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72교시 하고 싶어요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교실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둘러싼 공기가 이곳이 2학년 14반이라는 걸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손을 허리에 얹고 화장실을 다녀옵니다.

글자로만 존재하던 스물네 개의 이름이 아이들 얼굴로 하나둘 바뀌어 갑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바람도 하나씩 늘어갑니다.

기대하는 것도 생기고, 요구하는 것도 많아집니다.


저에게는 선생님으로서 포기하기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책에서 배운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닙니다.

오랜 시간 교단에 서 있다 보니 저절로 만들어진 기준입니다.


하나, 복도에서 조용히 하기

둘, 수업 시간에 바르게 앉기

셋, 글씨 또박또박 쓰기


이 세 가지는 제가 어떤 학년을 만나든 절대 물러서지 않습니다.


수업 시간에 조금 떠들어도 되고,

받아쓰기 시험 다 틀려도 되고,

리코더를 잘 불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공책에 엉망으로 써 내려간 글씨는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바꿔보려 해도 오래 쌓인 기준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요즘 저는 저 세 가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매일 이야기합니다. 아주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아이들이 변해갑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성큼 자라 있습니다. 그걸 알기에 저는 계속 아이들에게 요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조금 엄격했을까요. 표정도 말투도 그리 부드러운 편은 아닙니다. 익숙한 걸 버리고 새로운 걸 바라게 하는 선생님이 아이들에게는 조금 버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3월 첫날의 어색한 긴장감은 사라졌지만 요즘 교실에는 조용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저는 수업 중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말해 봤자 그 순간뿐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스스로 찾아낼 때까지 기다립니다. 아홉 살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수업시간이 시작됐는데도, 책을 펴지 않고 다리를 달랑거리며 다른 곳을 보는 아이가 있어도 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바라봅니다. 1분이고, 2분이고 조용히 바라봅니다.

그러면 아이는 어느 순간 선생님의 눈길을 알아챕니다. 주위를 둘러봅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주변을 살피다 결국 책을 꺼내고, 의자를 당겨 앉습니다.


저는 늘 이렇게 수업을 합니다. 말은 줄어들지만 교실에는 조용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익숙해지면 아이들은 스스로 할 일을 찾습니다. 하지만 3월의 아홉 살에게는 이 긴장감이 쉽지 않습니다.


아직 세상을 바라본 지 십 년도 안 된 아이들이 규칙을 찾으려고 작은 머리를 굴리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삼월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수업을 마칠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책상 아래를 미니빗자루로 쓸고 다음 주를 위해 교실을 정리합니다. 금요일이 끝나 가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일주일에 두 번 있는 4교시 수업입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묻습니다.

"오늘은 몇 교시까지 해요?"


칠판 한쪽에 붙어 있는 시간표는 아이들에게 별 의미가 없습니다.


"벌써 4교시 수업이 끝났어.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바닥을 쓸던 아이 몇이 고개를 들고 선생님을 바라봅니다.


"벌써 4교시가 지났다고?"

"매일 7교시 했으면 좋겠어요."

"눈 감았다가 뜨면 월요일이면 좋겠어요."


몸을 비비 꼬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괜히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때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러 오던 작은 아이 하나가 내 팔을 톡톡 칩니다. 우리 반에서 가장 작은 아이입니다. 수업 시간마다 툭하면 딴생각에 빠져 수업을 가장 많이 멈추게 하는 아이입니다. 어쩌면 학교가 가장 힘들 것 같은 아이가 혀 짧은 소리로 조용히 속삭입니다.


"선생님, 6872교시 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셀 수 있는 가장 큰 숫자였을까요. 아이의 말에 저는 작게 웃습니다. 내 허리춤에 서 있는 아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줍니다.


이런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다 보면

가르친다는 일이 어디까지인지 가끔 멈춰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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