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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Oct 12. 2022

다시 만난 Jude

Hey Jude의 주인공,  그리고 그의 노래

<줄리안 레논, Valotte>


 ‘Valotte’란 낯선 제목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중학교 때쯤이었다. 어느 날 최신 팝송을 틀어주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김기덕의 두 시의 데이트’에서 흘러나온 줄리안 레논의 ‘Valotte’는 어린 소녀의 마음속에 ‘훅~’ 하고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전주 없이 바로 들려오는 첫 소절은 준비 없이 맞이하게 된 첫사랑 같았다. 그 당시엔 이 노래의 가사를 찾아보거나 하진 않았다. 유난히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던 난 그저 80년대 특유의 애잔한 멜로디와 스윗한 목소리를 가진, 왠지 모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호리호리한 외모의 젊은 가수에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 가수는 내가 한창 좋아하던 영국 그룹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의 아들이었다. 그때 난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해진 ‘Yesterday’ 말고 ‘Michelle’이나 ‘Oh, My love’ 같은 비틀즈(혹은 비틀즈 멤버)의 다른 노래들에 심취해있었다.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Hey Jude’도 자주 듣고 따라 부르던 노래였다. 그러다 그 노래의 주인공이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넌의 아들 줄리안 레논이라는 것과 그 역시 가수라는 걸 알게 되었다. 줄리안 레논과 그의 노래에 푹 빠져있던 시간은 그리 길지는 않았다. 비틀즈를 듣는 친구도 많지 않던 내 주변에 줄리안 레논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더더구나 Valotte란 생소한 제목의 노래를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학교 시절 이후, 그저 가슴속에 묻어 둔 첫사랑처럼 그렇게 그 노래는 내게서 잊혀갔다.


 20대 초반, 뒤늦게 찾아온 질풍노도의 터널 속에서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앞날에 무엇 하나 뚜렷한 것이 없다고 느끼곤 하던 나는 문득 Valotte가 듣고 싶었다. 오랫동안 듣지 않던 그 노래가 생각난 건 외로울 때 옛사랑이 생각나 괜스레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아보는 마음같은 것이었을까. 이 노래가 듣고 싶어서 라디오를 아무리 들어도 이미 유행이 지나고 인지도도 떨어지는 가수의 노래는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음반을 사서 들으려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시절엔 동네마다 작은 레코드샵이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의 음반이 있을 리 만무했고 그때부터 난 가는 곳마다 레코드샵이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 Valotte 음반을 찾았다. 꽤 오랜 시간을 찾아 헤매다 어느 날 광화문의 중고 레코드 가게에서 주인아저씨가 먼지 쌓인 박스를 뒤져 찾아준 줄리안 레논의 음반을 받아들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동안 애지중지 먼지를 털어내며 듣던 그의 노래는 그 이후 또다시 잊혔다. 결혼 후 그 앨범은 친정집 빈방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아남’ 상표를 단 전축만큼이나 방치되어 방 한편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몇 년 전부터 레트로 바람이 불면서 LP판과 턴테이블은 더 이상 구닥다리가 아닌 일종의 신문물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때 난 20대 때 한 장 한 장 모았던 몇십 개의 LP판을 친정에서 집으로 가져왔다. 새로 구입한 요즘 스타일의 턴테이블을 통해 20여 년 전의 음악들과 다시 만났다. 그 중 원 픽을 꼽으라면 ‘Valotte’가 실린 줄리안 레논의 음반이다. 다시 만난 LP 재킷 사진 속의 줄리안 레논은 마치 20년 넘게 그 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그의 음악 역시 내 가슴에 잔잔한 떨림으로 다가왔다.


 요즘에도 집에 혼자 있을 때면 그의 음악을 가끔 찾아 듣곤 한다. 그러고 보니 이 곡은 누군가와 같이 들은 적이 없다. 다른 사람은 이 곡에서 나와 같은 아련함을 느끼지 못할거라 생각해서였을까, 아니면 진짜 좋은 건 혼자만 갖고 싶은 욕심에서였을까. ‘Hey Jude’가 수록된 비틀즈의 음반도 자주 듣는다. 몇 년 전 어디선가 ‘Hey Jude’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접하고는 이젠 중년이 된 줄리안 레논이 왠지 짠하다 느꼈던 기억이 있다. 줄리안 레논이 5세 때 아버지의 불륜으로 부모님이 이혼을 한다. 아버지 존 레논은 자신의 ‘영혼의 동반자’로 일컬어지는 일본인 행위예술가 오노 요코와 재혼을 하고 둘 사이엔 아들 숀 레논(가수)이 태어난다. 그 시절의 줄리안을 안타깝게 여긴 비틀즈의 멤버 폴 매카트니가 만들어 부른 노래가 바로 ‘Hey Jude’라는 이야기이다.


 정작 노래의 주인공은 20년이 다 되어서야 이 곡이 자신을 위해 쓰인 것이란 걸 알았다고 한다. 그런 사연이 있는 ‘Hey jude’ 속의 ‘주드’가 성장해 부른 노래는 지속적이진 않았지만, 삶의 순간순간 나와 함께 있었다. 어린 시절 설레는 첫사랑처럼 다가왔던 그곡은 이제는 별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별스럽진 않지만 은근히 의지되는 친구같다.


 네이버 인물검색을 해 보니 이제 줄리안 레논은 나잇살이 찌고 이마가 훤한 중년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20여 년 전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던 광화문 거리를 걷다 마주친 작은 가게에서 ‘줄리안 레논 Valotte 음반 있어요?’라고 묻던 나. 그 모습이 떠오르며 나랑은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영국 아저씨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지는 날이다.



*Valotte : 1984년 발표된 줄리안 레논(1963~ )의 데뷔앨범 Valotte에 수록된 곡. 미국 빌보드 차트 9위까지 올랐다. Vallote는 프랑스 중부에 위치한 고성의 이름이며, 가사에 ‘Vallote’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제주지앵의 음악 용어 Tip-

rubato (루바토) : 박자를 자유롭게, 박자를 무시하며, 박자들을 서로 훔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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