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kim Aug 16. 2019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

독일 사람과는 대게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사회마다, 문화마다 사람 간의 평균적인 적정 거리가 있는 것 같긴 하다.

독일 사람들은 대게 처음 만났을 때 수줍음이 많다. 때로는 그게 무뚝뚝해 보이기도 하고, 불친절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낯선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정하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 것 같다.


낯선 사람이 아니라도, 쉽게 마음의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굳이 터놓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지만 몇 번 만나지 않은 사람에게 더더욱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이걸 잘 알지 못하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독일 사람과 대화하다 서로 당황할 수 있다. 공적인 만남에서 한번, 두 번 만났다는 이유로 이성친구가 있는지 물어본다던지 나이가 몇 살인지 물어보는 등의 질문을 한다면 듣는 이를 당황하게 할 수 있다.


나도 처음 사람을 만나면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고 쉽게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곳의 독일 사람들의 태도가 한편으로는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굳이 부담을 가지고 낯선 사람에게 친근한 태도를 취할 것도, 오버스러운 리액션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게 좋았고 무엇보다 알려주고 싶지 않은 내 사생활을 그들이 묻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이 사람들과 언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막막할 때도 있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게 언제가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몇 번을 만나고 몇 년을 알고 지낸 후에야 어느 정도의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런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가끔은 사람을 사귀는 일이 쉽기도, 어렵기도 하다.


어느 나라이던지 사람과 사람 간의 적당한 거리가 중요하다. 다만 그 적당한 거리가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조금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한없이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게 나에게는 너무 밀착된 것처럼 느껴진다. 독일은 이보다는 조금 더 거리가 많이 필요하다. 개인의 사생활이 중요하고, 당신의 영역이 중요하듯 나의 영역도 보장받아야 한다. 나의 독일인 친구 S의 남자 친구는 핀란드에서 교환학생을 한 경험이 있는데 핀란드는 이보다 더 먼 거리처럼 느꼈다고 말했다. 아주 아주 먼가 보다. 신기하게도, 친구들의 국적에 따라 다른 거리감을 유지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같은 시간을 알아왔는데도, 같은 아시아권의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독일 친구에게는 하지 못하고, 같은 유럽 내에서도 포르투갈 친구와 독일 친구와는 다른 농도의 친밀감을 가지게 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와 더 깊은 신뢰감을 쌓게 되는 건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작년부터 거진 10개월을 한국의 한 연구소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난 그래도 꽤 스트레스받지 않고 잘 지냈다. 근무하는 내내 나는 나의 영역에 울타리를 치고 성을 세우는 작업을 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과 잘 지내긴 했지만, 그것이 퇴근 후까지 그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의미도, 그들이 나의 SNS에 초대될 수 있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우린 동료였지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회사 분위기가 수평적이었기 때문에 우린 점심시간에도 다른 연구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각자 원하는 대로 식사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무조건 6시 칼퇴근을 했고, 퇴근 이후에는 절대로 회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주 3일 출근을 하면서 월급은 조금 덜 받았지만 엄청난 마음의 여유와 시간적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독일에 와서 생각해보니 난 그럭저럭 나만의 거리두기를 해내고 있었던 것 같다. 퇴사 후 모든 동료들과 연락을 하며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팀원들과는 이제 친구가 되어 지낼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우호적인 기억을 가지고 그들을 내 무대에서 떠나보낼 수 있었다.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를 조급해하거나, 너무 가까워지고자 하는 열망을 가질 때 많은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점도 조금씩 배워간다. 어쩌면 어린날의 순진함이 사라졌다는 점이 아쉽기도 하다. 그땐 누구에게나 다가가고 싶어 했고, 사랑받고 싶어 했는데 이젠 그게 안된다는 걸 아는 때가 되었다는 의미이니까. 거리두기. 그것 참 어렵다. 하지만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경을 위한 소소한 실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