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호. 후각 왕예민 비염인 엄마와 두부의 공존기
겨울. 울산 살아서 눈은 모르겠고, 바야흐로 감기의 계절이다. 봄만큼 힘든 비염인들의 고난주간이기도 하다. 전 국민이 기침을 오랫동안 했다는 소문만큼 나도 겨우내 밤낮으로 기침을 해댔다. 독감예방접종을 맞아 대표 독감은 피했지만, 또 다른 지독한 감기를 만난 것이다. 몇 주 약을 먹었다. 가습기도 틀고, 코세척기도 하고 물도 많이 마시고 비타민c도 대용량으로 섭취했다. 감기 증상은 없는데 계속 코가 아팠다. (좀 더러운 얘기 시작, 비위가 약한 분들은 스킵하셔도 좋습니다.) 마치 원하지 않는 무한리필 밥집처럼 무한대로 콧속에서 콧물이 생성이 되었다. 내 몸 수분의 상당한 양이 콧물이 되는 걸 느끼며 전에 없던 위기감을 느꼈다. 동네 이비인후과를 갔지만 너무 많은 환자를 만나 영혼이 반쯤 나가 있는 의사는 기계처럼 코, 입을 힘없이 점검 후에 똑같은 약만 처방해 주었다. 1시간 기다린 결과 치고는 허무했다. 증상에 따라 항생제도 조금씩 다를 텐데. 병원이란, 참.
전문가의 양약과 한약, 환자의 노력과 의지에도 낫지 않는 이 증상들에 수상함을 감지했다. 감기 증상은 없어졌는데 무한콧물은 내 얼굴에 남아 있었다. 아침마다 코세척기로 뽑아내는 묵직한 액체들에 대한 탐구심이 커져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나오는 액체 괴물 같은 걸 뽑아버리는 쾌감은 잠시. ‘너희는 왜 있으며, 어디서 왔는가.’ 유아기적 딸들과 <EBS호기심 딱지> 열심히 볼 걸, 하는 후회와 함께 고민은 깊어졌다. 얼굴 중 비어있는 공간은 부비동이다. ‘그럼 이거 혹시 축농증인가?? 부비동염인가?’ 울산에서 가장 큰 이비인후과를 부러 찾아갔다. 방사능 피폭량 염려로 CT 찍기 싫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비어있어야 할 공간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콧물로 가득 차 있었다. 축농증이라 하였고, 오늘까지 3주째 약을 먹고 있다. 주마다 점검하며 차도가 없으면 항생제 종류를 바꿔가며 먹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중 2개월째 같이 살고 있는 진도믹스견 ‘두부’의 몸부림을 발견하였다. 이 녀석은 꼭 내 앞에 와서 온몸으로 삼바춤을 추듯 몸을 털고 간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인사를 하러 와서는 몸을 털어 흰 털들을 잔뜩 뿌리고 간다. 운동을 하고 있으면 꼭 요가매트 위에 자리를 잡고 눕는다. 나는 발로 슬쩍 차서 밀어낸다. 꿈쩍도 안 하다가, ‘에잇 다음에 다시 온다.’하고 돌아가는 척을 한다. 돌돌이로 두부 털을 닦으며 운동을 하는데 내가 청소를 하는 건지, 운동을 하는 건지 현타가 온다. 남편은 두부의 털갈이 시즌 같다고 말하고는 최신식 로봇청소기를 사서 본인의 할 일을 가볍게 토스한다. 대단하다. 이 남자는 같이 살면 살수록 대단히 야무지고 똑똑해서 안심이 된다. 내가 먼저 저세상 떠나도 홀로 잘 살아갈 남자다. 여하튼 덩치보다 야무진 아저씨가 구매한 이 로봇 청소기는 30분 만에 끝낼 일을 3시간 동안 온갖 요란을 떨면서 청소를 한다. 그럼에도 온 집안에는 털이 날아다닌다. 화이트 톤 벽지와 층간소음방지매트가 깔린 이 집에서 나 홀로 흰 털을 줍고 다니며 로봇청소기처럼 유난을 떤다. 노안이 왔는데도 잘 보이는 건 한껏 예민해져서일까.
예민함으로 따진 오감의 순서는 후각, 촉각, 미각, 시각, 청각이다. 사람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오정스러운 편이지만 신은 공평하시다. 대신 후각은 극도로 예민해서 남편과 아들 옷은 따로 세탁하고, 생선을 굽고 난 후에는 며칠 어지러워하고, 향수도 잘 쓰지 못하고, 사춘기 애들에게도 정수리 잘 씻으라고 주야로 잔소리한다. 쓰다 보니 공평한 신의 성품이 좋지만은 않다. 피곤하다. 그런 내가 개를 만났다. 적응 중이라 여기저기 오줌도 싸고, 화단에 똥도 싼다. 이제 베란다에는 빨래를 못 넌다. 화단이 있는 집으로 이사 와서 행복했던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인생사 새옹지마, 기뻐하지 마, 차라리 화단을 없애.
개의 특유한 누린내… 뭐라고 할까, 사람들은 꼬순내라고도 하던데 하여간 그러한 냄새에 적응이 되기도 전에 영화 <포레스트 검프> 마지막 장면의 깃털처럼 확대되어 보이는 개털 날림으로 콧물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비염과 축농증의 원인이 반려견이라고 특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안타깝게도 증상이 말한다. 의사는 계속 낫지 않으면 수술을 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약을 먹으며, 두부 밥을 챙기며, 오줌으로 얼룩진 카펫을 빨고, 베란다 물청소를 하며 갑자기 화가 났다. 가족구성원 중에 내가 제일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나는 개를 잘 키울 수 있는 곳에 두부를 데려다주자고 남편에게 말하였다. 나쁜 엄마 만들지 말고, 가족회의해서 결정하자고 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고, 강아지 예쁘다고 모든 걸 다 바칠 것처럼 굴던 가족들은 긴장했다.
비염인의 호소에 가족들은 조금씩 달라졌다. 산책도 번갈아 데리고 나가고, 남편이 베란다도 자주 들여다보고 물청소도 했다. 하지만 두부는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나를 따라다니고, 나만 바라보고, 내 앞에서 몸을 털고, 자신의 털과 침을 당당하게 선물로 준다. 대한민국 개통령 강형욱 씨는 너무 깔끔 떠는 주인에게 그냥 빗질도 시키지 말고, 목욕도 시키지 말고, 발톱도 깎지 말고 대신 산책만 잘 데리고 나가라고 한다. 개는 개고, 사람은 사람이며, 냄새와 털은 개의 고유한 특성이며 존중받아야 할 영역임을 확실히 하는 개통령님의 말씀이라 새겨듣는다.
콧물과의 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새로 바꾼 알레르기 약과 항생제가 제대로 작용을 하고 있고, 공기청정기와 로봇청소기, 돌돌이 테이프, 식구들의 보살핌으로 두부와 나는 섞이고 있다. 반려견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것은 나에게 전혀 다른 세상이며 도전이고 용기다. ‘후각 왕예민 비염인 엄마’에게는 특히.
“두부야, 우리가 함께 사는 것이 운명이라면 너도 나도 같이 노력해야 해. 나의 예민함을 조금 더 이해해 줘. 나도 너의 실수들을 조금 눈감아 줄 테니. 여기저기 떠돌다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험난 했겠지만, 이제 시작이야. 우리 서로 사랑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우자.”
아는지 모르는지 청소년기 두부의 눈은 해맑고 활기차다.
“저마다 운명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바람 따라 떠도는 건지 모르겠어. 내 생각엔 둘 다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아.”_ <포레스트 검프> 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