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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Dec 18. 2019

못 먹는 게 많아진 사람이 되었다

건강하게 먹는 것이 참 어려운 한국.

뇌종양을 발견하면서 차츰 식단을 바꿔왔다.


처음에는 글루텐, 설탕, 유제품부터 끊었다.

가장 먼저 접한 책 '당신은 뇌를 바꿀 수 있다' (톰 오브라이언 저)에서 그 세 가지가 가장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였다. 몸에서 염증을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글루텐, 설탕, 유제품을 그만 먹기로 한 이후 2달 정도는 그다지 엄격한 식단을 따르지 않았다. 이전에 과자, 젤리와 같은 간식을 많이 먹었는데 그 대신 엄청난 양의 과일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빵, 밀가루 음식을 줄이는 정도였다.


내 머릿속 종양은 수술을 할 수 없는 위치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식단이라고 생각했다. 식단을 어떤 식으로 계획해야 할지 한참을 찾아보았다. 그러면서 내가 매일 접하는 시중에 파는 간장, 고추장에도 심지어 글루텐이 들어가고 많은 반찬류에 설탕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즐겨 먹는 카레에도 보통 밀 성분이 함유되고 심지어 매일 바르는 립글로스에도 글루텐이 포함되었다.


그러고 나서 추천을 받아 다녀간 병원에서는 '저탄고지' 식단, 케톤 영양식을 추천했다. 처음에는 과일과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는 말에 반발심이 생겨 한 달 정도 식단을 지켰다, 어겼다를 반복하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결국 탄수화물, 당분을 너무 많이 섭취하는 건 암을 키운다는 여러 의사와 서적의 충고에 따라보기로 했다.


진단 후 여러 달의 고민 끝에 내 목표는 머릿속 종양을 잠재우고 오래 사는 것이 되었다. 그 목표에 맞추기 위해 지금 지키는 식단은 글루텐, 설탕, 유제품을 제한하는 것에 더하여 탄수화물을 최소한으로 섭취하고 가능한 유기농 제품을 먹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자세한 식단은 여기에 올리지 않겠지만, 이런 기본적인 규칙만을 지키려 해도 내가 기존에 해왔던 장보기 패턴이 100% 변해야 했다.


일단 밀 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간장, 고추장은 직접 담그지 않는 이상 구하기 어려웠다. 슈퍼와 마트에 팔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한 협동조합에 가입해서 그곳에서 장을 보기 시작했다 (유기농 제품을 사시는 분들에겐 아마 친근한 그곳). 조합원이 되니 유기농 제품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마트, 편의점에는 자연스레 발길을 끊게 되었다. 마트는 물론 가끔씩 방문하지만 편의점에서는 정말 살 수 있는 제품이 없어졌다.


가공 음식이나 편의점 음식 (삼각김밥, 샌드위치 같은)에는 자세한 성분이 아예 표기되지 않거나 아니면 내가 먹을 수 없는 재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직접 해 먹는 게 가장 안전하고, 먹을 수 있는 종류도 많았다. 문제는 밖에서 먹을 때였다.


뷔페에는 각 요리의 주 재료만 적혀있을 뿐 상세 재료명은 찾기 어려웠다. 그저 가늠하면서 '이건 먹을 수 있고, 이건 안 될 것 같고'를 결정해야 했다. 식당에서 이것저것을 물어보면 금세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분들이 계시기도 하고, 난 그냥 밖에서 사 먹는 게 죄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무언가를 빼 달라고 할 때도 최대한 죄송한 표정으로 부탁해야 한다.


원래 여행을 좋아했지만, 아프고 나서는 정말 여행이 내 삶의 낙이 되었다. 우울한 생각도 날려버릴 수 있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정말 곤란한 시간은 식사시간이었다. 아직 아프고 나서 해외여행을 해본 적 없지만, 국내여행은 정말.. 하루 세끼 굶는 게 차라리 쉽다고 느낄 때도 있다. 나는 한국에서 너무 까다로운 손님이라 '그 정도는 그냥 먹지'라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사람들이 열에 여덟. 요리에 설탕, 간장을 빼 달라고 할 때면 '얘 왜 이래?' 하는 표정도 이제는 조금 익숙하지만.. 그래도 속상하다.

 

소금간을 한 성게미역국과 버터를 뺀 전복죽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으면 너무 좋다. 음식점을 하나 찾을 때에도 몇 번의 검색과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한 끼를 해결한다는 건 참 안도되는 일이다. 나도 이렇게 내가 먹을 음식을 찾는 게 힘든데 내 친구들은 아마 더 고단하다고 느끼나 보다. 친구들은 보통 그냥 그들이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는다.


채식을 했을 때 까지는 친구들이 나를 좀 배려해줬지만 이제는 그냥 포기한 것 같다. 아니, 채식을 했을 때와 지금 식당을 고르는 기준이 같은 것 같기도 하다. (고기 메뉴 빼고 다 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지금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주 아주 제한적이다. 왜냐면 식당에서는 나를 위해서 내가 시킨 메뉴의 특정 재료를 빼 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그 집 메뉴는 가공 음식을 기본으로 만들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식사를 할 때면 나는 그냥 풀떼기를 씹고 있거나, 아예 나는 밥을 먹고 만나거나 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영화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킵 앤더슨, 키건 쿤)에서 보면 가공육, 그리고 공장식 축사에서 키운 가축이 얼마나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책에서는 몸 안의 염증을 만들어내는 글루텐, 유제품, 설탕이 결국 치매, 뇌 안개, 암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내가 아프지 전까지만 해도 내가 먹은 하루 세끼 음식에는 모두 그 재료들이 포함되었다. 지금도 완전히 배제되었는지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알게 모르게 먹는 음식도 있을 것 같다.


켈리 터너의 '하버드 의대는 알려주지 않는 건강법'을 읽어보면 그녀가 인터뷰한 암을 이긴 중증 환자들은 모두 그동안의 식습관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일상의 음식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식당과 마트를 오가면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이 있을까 살펴보다 보면 짜증이 훅 올라올 때가 종종 있다. 가공식품이 편리하고 이윤을 많이 남기기 때문이겠지만, 왜 건강을 해치는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드는 걸까. 그리고 식당에서는 왜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는 걸까. 친구들이 나와 식사할 때 이젠 그냥 메뉴 선정에 나를 배제하고 선택하는 이유는 갈 수 있는 음식점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아마 독일에 있었다면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외식을 하는 일 자체가 적기 때문에 내가 먹는 음식은 더 쉽게 관리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외식이 잦아지니 어쩔 수 없이 경험하는 것 아닐까. 독일에 가게 되면 그때 느끼는 점도 다시 한번 정리를 해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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