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작가의 화요문장
화요일에 읽는 오늘의 문장(42)
2022.08.16.(화)
[‘마’와 ‘흔’을 넘긴 나이와 꿈이라는 것]
“그 계기는 뒤늦게도 40세가 되어서 나왔다. 그땐 내가 생각해도 그렇고, 남 보기에도 그렇고, 살림 외에 딴 것을 생각하는 게 가당찮아 보일 만큼 나이도 들고 주부로서의 관록도 붙어 있었다. 편지를 너무 안 써서 외국 가 사는 가장 친한 친구와의 우정이 끊어질 만큼 비문학적인 환경에 함몰되다시피 하고 살고 있었다. 아이가 자그마치 다섯이었고, 시부모를 모신 맏며느리였다. 가계부도 건망증 때문에 못 쓸 만큼 조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40세의 평범한 주부였다.”_박완서, 「나에게 소설을 무엇인가」,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 박완서 산문집, 문학동네
나이는 낳이, 나히가 변형된 말로 세상에 낳아져서 살아온 햇수를 말한다. 1981년생, 마흔둘이다. 내 기억 어디는 아직도 골목길 어디서 고무줄을 하고 있고, 학교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서 있는데 말이다. 마와 흔을 텍스트로 옮기니 질겁할 만하다.
그래도 살아온 경륜과 경험과 네 아이 육아는 고스란히 적립이 되어 고통과 아픔을 겪는 내담자들의 사연을 풀어내고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제법 그 나이라는 것을 발휘한다. 푸르고 푸른 젊은 선생님들은 가끔 내게 존경의 눈빛을 보내나 마와 흔을 넘긴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자랑할 만한 일이 되지 못한다.
아직 공부할 분야가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은데 머리는 둔하고 시간과 자금이 부족하다. 급여는 대부분 아이들 먹이고 가르치는데 쓴다. 나는 딱히 이룬 것도 없고, 성과를 내지도 못하고 직급이 높거나 호봉이 높지도 않다. 한때 글을 쓴다고 호들갑을 떨다가 책도 한 권밖에 쓰지 못한 무명작가이며 공모전에서는 탈락하기 분주하고, 이제 일을 하느라 약속된 화요일마저 놓치기 일쑤다.
40세의 평범한 주부가 소설가가 되고 자신의 들끓는 이야기들을 이야기답게 정의한 고 박완서 작가의 말들은 언제나 나의 뮤즈가 되어 다시 글이라는 것을 품게 한다. 보고서와 상담지를 타이핑 하느라 손목 수명의 절반을 써버렸지만 나머지 절반은 이야기와 꿈이라는 것을 위해 소비하고 싶다. 그것이 ‘마’와 ‘흔’을 넘긴 나의 작은 욕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