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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Oct 16. 2019

암보다 무서운 건 마음

김의신 박사가 쓴 "암에 지는 사람, 암에 이기는 사람" 책에 보면 한국인 암 환자들은 보통 미국인 암환자에 비해 비관적이고 의사도 불신해 암을 이겨내기도 어렵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살 확률이 30%라고 해도 미국인 환자는 "감사합니다! 30%나 되는군요!"라고 하는 반면 한국인 암환자는 낯빛이 어두워지며 벌써 죽을 생각부터 한다는 거다. 


나도 한국인이라 그런지 아직 결론 나지 않은 이 이야기에 벌써 마음이 지쳤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내 머리의 병변은 지난번 스테로이드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쁜 악성 암세포처럼 빠르게 자라지도 않았다. 그냥 아무 변화가 없어서 의사 선생님도 정체를 알 수 없다고 했고, 한 달 더 기다리자고 했다. 한 달은 짧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무한히 길기도 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무의식에서도 자꾸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 진단받았을 때와는 다르게 이젠 암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많이 생겼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처음 몇 주는 무엇을 보아도 '내가 저 에피소드의 결말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암환자들은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적응기간이 걸리는 것인데, 처음엔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수용과 부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몇 개월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여기에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암환자들이 우울증을 겪게 된다. 


나는 진단을 받고 몇 주 후부터 숨쉬기에 어려움을 느꼈다. 처음에는 숨을 쉬려 해도 쉴 수가 없는 증상이 내 머리의 병과 연관이 있는 줄 알고 너무 두려웠는데 곧 마음과 관련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다른 암 환자들도 종종 이런 증상을 경험한다는 걸 듣게 되었다. 


우울하고 쳐진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주 가끔 운동을 좀 하라던지,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라던지 하는 조언을 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정말 이 우울감은 나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다. 그들의 조언은 내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아무 시도할 마음이 들지 않는 나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들뿐이다. 


책 "암에 걸렸다는데, 저는 건강히 잘 살고 있습니다" -[호사카 다카시, 이마부치 게이코 저자]에서 저자는 슬픔이라는 감정도 뇌가 느끼는 하나의 감정이라는 부산물로써 객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그러기로 했다. "아. 나의 뇌가 슬픔을 느끼는구나." 그리고 슬픔에 너무 몰입하지 않고, 나의 마음을 잘 다루려고 노력 중이다. 


뇌는 다행히 단순해서,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한다고 한다. 염려를 시작하면 염려밖에 하지 못하지만 다른 일일에 몰두하면 걱정을 잊는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정리해 보았다. 우선 거실에 있던 CD 플레이어를 내 방으로 옮겨와 새롭게 음악을 듣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왕창 빌려왔다. 서점에서도 읽고 싶던 책을 샀다. 가고 싶던 박물관 리스트를 만들었고, 날씨가 좋아 어제는 당일치기 여행도 다녀왔다. 


어려운 건 어려운 거고,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렇기에 공감할 수 있고, 앞으로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인가 보다.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니 상쾌했다. 그리고 오전을 지나니 다시 숨을 쉬는 게 어려워졌고 조금 마음이 갑갑해졌다. 그래도 시간은 지나가고 나는 여전히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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