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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나. 내 '말'이 곧 나 '자신'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과학 수업이 끝날 즈음, 아이들을 데리러 과학실을 찾았습니다. 교실 뒷문 유리창 사이로 과학 선생님과 수업에 열중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2시간짜리 수업을 마치고 태블릿을 활용해 마무리 게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화면에 나온 문제를 보고 각자 자신의 태블릿에 정답을 입력합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제일 빠르게 정답을 맞힌 학생의 이름 화면에 나타납니다. 자신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기쁨을 감추지 않은 채 크게 환호성 칩니다.


그때, 과학실 대형 스크린으로 정답을 맞힌 학생의 이름이 크게 떠오릅니다.


'하고싶지않아'


과학 선생님께서 아마 이름뿐만이 아니라 별명도 허용하셨나 봅니다. 이제 보니 이름이 아닌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 별명이 눈에 띕니다. 공교롭게도 '하고싶지않아'는 문제를 빠르게 푸는 아이였습니다. 화면에 계속 별명이 떠오릅니다. 총 21개의 문제를 푸는 동안 저희 반 아이들은 모두 '하고싶지않아'라는 문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교실에서 항상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라고 지도합니다. 누가 보면 생각조차 마음대로 내뱉지 못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교실은 1년짜리 가정입니다. 전학이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떠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는 1년 동안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기에 학기 초부터 아이들의 언어 사용 지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누군가 던진 부정적인 한 마디가 교실 전체에 퍼져 기운을 앗아갈 수도,

누군가 던진 긍정의 한 마디가 반 전체에 기운을 북돋아 줄 수도 있다는 것을요.


올해 저희 반에 유행처럼 시작한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문구도 같은 맥락입니다. 당연히 농담으로 시작한 말이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따스한 말 한마디는 서로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줍니다.


과학 수업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와 아이들에게 다시 이야기합니다. 너희들의 감정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교실은 서로가 함께 하는 공간인 만큼, 이곳에서는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떤 영향을 줄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을요.


좀 더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줍니다. 교실 칠판 한가득 '하고싶지않아'라는 말을 빼곡히 적어봅니다. 이 칠판을 보고 있으면 너희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과연 공부를 하고 싶을까?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말에도 글에도 힘이 있습니다. 비록 못할 것 같아 포기해버리고 싶다가도, '할 수 있어'라는 응원의 말과 글귀를 계속 접하다 보면 마음 한 구석에 자신감이 조그맣게 싹을 틔우게 됩니다.


아이들이 알았으면 합니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나 자신이고, 내 주변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요. 오늘 알림장 한 꼭지는 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025년 9월 22일 알림장

열하나. 내가 한 말이 곧 나인 것을 알기


더 나아가 자신이 사용하는 카카오톡 별명과 상태메시지도 확인해 봅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어떤 별명과 상태메시지를 쓰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잠시 본인 핸드폰을 켜고 확인해 보고 싶다고 요청합니다.


내가 한 말과 글이 곧 내 삶의 이정표가 된다는 말이 아이들에게 다소 무거웠을까요? 본인들의 별명과 상태메시지를 확인한 아이들은 작게 한숨을 내쉽니다. 누군가는 당당하게, 누군가는 "오늘 집에 가서 바꿔야겠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자신의 별명과 상태메시지를 알림장에 기록해 봅니다.


말과 글에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좀 더 긍정적인 시각으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길 희망합니다. 그 첫걸음인 말과 글에서부터 바른 방향을 나아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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