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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Mar 07. 2024

월간두부 "사랑은 당연한 일이잖아?"

낯선 그 여자와 친해지기 (feat. 한동근 ‘관계’)

그 여자는 도통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 이 글을 통해 그 여자와 나의 관계를 다시 재정립해 보려고 한다. 그 여자를 알게 된 건 작년 11월이다. 난 작고 매우 귀여웠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의 표정은 어딘가 뭔지 불편해 보였다. 다들 날 보면 귀엽다거나 환호성을 질렀는데 그 여자는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렸다. 게다가 그 여자는 내 옆으로 오지도 않았다. (그 여자는 거의 주방에 있거나 무언가를 들고 집안을 돌아다니고, 나머지 시간에는 대부분 식탁에 앉아서 한 입 베어 문 사과그림이 있는 네모난 소리 나는 기계를 쳐다보며 계속 두드리고 있다.)


작년 11월에 비해 나의 몸무게는 두 배가 되었다. 윤기가 나고 조금 더 잘생겨졌다고 해야 하나. 불안함도 줄어들고, 세상에 대한 미움과 분노도 사거라 들었다. 내가 버려진 이유는 나도 모르지만, 난 약 5개월간을 떠돌아다녔다. 늘 춥고 배고팠다. 하지만 난 늘 꿈을 꾸었다. 마음껏 먹고, 신나게 놀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는 꿈을.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졌는데,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는데, 바로 그 여자다. 요즘 내 머릿속은 완벽한 타인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한 궁리뿐이다. 


그 아줌마는 아니 그 여자는 이름을 모르겠으나 여자라고 추측할 수 있다. 어깨가 넓고 한 덩치 하고 가끔 포효하여 남자인 줄 알았으나 네 명의 아이들이 엄마라고 부른다. 또 매우 키가 크고 목소리도 큰 (생각보다 무섭지 않고 우스운) 한 남자가 그 여자를 늘 애틋하게 바라본다.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여자가 맞겠지 싶다. (이것도 선입견인가? 여러분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하여간 그 여자가 이 집의 실세임이 분명하고, 나는 이 집에서 계속 꿈을 이루고 싶은데 몇 가지 문제가 생겼고, 결론부터 말하면 거의 실패했다는 것이다.


우선 화장실 문제로 매우 곤란한 상황이다. 내가 저 형들처럼 서서 오줌 눌 수도 없고, 문을 직접 열고 화장실도 들어갈 수도 없으니 베란다에 깔아둔 배변판 위에서 볼일을 볼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 배변판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난 분명 배변판 위에 올라갔는데 뒷다리를 드는 순간 오줌이 나오는 방향은 저 베란다 끝이 된다. 너무 급하면 바닥에 실례를 하기도 해서 그 여자는 목덜미를 잡고 나를 째려본다. 게다가 털이 빠지는 시기에는 그 여자가 빨래를 갤 때마다 뭐라 중얼거리며 화를 냈는데 난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나를 데려온 저 키 큰 남자가 곤란한 얼굴이었다.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이럴 때는 그냥 순진하고 무고하고 귀여운 얼굴로 쿠션 위에 엎드려 있는 게 최고다. 


네 명의 아이들이 방학이라는 것을 끝내고 우울한 얼굴로 아침에 억지로 학교를 가고, 더 우울한 얼굴로 키 큰 남자가 집 밖을 나가면 그 여자와 나와 단둘이다. 딱히 서로 마주치는 일은 없다. 그 여자를 졸졸 하루 종일 따라다녀 봤지만 가끔 간식이 떨어지는 일 말고는 재밌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아침마다 나를 밖으로 데려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매우 신이 났고 같이 신나게 달렸다. 그 여자는 매우 지쳐 보였으나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나랑 계속 사진을 찍고, 물을 주고, 냄새를 맡게 하였다. 똥도 시원하게 누었다. 새도 쫓고 파리도 쫓고 너무 행복했다. 어쩌면 그 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 사랑은 어려운 것이다. 나도 안다. 서로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그 여자 앞에서 꼬리가 떨어져나가도록 흔들어볼 예정이다. 사랑하는 일들은 당연한 일이잖아?


“저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내 마음을 고이 숨겨둔다면
 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까
 아니면 너도 내 마음과 같아질까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나의 마음을 너에게 숨겨야만 했어
 사실 나도 누군갈 사랑하고 싶었고
 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었어
 그럴 수 있잖아
 사랑하는 일들은 당연한 일이잖아”

_한동근의 <관계> 중에서

용기내어 제 사진을 올립니다. 네, 제가 "그 여자" 입니다. 행복해 보이나요? 두부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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