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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Oct 29. 2022

힙합에 스며들다

화요일 밤이면 '스맨파'를 봐요

“엄마, 오늘 밤에 잊지 않았지?”

“응?”

“스맨파 보는 날~!”     


 아침에 학교에 가는 딸이 말한다. 매주 화요일이면 본인이 열광하는 프로그램인 ‘스트리트 맨 파이터’를 함께 보자고 성화다. 밤이 되어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쯤 할 일이 많다거나 졸리다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 아이는, 자기가 대학생이 돼서 서울로 가면 엄마는 분명 이 시간들을 그리워할 거라며 같이 보자고 다시 조른다. 어쩔 수 없이 TV 앞에 앉아서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춤을 추며 경연하는 그 프로그램을 같이 본다. 몇 달만 있으면 고3 되는 아이가 스트레스 풀려고 챙겨보는 유일한 프로이니 함께 봐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춤추는 것도, 힙합이 주인 음악도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속으로만 되뇌면서 졸린 눈을 부릅뜨고 볼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딸아이는 졸지 말고 제대로 보라며 다시 성화...... 그러다 ‘새삥’이라는 난생처음 듣는 음악을 들었다. 새삥이 뭐 나고 물었더니 ‘새것’이라는 뜻이란다. 별의별 신조어가 다 있다며 무심코 보는데 노래 가사 몇 구절이 귀에 들어왔다. 잘 들어보니 ‘나의 개성은 시대를 안 타고 보세 옷을 걸쳐도 브랜드를 묻는 DM이 온다’는 내용. 프로그램 구성상 반복 청취를 하다 보니 멜로디도 은근 중독성이 있고 곡의 완성도도 높아 보였다. 전달하는 메시지도 분명하고. ‘어? 좋은 음악의 요소를 다 갖춘 음악이네.’ ‘이래서 애들이 힙합을 좋아하나?’      


 생각해 보니 힙합에 은근히 젖어든 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작년에도 딸의 은근한 협박(?)에 못 이겨 힙합 경연 프로인 ‘쇼 미 더 머니’를 억지로 보기 시작하다가 끝날 무렵엔 거기에 나왔던 음악을 딸과 함께 좋아하게 된 적이 있다. ‘인생은 회전목마’라는 곡인데 인생을 회전목마에 비유한 가사가 왠지 모르게 마음에 꽂혔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에 실력 있는 가수들의 그야말로 힙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한 여름 놀이동산의 페스티벌이 연상되는 노래였다.      


 여전히 화요일 밤이 되면 딸과 함께 스맨파를 보고, 딸은 차만 타면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틀곤 한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다고 속으로 생각하다가도 맘에 드는 음악이 있으면 아이에게 제목이 뭔지, 가수가 누군지 꼬치꼬치 물어본다. ‘이거 저번에도 물어봤잖아’ 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는 아이. 그렇게 힙합과 요즘 유행하는 K-pop에 나도 모르게 스며들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꼭 ‘이런 음악 같이 들으면서 분석도 해주는 엄마가 어디 흔한 줄 알아?’하면서 생색을 낸다.      


 사람은 자신이 10대, 20대 때 들었던 음악이 가장 좋다고 느낀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나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도 부활이나 이문세, 메탈리카를 들으며 최고라고 외치면서 감흥에 젖곤 하니까. 그래도 듣는 귀를 열어놓으면 전혀 새로운 음악들이 나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어와서 또 다른 기쁨을 준다. 다음 주엔 스맨파를 같이 보자고 딸에게 먼저 말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어느 팀이 끝까지 남아서 우승하게 될지 엄청 궁금하긴 하네.     






-제주 지앵의 음악 용어 Tip-

cadenza (카덴차) : 자유로운 즉흥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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