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앵 Oct 12. 2022

그때 나는 혼자가 아니었어

라디오를 듣던 그 저녁들

 아들과 차를 타고 가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데 영국의 록 그룹 퀸이 부른 '라디오 가가'가 나왔다. 희한하게 똑같은 노래도 자신이 찾아서 들을 때 보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이 훨씬 좋게 들리기에 '이게 웬 횡재야' 하는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그 노래 가사로 영어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라디오를 들으며 위로받는다는 가사 때문인지 더욱 애착이 가는 노래였다. 나는 감흥에 젖어 아들에게 말했다.      

 

 “예전엔 지금보다 라디오를 훨씬 더 많이 들었어. 라디오를 통해서 힘든 것도 위로받고 그랬었는데... 너는 잘 모를 거야.”

  “저도 그런 기분 알아요.”

  “응? 어떻게 그걸 알아?”

  "예전에 안양에 살 때 학원 갔다 오면 엄마가 늘 라디오 틀어놨잖아요. 집에 가면서 오늘은 어떤 노래가 나올지 기대하면서 들어갔어요. 듣다가 좋은 노래가 있으면 검색해서 다시 듣기도 했고요."

  "세상에! 그랬었구나. 엄마는 그때 혼자서 듣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네가 같이 듣고 있었구나".     


 그렇게 말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들한테 들킬까 눈물을 삼켰지만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지다가 이내 따뜻해지곤 한다. 아들이 기억하는 그때는 내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육아의 터널을 지나며 힘겨워하던 때였다. 큰아이인 아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괴롭히던 산후우울증은 육아 우울증으로 이름을 바꾸어 아이들 둘이 꽤 자랐을 때까지 계속되었었다. 그 당시 한창 회사일이 바빴던 남편은 새벽에 나가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잠만 자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루 종일 두 아이의 육아에 시달리며 무기력해져 있던 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까지 허한 마음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면 식사를 준비하며 라디오를 틀고 주방 레인지 후드에 딸린 조그만 라디오로부터 나오는 이금희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그녀가 들려주는 음악을 듣곤 했다. 그녀의 친근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편안한 음악들은 이제 하루를 마무리하며 시작되는 휴식을 알리는 듯한 소리였다. 그 프로에서 나오던 노래들은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져주며 위로를 주곤 했다. 하지만 아직 아이들은 어렸고 뭔가를 나누는 것보다는 챙겨야 하는 존재들이었기에, 난 그저 혼자서 음악을 듣는 나 자신이 조금은 처량하게 느껴졌던 것도 같다.     


 그때 그 음악을 아직 어렸던 아들이 함께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철저히 혼자였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들. 그 막막했던 시간들이 떠오르며 어쩌면 난 그때 혼자가 아니었구나, 아니 분명 혼자가 아니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라디오로 음악 듣는 게 좋다고 그때 말해주지 그랬느냐고 했다. 엄마는 꿈에도 몰랐다고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속으로 더 이야기했다.     

 

 '엄마는 그때 엄마가 혼자인 줄 알았단다. 근데 그게 아니었어. 내 곁에 철민이가 있었어. 엄마랑 모든 걸 함께 하던 너희들이 있었던 거야…”





-제주지앵의 음악 용어 Tip-

Dolce (돌체) : 달콤하게, 부드럽게
이전 08화 아마추어지만 매일 피아노를 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