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안 보는 건 아니지만, 본방사수를 하는 프로는 거의 없다. 코로나 이전엔 비긴어게인이나 윤식당 같은 프로를 손꼽아 기다리며 보고 재방송도 챙겨보곤 했다. 코로나가 끝나고 '윤식당' 후속으로 시작된 '서진이네'를 보기 위해 난 또 일주일을 기다리곤 한다.
한국에선 이미 스타인 이들이 작은 분식집을 차리고 장을 보고 음식을 하고 손님을 맞이한다. 멕시코 현지의 손님들이 들어와 주문하고 나온 음식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고 표정으로 몸짓으로 음식에 대한 감탄을 표현한다. 사실 아주 단순한 행동들의 연속과 반복이 전부다.
윤식당이 처음 시작할 때, 제작진들은 프로그램이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외국에서 한식을 만들어 판다는 참신하지만 밋밋한 설정이 이렇게까지 인기를 끌지 그들도 몰랐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본방사수를 했던 예능은 윤식당이나 서진이네 말고도 또 있다. '삼시세끼'와 '스페인 하숙'이다. 그 프로들도 밥 해 먹고 치우고 밥 해먹이고 치우고를 반복하는 내용이다. (이쯤 되면 난 나영석 PD의 팬인 것 같기도..ㅎ)
어제도 지난 금요일에 봤던 서진이네 3회를 다시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이걸 이렇게 좋아하는 건, 별일 없는 것 같이 흘러가는 하루하루, 일상의 아름다움이 보여서가 아닐까?
23년째 전업주부로 살면서 힘들었던 걸 헤아리자면 그 가짓수가 참... 많지만,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을 견뎌야 하는 것도 나를 한없이 지치게 했다. 하루 24시간 퇴근시간 없이 티 안나는 살림을 하고, 성향이 정 반대인 두 아이를 케어하고 녹초가 되어도 누구 하나 수고했다 말해주지 않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육아의 터널이었다.
그런데 참 희한한 건, 주변에서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눈물 나게 부러울 때가 있다는 거다. 어쩌다 아이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애들이 이렇게 예쁜데 난 왜 그렇게 힘들기만 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그렇게 빨리 지나가기만 바랐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돌아가서 밝은 마음과 얼굴로 온전히 아이들을 사랑해주고 싶다. 양날의 검이 되어 내게 생채기를 내곤 했던 피해의식과 죄책감이라는 짐을 벗어던지고 말이다. 몸과 마음이 항상 물에 젖은 솜 같았던 내게도 말을 건네고 싶다. 많이 애쓴다고, 잘하고 있다고, 그냥 그대로도 괜찮다고...
내가 그리워하는 건, 대단한 건 아니다. 장난감이 널브러진 거실에서 아이들과 뒹굴며 놀던 순간, 목욕을 마치고 큰 타월에 감싸인 아들이 너무 귀여워 그대로 세워놓고 디지털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던 순간, 어린이용 식판에 볶음밥과 소시지, 물에 씻은 김치를 차려 두 아이 앞에 나란히 놓아주고 이리저리 흘리며 먹는 걸 지켜보던 순간, 돌쟁이 딸이 아빠 배 위에 엎드려 부녀가 낮잠을 달게 자던 모습을 바라보던 순간... 그 일상의 순간이 그립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하루하루의 일상이 지나고 나면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으로 기억되는지... 지금의 내 일상,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그날이 그날인 지금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얼마나 그리운 지난날의 한 순간이 될까.
살짝 무기력에 빠져있는 갱년기의 한복판이지만,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진한 믹스커피와 함께 글을 쓰는 일상이 눈물 나게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런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