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홉. 예의 바른 사람 되기

주말 내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한 아이가 던진 불신의 씨앗이 자라 제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그럴 수 있다'라고 생각은 해 왔지만 실상을 눈으로 보는 건 전혀 달랐습니다. 교사이기에 앞서 나 또한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에 마음을 추스르기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말 내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학교와 거리를 두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음에도, 지난주 저희 반 아이들의 모습이 여행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교실을 가득 채우던 밝은 햇살 같은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영문을 모르던 아이들은 선생님을 피해 자리에 앉아 자신의 일만 집중합니다. 질문 하나 던질 수 없는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 선생님 눈치만 살핍니다.


아주 오래전 부모님께서 다투었던 날 밤이 떠오릅니다. 깊은 밤, 부모님께서는 평상시 볼 수 없을 만큼 언성을 높이며 서로를 비난했습니다. 오가는 고성에 저는 방문을 꼭 닫고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일상을 되찾기 위해 아수라장이 된 거실을 뒤로하고 지쳐 보이는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습니다. 엄마는 힘없이 웃으며 대답을 해주셨지요. 희미하게 웃어 보인 엄마의 미소와 대답은 콩닥거리던 제 마음을 겨우 잡아주었습니다.


교실에서 선생님이 너희 보호자라고 아이들에게 항상 이야기해 왔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선생님은 우리 반을 먼저 지킬 거라고. 대신 너희도 우리 반을 지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지난주, 아무것도 모른 채 숨죽이며 지냈던 아이들이 참 무섭고 힘들었겠다 싶습니다. 그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속에서도 조용히 다가와 저에게 조심스레 말을 붙이던 아이들을 보니 어린 시절 제 모습이 보입니다.


남편과 이야기 나누던 중 '그래도 이 일을 바로잡는 건 어른이야'라는 말이 주말 내 귓가를 맴돕니다. 제가 먼저 웃어야겠지요. 잘못된 선택을 한 아이가 나머지 아이들의 일상을 산산조각 내게 둘 수 없겠지요. 제가 아이들을 지켜야 하니까요. 잘못된 아이는 따로 지도해야겠습니다. 신뢰를 깨트린 것이 얼마나 큰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천천히 느껴야겠지요.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아이들 앞에 섭니다. 아이들이 아닌 저 자신을 위해 되뇌듯이 이야기합니다.


선생님은 올 한 해가 21년 교사 생활 중에 가장 행복하다고.

내가 하는 '좋아한다'는 말은 선생님 생활에서 처음으로 내뱉는 나의 진심이라고.

너희들이 지난 1학기 동안 선생님에게 보여준 믿음과 신뢰가 선생님 마음을 바꾸어 줬다고.

비록 1년이라는 짧은 인연이긴 하지만, 그 인연의 시간이 너희에게 헛된 시간이 되지 않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나와 맞을 수 없습니다. 나를 좋아하고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나를 싫어하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이것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요. 이런 예의를 지키는 것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요.


오늘의 알림장 한 꼭지는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 예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25년 9월 15일 알림장

아홉. 예의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한 나의 실천
실천 1: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어둠 속에서 무서워 떨지 않고, 밝은 기억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 봐야겠지요.


다만, 아이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동참시키겠습니다. 아이들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작은 미소, 작은 손짓, 한 마디의 작은 말부터 시작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작은 말과 행동 하나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요.



keyword
월, 목 연재
이전 09화여덟. 인간으로 살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