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목줄을 놓쳤다, 남편이.
<월간두부 #2>
잃어버린 두부, 코난 그리고 탕자
_2023.12.08. 잃어버린 두부, 코난 그리고 탕자.
언제나 폭풍이 불기 전에는 고요하다. 힘든 한 주를 끝낸 금요일 저녁이었다. 딸들과 남편과 저녁 식사를 일찍이 마쳤다. 학원에 간 아들들 저녁을 준비해 두고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불금 같은 건 없었다. 전기장판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 속에 곧장 직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감기로 2주간 고생했고, 몸이 피로하여 쉬기로 작정한 시간이었다. 남편은 두부 산책을 시키고 온다고 하였다. 두부는 산책 나가기가 싫은지 책상 아래로 숨어들었다. 간신히 두부를 꼬셔 데리고 나간 남편은 신이 났다. 매너가 좋고 늠름하여 산책 나온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두부의 견주가 되신 남편은 여러 가지로 신이 난 것이다. 그의 신용카드 명세서는 지난달의 두 배가 되었다. 두부의 먹고 자고 싸고 노는 모든 물건들의 리스트로 채워졌다.
두부를 데려온 지 한 달이 되었다. 나와는 한 번 산책을 나갔고, 딸과도 한 번 대공원 산책을 나갔다. 그 외에는 아파트 주변만 돌았고, 남편이 일주일에 두세 번 대공원을 데리고 나갔다. 두부는 여의도공원보다 큰 면적의 울산대공원을 한 달 동안 열 번 정도 가본 것이다. 다행히 춥지 않은 12월이었고, ‘다행히’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는 폭풍전야의 시간이 다가왔다.
“지이이잉.”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산책 나갔는데 전화할 일이 뭐람.’ 나는 다소 귀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왜?” “큰일 났어.” “왜 큰일 나?” “두부가 사라졌어.” “뭐? 뭐라고? 무슨 말이야?” “아니, (그는 울먹이며) 두부랑 놀다가 두부가 사라졌는데 예담이 예봄이가 필요해. 예담이 예봄이 목소리면 돌아올 거야.” “알겠어, 금방 갈게.”
나는 딸들을 차에 태우고 공원으로 갔다. 딸들에게 차분히 설명을 했다. 두부는 괜찮을 거라고, 오늘 안에 찾을 거라고 어른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나는 심장이 뛰고 있었고, 이미 두부가 차에 치여 죽고 장례를 치르며 트라우마가 생긴 딸들을 보살피며 슬피 우는 우리 가족을 상상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게 가장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른이었다. 딸들은 목 놓아 울며 온 숲길과 공원을 헤매며 외쳤다. “두부야, 두부야 어디있니, 두부야.” 딸들은 기도했다. “못 만나도 좋으니 살아만 있게 해주세요.” 나도 기도했다. “우리가 기적처럼 만나게 해 주세요.”
남편의 얼굴은 창백했다. 너른 잔디가 펼쳐진 곳에서 다른 개들처럼 두부를 잠시 목줄에서 풀어 놀게 하고 싶었던 남편은 두부를 놓친 것이다. 다른 개들처럼 주인에게 돌아오지 않고 두부는 신나게 다른 방향으로 뛰었던 것이다. 아직 반려견을 키워보지 못한 우리들의 미숙함 때문이었고, 자책감과 죄책감이 뒤엉켜 온 공원을 돌아다녔다.
학원 다녀와서 저녁을 먹고 난 아들들은 자전거를 타고 합류했다. 우연히 교회 H&P 집사님 부부를 만나 함께 두부를 찾아 다녔다. 소식을 듣고 강아지를 키우는 다른 R&M 집사님네 가족도 동참했다. 구조된 아이, 한 달밖에 안 된 진도믹스견 두부를 함께 찾고 싶다고 손을 내미는 길 가던 아가씨들, 젊은 커플, 눈물 흘리는 아주머니, 공원안전요원들, 경찰까지 와서 2시간이 넘도록 강아지 한 마리를 찾아다녔다.
밤 11시에는 공원 소등이 된다. 10시가 넘어간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두부가 산길을 따라 집 쪽으로 갔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딸들은 너무 울어서 탈진이 오기 직전이었고, 목이 마르고 힘들어 했다. 나는 우선 딸들을 집에 데려다 주고 오겠다고 했다. 다른 분들께도 집에 돌아가시라고 말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딸들은 슬피 울며 기도를 반복했다. 차 안에서도 도로를 살피었다. 대공원 정문에서 아파트 가는 사이에는 큰 횡단보도가 있다. 아찔했다. 금요일 저녁은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이다. 마침 경비 아저씨는 쓰레기를 정리하고 계셨다. 지상주차장 자리가 없었다. 금방 내려올 나는 쓰레기장 앞에 잠시 주차했다. “아저씨, 혹시 하얀 개 한 마리 못 보셨나요? 보시면 꼭 알려주세요 저희는 OO호에요.” 아저씨는 시큰둥한 얼굴로 “저희 곧 교대해요. 그리고 밤에는 일 안 해요.” “밤에 일을 안 하신다고요? 그래도 혹시 보시면 꼭 알려주세요. 돌아다닐 수도 있어요.” “차나 빨리 빼요.” “5분 안에 내려올 거예요!” “그래도 빼요 민원 들어와요.” “죄송해요 금방 내려올게요.”
나는 속상한 마음으로 ‘거 참, 아저씨 세상 야박하시네.’라며 아이들과 집에 들어왔다. 두부 밥그릇을 보니 더 서글퍼졌다.
2분이 지났다. “띵동 띵동.” “누구세요?” “강아지가 왔어요!!!!”
환희에 찬 목소리의 경비아저씨와 두부는 함께 들어왔다. 오.마.이.도.그. !! 도깨비풀과 흙투성이가 된 두부는 헐레벌떡 집을 스스로 찾아왔고 우리에게 안겨 몸을 기대 부비었다. “아저씨 정말 감사해요!!” 두부는 물을 두 대접이나 벌컥 마셔댔다.
두부도 놀랐을 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가족들, 친구들, 깜깜한 밤. 하지만 냄새가 났을 것이다. 기억이 났을지도 모른다. 집에 가는 길을 따라 이미 집근처에서 배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 모두 다행이라며, 똑식이 혹은 똑띡이 또는 똑똑이라며 칭찬 일색이었다.
나는 두부를 입양하게 되면 코난이라고 짓자고 했다. 우리가 두부를 찾은 것이 아니라, 두부가 우리를 찾았고 이 녀석은 냄새나는 양말과 머리끈도 찾는 명탐정 코난이라고. 사실 나 빼고 만장일치로 두부를 입양하기로 가족회의때 결정이 났다. 반대표를 던졌던 나는 잃어버린 두부 아니 코난을 안고 누구보다도 엉엉 울었다. 잃어버린 탕자를 안은 하나님 아버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