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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앵 Oct 22. 2022

잔소리 대신 음악을 듣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해요

 아들아이가 고1이었을 때였다. 유난히 지쳐 보이는 얼굴로 저녁을 먹는 아이에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슬쩍 던졌다. 그렇지만, 나름 언젠가는 해야지 하고 벼르고 있던 말이기도 했다.     


 "네가 수학을 그렇게 잘하는데 영어랑 국어 점수가 너무 차이가 나잖아. 영어, 국어 점수만 조금만 올리면....."

 "학교에서도 선생님한테 거의 매일 듣는 말인데 엄마까지 그러면 저는 어떡하라고요!”

 “아빠도 저 공부하나 안 하나 은근히 감시하는 것 같고, 성적도 맘처럼 안 나와서 힘든데 엄마까지 그러면..."     


 내 말을 끊고 이렇게 말하고는 엉엉 울기 시작하는 아이의 반응에 당황한 나는 일단 달래주고 먹던 밥을 먹게 했다. 그러고 보니 그즈음 아들의 얼굴이 유난히 지쳐 보였고 필요 이상으로 많이 잠을 자고 무엇보다 눈에 초점이 많이 흐려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얘가 무기력증에 빠져있나 라는 생각이 들며 순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결심한 생각을 말했다. 엄마가 진짜 미안하다고. 이제부턴 성적 이야기는 절대 안 할 거라고. 대신 예전처럼 다시 활기차게 잘 웃고 했으면 좋겠다고. 네가 공부 잘하는 것보다 웃으면서 지내는 게 더 좋다고.     


 그건 진심이었다. 더 좋은 성적, 더 좋은 대학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일 테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 건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른 것들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를 픽업할 때 공부이야기보다는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그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 차에만 타면 아이는 나만을 위한 DJ처럼 나와 함께 들을 음악을 틀어주곤 했다.     


"이 음악 좋아. 뭔가 상큼해. 제목이 뭐야?"

"Mr. blue sky'요. 전번에 엄마랑 봤던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2'에 나오는 음악이에요. 예전 음악이라 어른들도 좋아해요."

"아 그래? 엄마도 몰랐던 음악인데 네 덕분에 알게 됐네."     


 차안에서의 대화는 주로 이런 식이었고 다른 곳보다 음악소리가 잘 울리고 집중하게 되는 차안에서의 데이트는 항상 짧게 느껴져 아쉬웠다. 그렇게 잔소리를 끊었더니 우리 둘 사이의 갈등이 현저하게 줄었다. 아이는 다행히 힘들어하던 학교생활에도 적응을 하면서 다시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드디어 고3 엄마가 되던 해엔 비장한 마음으로 딱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영양가있고 맛있는 음식 잘 챙겨주기. 둘째, 잔소리 하지 말기! 아들의 고3생활은 별스럽지 않게 잘 지나갔다. 한날은 이렇게 말해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엄마, 저처럼 행복한 고3도 없을거예요."     


 끝날 것 같지 않은 아들의 고등학교 생활은 지나고 보니 너무 짧게 지나갔다. 어릴 땐 그렇게 예민하고 고집스럽더니 이젠 엄마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어른이 되어 있다.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건축학도가 되어 하나씩 하나씩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지금은 기숙사에 가 있어 비어있는 아들 방에 가끔 들어가 본다. 벽을 장식하고 있는 영화 포스터들, 장식장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피겨들. 그것들을 보면 꼭 아들의 분신 같아서 눈물이 날 때도 있다. 녀석이 즐겨듣던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다음에 집에 오면 집에서 같이 맥주라도 한잔 하면서 여유 있게 음악을 함께 들어야겠다. 엄마랑 맥주 한잔 하면서 예전에 함께 듣던 음악을 다시 들어보자고, 그 때 들을 플레이리스트를 정해보라고 문자를 보내봐야겠다.




-제주지앵의 음악 용어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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