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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Oct 27. 2022

어땠을까? 그들이 친구가 되었다면

아쉽게 스쳐간 인연


 영화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화면 속엔 누구보다 애통한 표정으로 횃불을 들고 운구 행렬을 따르는 남자가 있다. 그는 베토벤을 사랑했던 프란츠 슈베르트였다. 이미 최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를 젊은 예술가가 흠모해 마지않는 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베토벤에 대한 슈베르트의 마음은 각별했다.


 늘 베토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극도로 내성적인 성향의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직접 찾아가는 적극성을 보이진 못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용기를 내 베토벤 집의 문을 두드리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고, 병석에 있던 베토벤에게 자신이 작곡한 곡의 악보를 건넨다. 베토벤은 그 악보를 보고 바로 슈베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극찬했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은 얼마 후 세상을 떠났고 비통해하던 슈베르트도 베토벤이 떠난 지 1년 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죽어서야 그는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하던 베토벤의 바로 옆에 잠들었다.

 베토벤이 건강할 때 그 둘이 만나서 만남이 이어졌으면 어땠을까? 음악가들의 뒷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어땠을까'라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들이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냈다면 어땠을까? 서른한 살에 요절한 슈베르트가 베토벤이 살았던 나이까지만 더 살았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슈베르트의 명곡들이 태어났을 텐데... 베토벤이 말년에 작곡한 '합창교향곡'같은 수작 중의 수작이 탄생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겨울이면 어김없이 듣곤 하는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이 곡이 작곡된 1827년은 슈베르트가 죽기 1년 전이었고 그 시기는 그가, 자신은 '그 어느 세계에도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절망하며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가고 있던 때였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황량한 겨울 벌판에 어울리는 곡이고 나지막한 음색이 좋아 자주 듣지만, 한 번 들을 때 전곡을 다 듣지는 못한다. 스물네 곡의 짧은 곡이 연이어 나오는 <겨울 나그네>에 너무 빠져있으면 나까지 슬쩍 울적해지곤 하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따진다면, 왠지 전형적인 I성향이었을 것 같은 슈베르트의 작품엔 어둠이 서려있는 곡이 많은 데, 어린 시절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유난히 많이 겪어와서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슈베르트를 지탱해주었던 건 분명 음악이었을 것이고, 그 음악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었을 것이다. 그의 인생에 베토벤이라는 스승이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을 자꾸 하게 된다. 자신이 가 닿고자 하는 것을 이미 이룬 거장을 비빌 언덕 삼아 자신이 쓴 작품을 가장 먼저 들려주는 아버지 같은 사람으로 의지했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혹시... 주체할 수 없는 우울과 외로움, 문란한 생활 끝에 병에 걸려 그렇게 일찍 세상을 뜨진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면 너무 큰 비약인 걸까?


 "Fremd bin ich eingzogen, Fremd zieh' ich weider aus."

 (낯선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이 되어 나는 떠난다)

 -<겨울 나그네 (Die Winterreise)> 1번 ' 밤 인사 (Gute Nacht)' 의 첫 소절-




-제주지앵의 음악 용어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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