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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kim Oct 26. 2019

가을에 당진.

요 며칠간 시간을 졸졸졸 흘려보냈다. 뭘 하는지도 모르게 의욕도 없이 침대에 누워있다 보니 아침 일찍 일어나도 어느덧 오후가 되었고, 저녁도 금방 왔다.


그러다 가끔 억지로라도 밖에 나오면 너무나 맑고 파란 하늘이 그간 나의 게으름을 반성하게 했다. 어려운 일들은 심술궂게도 무리 지어 찾아오는 것 같아 가족들 모두가 어려운 시간이었다. 가장 어려운 시간에 엄마를 데리고 가을의 당진을 찾았다.


  


당일치기는 설렁설렁하는 편이다. 우린 수도권에서 차로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당진으로 가기로 했고, 목적지는 한 군데만 정해두었다. 당진 아그로랜드 목장으로 가서 맑은 공기를 많이 맡고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 실제로 가본 목장은 생각보다 크고 사람들을 위한 시설들이 많았다. 유럽에서의 목장을 상상하고 갔는데, 아그로랜드는 목장이라기보다는 동물원 느낌이 많이 났다. 입구를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인 건 큰 젖소 앞에 젖을 짜 보려고 기다리는 어린이들이었고, 우리 안의 동물들이었다.


젖소는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서툰 손에 부르튼 젖을 내어주어야 한다.


사실 처음 보는 이 광경은 나를 조금 많이 불편하게 했다. 아이들이 떠나고도 꼼짝없이 움직이지 못하고 한자리에 서서 기다리는 소는 간간히 다리를 떨어댔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 젖을 다 짜 본 아이들이 이번엔 다른 동물들에게 먹이 주기 체험을 하고 있었다. 슬프고 아쉬웠다. 꼭 젖소의 젖을 아이의 손으로 직접 짜 보아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만약 정말 교육적인 체험이 필요하다면 나에겐 젖소 농장에 가서 하루 동안 일을 해 보는 편이 더 유익했을지도 모른다 (충격받았을지도 모를 테다)



(우유나 치즈는 동물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참고자료(심약자는 주의): https://www.youtube.com/watch?v=_quX1acHGks&has_verified=1 )


그래도 동물들은 너무 예뻤다. 가까이서 보는 게 얼마나 좋던지. 동물원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고 자주 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어쩌다 가게 되면 제일 열심히 보는 건 나다. 나의 가치관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동물들을 이렇게나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행복감을 느끼는 건 아이러니이다. 정말 나 스스로가 환경을, 동물을 지키려고 노력한다고 말하면서 매일 실패하고 어떻게든 일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을 탓하지 말아야겠다고 또다시 생각한다.


우연히 만난 토끼와 동물 친구들
코스모스와 핑크 뮬리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하늘이 아주 맑은 날이었다. 하늘과 동물, 자연을 보면서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그동안 나를 돌봐주느라 고생했던 엄마. 내가 머잖아 아주 당신 곁을 떠날까 무서워하던 엄마. 엄마의 표정도 환하게 피었다. 이렇게 기운 내서 다니다 보면 정말 힘이 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진 아그로랜드


당진은 생각보다 갈 곳도, 볼 것도 많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당진에는 목장도 있지만 바다도 있고 놀이동산도 있다. 작지만 예쁜 미술관도 사람이 붐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번에는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데리고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가을날 당진은 날씨와 동물이 다 했고, 나의 마음을 온전히 위로해주었다.




2018년 방문한 당진- 아미미술관, 해변, 삽교호 놀이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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