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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Oct 13. 2022

'누구에게나 좋은 음악'은 없다

멜로디가 기억을 소환할 때

<베르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딸아이를 독서실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여느 때처럼 차에 틀어놓은 클래식 FM에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난 얼른 볼륨을 끝까지 줄였다. 그 상태로 놔뒀다가 음악이 끝났을 것 같은 시간에 다시 볼륨을 높였다.


 '추억에 젖게 되는 음악이에요.'

 '중학교 때 학교에서 합창했던 곡이라 너무 반가웠어요.'


 청취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런데 난 이 곡이 끔찍이도 싫다. 이 합창곡만 들으면 마음이 스산해진다. 왜 이렇게 이 곡은 라디오에서 많이 나오는 걸까? 전주만 들어도 화들짝 놀라 볼륨을 줄이게 되는데 꽤 여러 번 그랬던 것 같다.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에서 연주되는 곡이다. 포로의 신분으로 억압받으며 노역에 시달리던 히브리 노예들이 바빌론의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애절하게 부르는 이 곡은 곡 자체만 보면 하등 싫어할 이유가 없는 명곡이다. 그런데도 난 이 노래만 나오면 볼륨을 줄이거나 라디오를 아예 꺼 버린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 자체가 좋아서일 때도 있지만 그 음악을 들으면 연상되는 어떤 시기나 순간 때문일 때가 더 많다. 내게 있어서 이 곡은 그 반대의 경우라고 해야 할까?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고1 때 합창대회에서 우리 반이 불렀던 곡이다. 그래서인지 이 곡만 들으면 고1 때의 내가 생각나고 당시 담임선생님의 얼굴이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뭐든 조금 늦게 열매를 맺는 사람인 것 같다. 그때도 그랬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안 좋았던 성적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승곡선을 탔다. 고1 때엔 그야말로 내 성적이 바닥을 쳤을 때였고 딱 그 성적만큼 자존감도 곤두박질쳐서 뒤늦은 사춘기와 함께 갈 길을 잃고 헤매던 시기였다. 무슨 기준이었는지 좋아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 극과 극이었던 담임선생님. 선생님의 나를 보는 낯빛은 늘 차가웠고 나와는 말조차 섞기 싫은 표정일 때가 많았다. 내가 공부를 못하고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잘 사는 집 아이가 아니어서였을까.


 서울에서도 교정이 넓고 아름답기로 이름난 우리 학교에 봄의 기운이 완연했던 어느 날,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상담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교무실로 들어가서 담임선생님에게 갔는데 선생님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앉으라고 했다. 상담은 아주 짧게 끝났고 그 내용은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나의 기를 꺾는 말들뿐이었던 것 같다. 그중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에 비수처럼 꽂혀있던 말. "너 이렇게 하면 아무 데(대학)도 못 가!" 상담 내내 선생님은 내 얼굴을 한 번도 마주 보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나를 투명 인간 취급했던 그 선생님과의 1년은 내겐 그야말로 흑역사였고 생각조차 하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곡이라 그런지 라디오에서 자주 듣게 되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이 곡만 들으면 작은 키에 둥그렇고 커다란 얼굴의 고1 때 담임 선생님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그게 내가 그 음악을 피하는 이유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에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내가 힘들었던 것이 온전히 그 선생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 선생님 생각만 하면 아직도 뭔지 모르게 억울하고 미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앞으로도 내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좋아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멀쩡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곡인데 그렇게 싫어할 수밖에 없으니 죄 없는 그 곡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음악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한 시절의 기억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준다. 그렇기에 같은 곡이라도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로 누구에겐 최애 곡이 되기도, 누구에겐 귀를 막고 싶은 최악의 곡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제주지앵의 음악 용어 Tip-

non troppo (논 트로포) : 지나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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