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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Nov 05. 2019

위로와 위로

불확실하고도 불안한 시간을 잘 보내도록

아직도 내 주위에는 내가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국에 있는 것도, 아프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더구나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생겨서 내가 한국에 있고, 그 이유는 몸이 안 좋고, 더 나아가 그 이유는 뇌종양 때문이라는 걸 알려줘야 할 때면 그 분위기는 참 어색하다. 나에겐 몇 달 된 소식이라 마음 정리도 되었는데 상대방에겐 새로운 소식이라 정작 위로해 주어야 할 사람은 내가 된다. 상대가 너무 충격받고 슬퍼하면 나는,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계속 말해주어야 한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내가 되고 청자는 아프지 않은 상대방이 된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참 싫다. 사실 괜찮지 않지 않나. 하지만 난 겨우 마음을 정리했고 이제 괜찮기로 마음먹었는데 또 친구를 붙잡고 울고 싶지 않아 그냥 괜찮은 역할 하기로 했고, 괜찮은 척을 하면서 피곤해진다. 


어제는 A 병원에 다녀왔다. 원래 다니는 병원이 아닌데 부모님이 다른 병원 의사 선생님 말씀도 들어보고 싶어 하셔서 한 번 다녀왔다. 지금 다니는 병원 선생님은 아직 병명을 확실하게 말씀해주시지 않은 반면에 이곳 선생님은 나의 머릿속 종양이 지금껏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았으니 신경교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셨다. 낮은 단계의 성상세포종 같다고 하셨다. 아아. 그놈의 신경교종. 그리고 결론은 확실하지 않으니 다른 선생님들과 상의하겠다고, 다음 주에 다시 오라고 했다. 항상 느끼지만 의사의 말 하나하나가 나를 절망시키기도 하고 희망을 북돋우기도 한다. 의사의 말에 중심을 잃지 말아야지, 항상 생각하지만 그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래도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의사를 만나고 나서 곧 죽을 것 같은 느낌보다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받고 싶다. 



독일에 있는 친한 친구 S는 내가 처음 뇌종양을 진단받을 때부터 내 소식을 듣고 함께 걱정해 주었다. 1년 전부터 초대받은 S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너무 미안해하는 나에게 내 건강만 생각하라고 나를 다독여주며 결혼사진과 함께 내가 먹을 수 있는 건강한 비건 초콜릿도 보내주었다. 한 달에 3조각만 먹기로 했는데 이번 달은 1일이 되자마자 녹차와 함께 먹었다. 따뜻한 마음이 독일에서부터 여기까지 한걸음에 닿아왔다. 


지난달 한때 숨쉬기가 너무 힘든 때가 있었다. 마음도 너무 우울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테로이드가 우울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 같은데 아마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한참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부모님 업무 상 제주도에 1박 2일로 내려갈 일이 생겼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그곳이 나를 많이 치유해 주었다. 제주의 자연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다른 무엇보다, 누구를 통해서 보다, 자연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는 게 어떤 건지 이해가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는 숨도 쉬는 게 어려웠는데 나 혼자 자연 속에 있으면 편안한 마음이고 두려움도 조금은 풀어졌다.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며 내가 괜찮다고 무작정 믿지 않도록 하려 노력하고 있다. 괜찮지 않고 슬프다면 그런 감정을 인정하고 나의 머리가 만들어내는 감정도 인정해주고, 그러나 감정에 매몰되지 않도록 노력한다. 위로는 조금 덜 해주고, 위로를 조금 더 받으면서 그렇게 조금 이기적으로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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