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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May 02. 2019

독일에 오기 전엔 몰랐던 것들

독일에서 인문/사회과학 박사과정 따라잡기 

독일의 4월 날씨처럼 요즘 감정이 아주 다채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지 어언 두 달째, 아직도 이곳 시스템에 줄곧 헤매고 있는 건 조금 뜻밖이다. 그만큼 여긴 하나부터 아홉까진 내 힘으로 이뤄내야 한다는 의미이고 하고, 또 다른 의미에서 내가 얼마나 대책 없이 이곳에 발을 디뎠나를 보여주는 것 같다. 


https://www.sciencemag.org/careers/2001/11/german-phd-students-free-lonely?fbclid=IwAR2mhgNhIei0JURrncGBMtBqm8PQGHG6vm7qNIigDYJ0tEVMTDOZQi8v0Cc


'독일 박사생: 자유롭지만 고독한..'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독일에서 박사과정이 무얼 의미하는지 적고 있다. 독일에서의 박사과정, 'Promotion'은 꼭 학교에서 진행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박사과정생은 코스웍도 듣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독일 박사과정은 학위 논문만 쓰면 되는 '단순한' 과정인 것 같지만, 그 속에는 학생 개인의 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쌓기 위한 뼈 빠지는 노력이 베여있다고 보면 된다. (왜냐면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이리저리 부딪히고 헛발질하다 얻어걸리는 느낌의 기회랄까..)  박사과정을 진행하는 학생이 학교에서 조교나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게 아니라면 다른 학생들을 만날 기회는 더 적어지고, 동료 학생들과의 네트워크도 약할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에도 학교에서 근무하는 게 아니라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박사과정을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지만, 사실 학교와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지도교수에게 피드백받는 게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고, 동료 박사과정생들과 네트워크를 쌓을 기회도 한없이 멀어진다. 학교에서 진행되는 다수의 행사에 참여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주변에 독일에서 박사를 밟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나는,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이런 현실을 알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는 건 한계가 많았고 대강 '이럴 것이다'라는 추측과 물음표를 가득 안고 무작정 한국을 떠나왔다. 도착하면 뭐든 주어지는 정보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와서도 한참을 헤매었고 하나씩 깨닫게 되었을 때 내 생각과 다른 당혹감이라니..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는 걸까..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한 일은 계획표 짜기였다. 박사과정을 4년으로 잡고, 올해 1년의 계획을 먼저 정했다. 그리고 이번 학기 계획과 목표, 거기에 세부적인 단기 계획을 정했다. 학위 논문의 진행과 앞으로의 퍼블리시 계획, 그 밖의 연구 관련 계획을 세웠다. 


나의 전공인 한국학과 어쩌면 더 관련 있는 사회학, 여성학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어있는 나의 상황에서 이번 학기에는 두 학과의 전공을 하나씩 청강하기로 했다. 한국학 수업은 나의 지도교수와의 접점을 위해 듣는 수업이고, 사회학 수업은 필요에 의해 듣기로 했다. 그리고 학교 박사과정생을 위한 워크숍을 신청했다. 



계획도 하고, 몇 개는 진행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높게만 느끼는 문턱이 있다. 첫 번째. 독일어 배우기는 생각지 못한 난관이다. 독일에 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독일어를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처음엔 기간이 맞지 않아 계속 기다렸고 그다음엔 자리가 나지 않아 등록에 실패했다. 결국 독학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막막함과 불안함은 어쩔 수 없다. 영어로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는데 독일어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독일어를 하지 못하면 장학금, 일자리 등 독일 사회에서 박사생으로써 받을 수 있는 여러 혜택에서 자꾸만 제외된다. 아마도 이공계는 다를 수 있겠지만 사회과학/인문학 분야에서는 박사생에게 독일어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두 번째, 박사과정을 하기엔 부족한 나의 실력과 경험. 이건 정말 치명적이다. '나 그동안 뭐했지'라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하루하루가 절박하게 흐른다. 선배 박사분을 보면 이미 너무나 전문가 포스가 풍기지만 나는 마치 석사 5학기 생 느낌인 양 아직도 어리둥절. 아마 그분이 나보다 열 살 정도 나이가 많으니까 내가 10년 후에 박사를 시작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어쨌든 이런 부족함을 매일 깨닫는 만큼 게을러질 수가 없다. 


그래도 24시간 매일매일 공부만 할 수는 없으니 가끔씩 바깥공기를 마시러 돌아다니고 운동도 틈틈이 하고 있다. 정신건강과 체력관리는 이곳에서의 마라톤 같은 길고 긴 경주를 완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근육 같은 거라고 했다. 기숙사 WG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 유럽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한다. 학교 체육관에서 태권도도 배우고 있다. 


어쨌든 박사과정을 진행하면서 중요한 건 매몰되지 않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힘을 얻는 시간이 필요하다. 용기를 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넓혀나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굳이 친해지지 않아도 괜찮지만, 만약 기회가 된다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쿨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바깥세상으로 나가자 (유학생활에서 필요하지만 은근히 어려운 덕목인 것 같다). 


나는 독일 박사과정을 맨 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나보다는 준비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고, 앞으로 내가 더 많이 알아 좋은 정보를 많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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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비자(residence permit)에 필수적인 보험가입을 들 때 한국에서 온 박사생은 공보험은 들 수 없고 사보험을 들어야 한다. 정식으로 보수를 받고 일을 하고 있는 케이스는 잘 모르겠지만 박사과정만 하고 있다면 사보험을 알아보길. 각 시마다 인정해주는 사보험이 다를 수 있으니 정확한 사항은 학교에 문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Mawista, Care-concept, educare24 중에서 가장 저렴한 Care-concept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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