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른 빨리 되기 싫어. 군대 가야 하잖아.”
아이 하나가 갑자기 말을 꺼냈습니다. 교실이 잠깐 멈췄다가, 여기저기서 웃음이 번졌습니다.
오늘은 작은 이별이 있었습니다.
아이 하나가 전학을 갑니다. 한 달을 함께한 친구 하나가 교실을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얘들아, 오늘은 슬픈 소식이 하나 있어."
아이들이 고개를 들고 잠깐 멈칫합니다. 눈이 서로를 향해 흔들립니다.
"오늘 우리 반 친구 하나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어."
아이들은 눈을 크게 뜨고, 떠날 친구가 누구인지 목을 쭉 빼고 교실을 둘러봅니다.
아이의 이름을 부릅니다. 한 번에 모인 시선이 아이에게로 쏟아집니다. 마지막이 될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스치지만,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눈동자만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아이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합니다.
"안녕, 잘 있어."
멋쩍은 미소 뒤로 아이의 말이 떨어집니다.
잠깐, 교실이 멈춥니다.
"잘 가."
"잘 지내야 해."
여기저기서 짧은 답이 되돌아갑니다. 아이들 얼굴이 조금씩 내려앉습니다.
누군가는 입을 다물고, 책상 위를 내려다봅니다. 작게 한숨이 섞입니다.
누군가는 코를 훌쩍입니다.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숙입니다.
저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서 봅니다.
"얘들아, 사람은 누구나 만나고 헤어져. 이 친구는 단지 우리보다 조금 더 빨리 헤어지는 것뿐이야."
"우리도 칠판의 날짜가 12월 30일로 바뀌면 헤어지게 될 거야."
아이들이 조용해집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떠올리는 얼굴입니다.
누군가는 손을 만지작거리고, 누군가는 시선을 떨굽니다.
교실이 한 번 더 가라앉습니다. 말을 꺼냈던 저는 덧붙일 말을 찾아보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때, 남자아이 하나가 입을 엽니다.
"이러다가 우리 금방 어른 되겠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순간, 한 아이가 말을 이어갑니다.
"아! 안돼! 난 어른 빨리 되기 싫어! 군대 가야 하잖아."
교실이 잠깐 멈췄다가, 웃음이 번집니다. 여기저기서 참지 못한 웃음이 조금씩 새어 나옵니다. 아까까지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조금씩 풀어집니다.
작년 교실이 떠오릅니다.
"어른이 되면..."
"대학생이 되면..."
열세 살 아이들이 말을 꺼내다 멈칫합니다. 그리고는, 거의 동시에 덧붙입니다.
"그때 우리 군대 가야 하잖아."
따라붙은 말에 아이들 얼굴이 굳어집니다. 남자아이들은 웃다가 멈추고 눈을 피했습니다. 오지도 않은 시간을 먼저 만난 얼굴이었습니다.
그때는 열세 살이라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오늘 아홉 살에게도 나왔습니다.
더 지난 장면이 눈앞을 스쳐갑니다. 가을이었습니다. 여덟 살 아이들과 현충원으로 향하던 날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두 줄로 세웠습니다. 작은 발걸음이 길을 따라 이어졌습니다. 붉은 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따라왔습니다.
길 끝, 기념관 앞에 서서 짧게 묵념을 했습니다.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습니다.
"여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위한 공간이야."
아이들은 눈을 크게 떴습니다. 말없이, 제 어깨너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줄 앞에 서 있던 아이 하나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눈이 먼저 흔들렸습니다.
입 꼭 다물고 있지만, 새어 나오는 울음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난 죽기 싫어! 난 군인이 되기 싫어! 난 안 죽을 거야!"
목이 터질 듯 소리쳤습니다. 아이의 안경에 눈물이 번져갔습니다. 번진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아이 앞에 헌병이 서 있었습니다. 미동도 없이, 아이의 말을 들으며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잠깐, 턱이 살짝 움직이더니 헌병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이의 울음이 현충원을 가득 채웠습니다.
어떻게 달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 장면이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너희들 덕분에 우리가 있는 거야."
작년, 시무룩한 열세 살 남자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말을 건네면, 아이들은 잠깐 입을 다물었습니다.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이내 눈을 피했습니다. 쑥스러운 얼굴로 가만히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눈앞을 스치듯 지나갑니다.
그리고, 다시 오늘 아홉 살 아이들이 제 앞에 서 있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찾지 못합니다.
생각보다 이른 이야기였습니다.
아직 이름도 다 외우지 못한 사이입니다. 아홉 살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헤어짐을 배웁니다.
그 사이에서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떠올리며, 어른을 먼저 생각합니다.
저는 그저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말을 꺼내지 못한 채, 그냥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생각보다 일찍 시작되었다는 것만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