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화요문장

무용한 것들을 향하여

이작가의 화요문장

by 꽃고래

화요일에 읽는 오늘의 문장(39)

2022.07.26.(화)

“항일을 하자니 몸이 고단할 것 같고,

친일을 하자니 마음이 고단할 것 같고

나는 원체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꽃, 바람, 웃음.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다 멎는대서 죽는 것이 꿈이오.”

_tvn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김희성 대사 중.

총으로 싸우는 편이 좋을까, 글로 싸우는 것이 좋을까.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차라리 정치를 할까.

동료 선생님과 이야기하다가 나는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입으로 싸우죠.”

무력으로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야 무력을 쓰겠다.

강력한 한방으로 집나간 청소년들을 돌이킬 수 있다면, 최면이라도 걸어서 아빠들 주폭을 멈출 수 있다면,

입에 지퍼를 달아 그들의 폭언을 멈출 수 있다면

나는 고애신이 되어 총을 들고 전장으로 나갈 것이다.

하지만 도무지 깨지지 않는 화강암 같은 인간 내면의 문제와 사회구조적 문제들에 우리는 오로지 비폭력적이고 무용한 방법들을 쓰며 기다린다.

광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들의 삶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여기서 우리는 사회복지사이다.)

상담할 때 가끔 이런 말을 건넨다.

“최근 가장 쓸모없는 일로 무엇을 해보셨나요?

가끔은 아주 쓸 데 없는 일에 시간을 쓰면서 즐거워해보세요.”

중년 여성의 내담자가 말한다.

“맞아요. 정말 생각해보니,

저는 그런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늘 먹고 사느라 바빴어요.”

함께 잘 살아보자고 내담자를 다독인다.

그녀에게 했던 말은 꼭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는 자들은 무용한 방법들로 지구의 손톱만한 먼지뭉치를 치운다.

노동의 흔적도 없고 알아주는 이도 없어도 한다.

하지만 ‘김희성’의 기록은 의병들이 들었던 총만큼 큰 힘이 되어 조선을 살렸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나의 일에 의미를 더하고,

이토록 무용한 것들을 향하여 오늘을 산다.

시대가 악할수록, 버티는 날이 계속될수록

달, 별, 꽃, 바람, 웃음을 향해야 하는 이유다.

사무실 책상 한 귀퉁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