과정은 'unstructured', 즉 코스웍이 따로 없는 전통적인 독일의 박사 과정 형태다. 따라서 나의 한 학기는 전적으로 나의 계획하에 진행된다. 정신 차리지 않는다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고, 너무 긴장한다면 매일매일이 지치는 나날일 수 있다. 그래도 다행히 난 이런 생활에 그럭저럭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동안 겪어온 실패와 연습을 통해 터득한 것들이 있었나 보다.  재작년 한 해 동안의 백수생활과 석사과정 동안 경험한 방임 교육도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 시간을 관리하고 단기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다 해도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독일에 오기 바로 전까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9-6 근무에 익숙해질 수 있었고 그 덕에 이곳에 와서도 9시면 책상 앞에 앉아 업무 및 공부를 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어릴 때부터 늘 몸을 사렸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이 시험기간에 밤을 새워서까지 공부를 했지만  (11시가 넘으면 아무리 책상 앞에 앉아도 머리에 들어오는 게 없다는 걸 깨닫게 된 후로) 나는 한 번도 밤을 새 본 적이 없었고 스스로 무리라고 느껴지면 고삐를 한번 조여 속력을 줄였다. 그리고 그렇게 '무리하지 않는 삶'의 방식은 나만의 페이스를 터득하게 했다. 


석사과정에서 주변 동기들은 밤을 새우며 연구실을 지켰고, 연구실적을 올리느라 매일의 삶을 피 터지게 열중했다. 하지만 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나의 삶과 여유에 더 중점을 두었던 것 같다. 

물론 후회하는 것도 있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열정적'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나 보다.

피 터지게 사는 삶은 나의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는 그저 '꾸준히' 하기로 했다.


천천히 걸으며 작은 것들에 감사하기

꾸준히, 그리고 적당한 속도로 걷고 달리는 건 긴 호흡을 가져야 하는 공부라는 일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학문은 하루 이틀 나의 몸 바쳐한다 해서 큰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 몇 년의 시간을 거쳐 뒤돌아 보았을 때 나의 발자국들을 보며 성장을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내가 목표했던 바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하루하루의 계획을 짜임새 있게 만든다면 지금은 초라해 보여도 발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기숙사에서 바라본 해 질 녘 노을도. 


'나'로 가득한 글을 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 글은 어쩐지 내가 많게 느껴진다.

지금 잘하고 있어, 라는 믿음이 필요해서 나에게 쓰는 글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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