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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Oct 14. 2022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사람

말할 수없이 진중하고 깊은...

<요하네스 브람스, 헝가리 무곡 / 피아노 협주곡 1번 3악장>


 반팔 티 위에 긴 카디건을 입을 때의 포근한 감촉이 좋아지기 시작하는 가을이 되면 브람스의 곡을 찾아 듣게 된다. 브람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악은 헝가리 무곡 5번이다. 음악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스무 살인 아들이 아기 때 좋아하던 음악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생각 안 나지만 미술작품에 어울리는 음악을 엮어서 만든 비디오가 한창 유행이었는데 그걸 틀어줄 때마다 두세 살 밖에 안 된 아이가 격하게 반응을 하는 음악이 바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5번이었다. 그 곡만 나오면 춤을 추기도 하고 자꾸 틀어달라 해서 따로 들려준 적도 많았다. 브람스 곡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건 그 이후 시간이 꽤 흐른 재작년쯤이었다.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심코 클래식 FM을 틀었는데 처음 듣지만 마음을 파고드는 듯한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협주곡이 흘러나왔다. 이곡은 뭐지? 듣는 내내 누구의 곡일지 제목은 뭔지 너무 궁금했다. 음악이 끝나자 DJ가 음악가와 제목을 말해주었고 난 잊기 전에 얼른 핸드폰에 메모를 했다.    

 

 요하네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3악장.     


 몇 날 며칠을 그 곡만 들었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듯 듣자마자 좋아지는 음악이 있는데 이 곡이 그랬다. 그러고 나서 브람스의 다른 곡들을 찾아 듣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도 찾아보았다. 알면 알수록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소유자인 브람스. 그의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지하세계의 신인 하데스가 떠오른다. 우리는 천국, 빛, 밝음만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들을 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둠도 우리에게 필요할 때가 있다. 자신 안으로 침잠하는 것, 자신의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힘든 마음과 비관적인 마음이라도 그것도 내 마음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는 것. 그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오랜 마음공부를 하면서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하데스가 연상되는 브람스의 음악은 드러나지 않고 우리들의 안에 숨어있는 감정들을 다루고 있고 그게 말할 수 없이 신중해서 조용히 위로받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하늘은 높아지고 공기는 차가워지는 가을이 되면 진중한 브람스의 음악을 찾게 되나 보다.


 모든 어른이 된 사람의 모습엔 어린 시절의 흔적이 있기 마련인데 브람스도 마찬가지이다. 브람스의 아버지는 오케스트라의 콘트라바스 연주자였다. 콘트라바스는 눈에 띄는 악기도 아니고 중요한 악기도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언제나 가난했기에 브람스는 어릴 때부터 돈을 벌어야 했다. 거친 뱃사람들이 드나들고 매춘이 성행하던 술집에서 피아노를 쳐야 했던 소년 브람스. 그의 음악이 ‘밝음’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암울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이라 생각하면 한편으론 마음이 짠해진다.


 음악가들의 삶에 대해 알아갈수록 ‘그들이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음악으로 절절하게 풀어내지 못했다면 쉬이 드러낼 수 없었을 마음속의 불꽃같은 것들을 어떻게 다스리고 살았을까? 그건 ‘내가 음악을 알지 못하고 살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과도 연결이 된다. 좋은 감정일 때는 물론이고 거짓말처럼 세상과 뚝 떨어진 채로 완전히 혼자였던 순간에도 음악은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다투고 꼴도 보기 싫을 때나, 누군가와 오해가 생겨서 억울할 마음이 들 때 안방 한구석에 놓인 오래된 피아노를 두들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릴 때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람스, 베토벤 같은 음악가들에 푹 빠져 있을 때엔 그들의 음악뿐 아니라 그들의 인생을 다룬 '클라라', '불멸의 연인'같은 영화나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을 모티브로 삼은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같은 관련 예술작품을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막연히 동경하던 먼 옛날의 음악가들이 바로 옆에 숨 쉬고 있는 사람처럼 가깝게 느껴지기도, 그들에게서 나와 같은 면을 발견해 친밀감이 들기도 한다.     


 역대  태풍이 온다고 온종일 TV에서 재난방송을 해대는 조금은 심란한 밤이지만, 나의 심연까지 파고드는 브람스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내야겠다. 첫곡은 아들이 좋아하던 헝가리 무곡을 들어야지. 그다음엔 처음 듣자마자 심쿵했던 피아노 협주곡 1번 3악장을 친구 삼아 따스한 얼그레이 차를 한잔 마셔볼까.




-제주지앵의 음악 용어 Tip-

rhapsody (랩소디, 광시곡) : 일정한 형식이 없고 환상적이면서도 자유로운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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